잘 찍은 사진 한 장
2월의 마지막 주말 오후. 거실에 셀프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동생의 지휘 아래 우리가 준비한 컨셉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요즘 한창 유행인 ‘갓’과 한복을 입혀 한국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보들이의 검은색과 흰색 털이 돋보이게 하는 도련님 컨셉. 다른 하나는 펫 스튜디오에서처럼 종이를 뚫고 나오는 역동적인 모습을 담은 찢개 컨셉이었다. 사진을 잘 찍는 편은 아니었지만 낯선 스튜디오보다 편안한 집에서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올 것 같아 셀프로 촬영을 진행했다.
갓과 한복, 장식이 될 조명과 함께 미리 사둔 색색의 배경지를 꺼냈다. 노랑, 초록, 분홍 등 여러 가지 색을 대보고 가장 어울리는 쪽으로 골랐다. 시간도 일부러 오후로 잡았다. 집안으로 늘어지는 오후의 햇빛을 잘 활용하면 약간의 인공광만 더해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랜선전문가들의 팁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는 한복 촬영이었다. 한복을 입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갓을 쓰고도 가만히 있을까 싶은 우려는 있었다. 다행히 갓은 보들이의 머리에 잘 맞았고, 보들이는 털어내거나 고개를 흔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한 사람은 손에 간식을 들고 시선을 유도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무조건 연사였다. 어떤 사진이 걸릴지 모르니 모든 순간을 찍어놔야 했다.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최대한 빠르게 원하는 컷을 뽑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모델의 역량보다 촬영자와 보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동물 촬영은 아기 촬영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빠르게 두 번째 촬영으로 넘어갔다. ‘찢개’는 사실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우선 종이를 예쁘게 적절한 정도로 찢어야 했고, 그 구멍 사이로 개가 고개를 빼꼼히 넣어줘야 했다. 아예 찢어서 통과해버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찢어진 후에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갖고 있는 종이 장수만큼의 기회뿐이었다. 실수도 실패도 용납이 안 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보들이는 촬영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처럼 딱 적절한 정도로 고개를 집어넣고 카메라를 봤다. 앞발 하나가 구멍에 걸쳐 있어서 더욱 자연스럽게 찍혔다. 심지어 노란 배경지와 보들이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원하던 컷을 건지고 나니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 촬영이었다.
동생이 촬영본들 사이에서 입양 홍보용으로 올릴 만한 A컷을 고르는 동안, 나는 프로필 이미지 작업을 했다. 강아지 사진과 이름, 특징을 담은 한 장짜리 프로필을 만들어두면 SNS에 게시하거나 공유하기 좋아서 다른 구조자들이나 임시보호자들이 많이 쓰는 방법이었다. 산책 중 찍은 환한 표정의 정면컷을 넣고, 보들이의 SNS용 이름과 성별, 나이를 적었다. 그리고 상단에는 크게 제목을 달았다.
‘가족을 찾습니다’
삼일절에 맞춰 올린 보들이의 한복 사진은 반응이 좋았다. 녀석의 의젓한 모습에 다들 호의적이었다. 보들이의 아픈 모습을 기억하던 사람들이 부쩍 달라진 모습에 환호를 보냈다. 이제 누가 봐도 건강하고 사랑받는 반려견의 모습이었다. 앞으로는 꽃길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심장사상충 완치 판정을 기대하고 간 병원에서 나쁜 소식을 들려줬다. 보들이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