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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Oct 26. 2022

바깥이 체질

실외배변은 본능이라서

산책을 시작하기 전까지 보들이의 배변은 완벽했다.


베란다에 놓아둔 커다란 배변패드에 정확하게 대소변을 봤고, 바로바로 치워주기만 하면 되었다. 다른 곳에 실수를 하거나 배변패드 근처에 흘리는 법도 없었다. 우리와 데면데면한 기간에도 대소변만큼은 완벽하게 해내는 깔끔쟁이였다.


그런데 산책을 시작하면서 뭔가 잘못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 한 번 산책으로 시작했는데 다음 산책할 때까지 배변을 참기 시작한 것이다. 보들이 약에는 이뇨제 성분이 있어서 소변량이 상당했는데 밖에 나갈 때까지 싸지 않고 버티는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어떤 날은 우리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커튼이나 바닥에 오줌을 쌌다. 간식을 끼워주는 노즈워크 장난감에 싸기도 했다. 이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거다. 보들이는 명백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밖에 나가자고.


우리는 실외배변을 하더라도 필요할 때는 실내배변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다. 다시 한번 전문가들의 지혜를 빌리기 위해 수많은 동영상을 봤다. 찾아보니 깔끔한 개들은 자기 영역에서 배변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고, 실외배변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 고치기도 어렵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고 했다. 음, 할 수 없군. 안 되는 건 빠르게 접자.


그래서 하루 2회 산책으로 바꿨다. 출근과 재택을 번갈아 하는 상황이라 매일 규칙적으로 해줄 수 있는 수준이어야 했다. 3,4번을 나갔다가 2회로 바뀌면 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아침 1시간, 저녁 30분으로 정했다. 아침형 인간인 동생이 아침 산책을, 저녁형 인간인 내가 저녁 산책을 담당하기로 했다.


매일 꾸준히 산책을 하자 보들이는 더 이상 실내에 배변 실수를 하지 않았다. 하네스를 챙기면 후다닥 현관으로 와 하네스에 고개를 집어넣었다. 산책 후 발을 닦는 것도 척척이었다. 공놀이도 터그놀이도, 개들이 좋아한다던 노즈워크 장난감에도 크게 흥미를 보이지 않는 보들이었지만 산책만큼은 티가 나게 좋아했다. 아니, 바깥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풀냄새, 흙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닐 때의 보들이는 집에서와는 확연히 달랐다.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이 가득한 호기심쟁이였다. 킁킁, 오늘 이 나무엔 어떤 개가 왔다갔을까? 아, 내 흔적도 남겨 둬야지. 킁카킁카, 새로운 냄새다! 어 처음 보는 녀석이네? 안녕! 다른 강아지를 만날 때면 보들이는 호의적으로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가끔 작지만 사나운 강아지를 만나 깨갱하고 돌아왔지만, 녀석은 강아지들에게는 늘 친절했다.


산책을 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예뻐해 주는 분들도 있었다. 밖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는 으르렁거리지 않았지만 혹시 몰라서 만지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걸 잊지 않았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보들이를 더 좋아했는데, 놀랍게도 이 녀석은 아이들이 다가오면 멈춰 서서 내 얼굴을 힐끔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것 같았다. 요즘은 매체를 통해 교육이 된 덕인지 아이들도 무조건 만지기보다는 인사해도 되냐고 묻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이런 경우 강아지에게 인사할 때는 손을 내밀어 냄새를 맡게 해주는 게 먼저라는 걸 알려주고, 원하는 아이들에게는 엉덩이 쪽 털을 살짝 쓰다듬을 수 있게 해 줬다. 얌전히 있었던 보들이에게 칭찬을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산책은 단지 배변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녀석은 산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좋은 기억을 쌓아갔고, 나는 산책하는 동안 녀석의 다양한 면모를 관찰하고 파악할 수 있었다. 바깥에서 재미있는 일이 쌓여갈수록 보들이 표정은 점점 밝아졌다. 왜 전문가들이 꾸준한 산책을 강조하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 녀석의 상태는 여러모로 좋아졌다. 먹는 약의 종류와 양이 줄었다. 심장도 건강해지고, 호흡도 좋아졌다. 살이 조금 빠지며 날렵해졌고 무엇보다 사회성이 좋아졌다. 이젠 집에 오는 손님에게도 평화롭게 인사할 수 있는 개가 되어가고 있었다.


보들이는 이제 가족을 만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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