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화려한 과거
또 한 번의 물림 사고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동생이 서둘러 친구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라서 바로 처치를 했다고 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동물병원에 들어간 건 동생 혼자였다. 수의사 선생님이랑 간호사 선생님이 보들이 녀석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진료를 보고, 약을 받아서 차로 돌아왔고 거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차에서 기다리던 친구가 보들이가 차에서 편하도록 자세를 고쳐주려는 순간, 물리고 말았다고 한다. 순식간이어서 피하거나 주의를 줄 시간도 없었다고.
다음번 병원은 꼭 내가 함께 가기로 하고 아찔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몰랐다. 보들이의 화려한 과거를.
며칠 후 동생이 SNS에서 찾았다며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지금과 달리 털이 북실북실한 과거의 보들이였다. 보호소에 잡혀올 때의 영상인 듯했는데 보호장구를 착용한 보호소 직원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의 공격성이었다. 사람을 전혀 믿지 않는 들개의 모습이었다. 그런 개를 포획한 것이 대단했다. 우리가 저런 개를 데리고 있는 거야?
더욱 대단한 과거는 한 달 후 동물병원에 갔을 때 알 수 있었다. 피를 뽑거나 할 때 입질 때문에 입마개를 채우는 것은 당연한데, 어쩐 일인지 간호사도 수의사 선생님도 보들이 녀석에게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호자님들이… 잘 잡아주실 수 있죠?”
우리는 능숙하게 보들이를 붙잡았다. 녀석은 우리의 손 안에서는 얌전하기만 했다.
이곳은 보호소 연계병원으로 구조됐을 때부터 보들이가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았던 곳이었다. 여름에 구조된 보들이는 마침 여름방학이라 실습 나왔던 대학생 보조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는 사람 손을 탄 지 얼마 안 되어 거칠었던 시절이었다. 주사를 맞히기 위해 보들이를 붙잡은 대학생 팔을, 선생님 표현에 따르면 ‘잘근잘근’ 씹어버렸다고. 당시의 상황이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여 다들 정신없이 상황을 수습했을 것이다. 그 상황을 모두 지켜본 병원 분들이 보들이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모습을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정말 잘해주시나 봐요.”
우리한테 고분고분한 보들이 모습에 놀란 수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동생과 나는 서로에게 물었다. 우리가 잘해주는 편인가?
개에게 잘해준다는 의미는 뭘까. 잘 챙겨준다는 의미일까, 애정 어린 태도로 잘 대해준다는 의미일까. 어느 쪽으로 봐도 우리가 특별히 잘해주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해야 할 일들을 정확히 해주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식사, 약, 산책은 매일 정확한 시간에 해준다. 집안 어디나 돌아다닐 수 있지만, 사람에게 으르렁거리면 방석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픈 개라고 무조건 불쌍해하지 않는다. 잘했을 때는 간식으로 보상하고, 잘못했을 때는 짧게 주의를 주고 끝낸다. 크게 혼내거나 소리 지르지 않는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보들이의 화려한 이력을 알았다면, 우리는 안전장갑과 파상풍 예방주사를 방패 삼아 보들이에게 덤벼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모한 도전을 통해 우리는 개의 눈치를 살피는 대신에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떤 개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보다 원칙과 규칙을 통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계기였다.
다만, 아직은 경계를 늦출 때가 아니다. 보들이는 여전히 자기만의 성깔이 있다. 계속 조사하고 공부하자. 누구와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반복해서 가르치자. 임시보호가 끝나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