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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Oct 20. 2022

피, 땀 그리고 오줌

사람과 개의 한판 승부


안전장갑을 주문했다. 그리고 친해지기 위해 줬던 간식을 간식을 끊었다. 정해진 양의 사료 외에는 치석 관리를 위한 개껌 반 개가 전부였다. 어차피 다이어트도 해야 하니 먹을 것으로 관심을 사는 일은 잠시 그만두자. 


다음날 장갑이 도착했다. 비장한 각오로 천천히 장갑을 꼈다. 보들이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방석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반응을 살폈다. 간식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평소보다 덜 적대적이었다. 한 번의 시도로 하네스와 턱시도를 모두 벗길 수는 없다. 옷이 갑갑해 보이지만 일단 하네스부터 풀어보기로 했다.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보들이는 경계를 하면서도 도망가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버클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망설일 시간은 없어. 버클에 닿는 순간 바로 풀어야 해. 연습도 해봤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해 봤으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아니, 해야만 해.


자, 지금이야!


장갑 끝으로 버클을 만지는 순간, 보들이가 몸을 빼냈다. 하지만 나도 버클 하나는 풀었다. 놀란 보들이가 풀린 하네스를 덜렁거리며 화장실로 도망갔지만, 개는 문을 잠글 수 없다. 나는 서둘러 따라가 보들이를 붙잡고 나머지 버클을 풀었다. 벗어나려는 몸부림 덕에 하네스가 쏙 빠졌다. 그리고 장갑을 벗으니 손등이 물려 있었다. 피가 살짝 맺혔지만, 소독하면 될 정도였다.


하네스를 정리하고 침착하게 상처를 소독했다.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동안 보들이는 내 눈치를 살살 살피는 듯했지만 모르는 척했다. 별거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보들이가 사람이 자기를 만져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가 공격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턱시도는 하루 더 있다가 시도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다. 사람 둘에 소형견 하나니까 겁먹을 일은 없었다. 다만 보들이가 우리를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는 게 중요하므로 자세를 낮추고 부드럽게 다가갔다. 동생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누가 잡을까? 그래, 빠르게 끝내자.


동생이 잡고 내가 단추를 풀었다. 그런데 단추를 대여섯 개쯤 풀었을 때, 동생이 나를 저지했다.


“그만, 그만. 멈춰!”


바닥이 흥건했다. 겁먹은 보들이가 오줌을 지리고 만 것이었다. 오줌 옆에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개는 다치지 않았다. 동생과 내 손에서 난 피였다. 자잘하게 여러 번 무는 식이라 무는 힘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프긴 했다.


멀쩡한 손으로 바닥을 닦고 상처를 처리했다. 그래도 단추는 다 풀었으니 좀 편해졌으리라 생각하며 보들이를 봤다. 이런. 속단추까지 있는 옷이었다. 대체 옷을 어떻게 입힌 거지?


강아지를 좋아했던 동생은 속상했는지 보들이 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개에게 화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건 익히 봐왔기 때문에 우리는 혼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애초에 급하게 다가간 쪽은 우리였고, 보들이는 가만히 있다가 놀란 것뿐이었다. 모든 개가 언제나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우리는 최소 24시간 동안은 무심하게 대하기로 했다. 사료를 줄 때나 개껌을 줄 때도 이름을 부르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보들이 쪽을 바라보며 반응을 살피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의 일상을 즐겁게 보내기로 했다. 


또 하루가 지났다. 아침이 밝자 동생의 방이 시끌시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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