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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Oct 25. 2022

반전 매력

알고 보면 애교 넘치는 편


“얘가 먼저 와서 인사했어!”


동생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놀랍게도 보들이는 동생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동생이 일어나는 기척이 들리자 녀석이 살금살금 다가와 냄새를 맡더란다. 손을 뻗으니 그 위로 머리를 갖다 대며 좌우로 비볐다고 했다. 뭐지, 이렇게 급작스러운 전개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나도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봤다. 냄새를 킁킁 맡더니 낼름 핥았다. 손가락으로 턱 밑을 살살 긁어줬더니 으르렁거리는 대신에 꼬리를 흔들었다. 갑작스러운 해빙 무드에 안심이 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어제의 그 개가 맞는 거지?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하룻밤 사이에 우리와 보들이의 관계는 180도 달라졌다. 보들이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오며 꼬리를 흔들었고, 우리의 부름에 응했다. 이제 간식이 없어도 ‘앉아’, ‘손!’ 등의 명령어를 수행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 어느샌가 다가와 발밑에 누웠다. 그간의 경계심이 무색할 정도로 보들이는 애교가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개였다.


그리고, 마침내 첫 산책을 했다.


털이 없어 추위를 많이 타는 보들이를 위해 산책용 털조끼를 준비했다. 좀 시크해 보이는 외모라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할 수도 있어서 자잘한 꽃무늬가 박힌 귀여운 디자인으로 선택했다. 


킁카킁카.


녀석은 물 만난 듯 신이 났다. 풀냄새를 맡자마자 거하게 오줌을 쌌다. 꼬리가 바짝 올라가며 살랑거렸다. 그동안 녀석도 우리도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이전 임보자님이 산책교육을 잘 시켜준 덕분에 튀어나가거나 하는 일 없이 사람의 속도에 잘 맞춰 걸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총총거리며 앞서갔다가도 뒤를 돌아보고 잠시 멈춰 기다렸다. 완벽했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은 있었다. 


“안 돼!”


잠깐 방심하는 순간, 순식간에 바닥에 떨어진 열매나 먹을 것을 주워 먹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화단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을 주워 먹고, 누가 반쯤 먹다 버린 귤을 귀신같이 찾아내 삼켜버렸다. 과일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때로는 길가에 떨어진 돼지뼈(이런 게 왜 길가에 있는지 모르겠지만)나 치킨뼈도 찾아냈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특히 치킨뼈는 날카로워서 위장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 입에 넣게 해서는 안 될 품목이었다. 보들이와 산책할 때는 언제나 감시모드였다. 


어느덧 병원에 갈 날이 다가왔다. 심장사상충 3기였던 보들이는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상태를 보고 약을 받아와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지만 이제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동생 친구가 함께 가고 싶다며 보들이의 병원행에 동참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이 겁 없는 친구의 동행을 허락한 것은 명백하게 우리의 실수였다. 아직 보들이는 우리 외의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은 상태였고,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병원에 갔던 동생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핏자국과 물린 자국이 선명한 손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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