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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Oct 20. 2022

까다로운 예약 손님

쉽지 않은 두 번째


두 번째 임시보호는 보리와 바비가 출국하고 딱 열흘 만에 시작됐다. 


이전 임보자님이 직접 바래다준 녀석은 2살 정도의 중성화된 수컷으로 보더콜리를 닮은 소형 믹스견이었다. 그간 짐이 많아졌는지 커다란 쇼핑백에 가득한 계절별 옷가지부터 각종 용품과 약까지 거의 이사 수준의 이동이 있었다. 턱시도를 빼입은 녀석의 모습은 의젓하기만 했으나 반전이 있었으니 그것은 이전 임보자님이 전해준 장문의 편지에 있었다.


그렇다. 직접 손으로 쓴 몇 장이나 되는 편지였다.


편지에는 약 먹는 시간부터 산책 습관, 기질과 주의사항, 친해지는 방법까지 담겨 있었는데, 문제가 생길 경우 자신에게 언제든 연락을 달라는 당부까지 있었다. 


심장사상충 3기 치료 중이라 약을 먹여야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른쪽 눈이 실명이라 눈곱을 떼주고 연고를 발라줘야 하는 것쯤은 별거 아니었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털이 많이 빠져서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 기관지 협착으로 심한 운동은 안 되지만 체중조절이 필요하다는 것도 어려운 임무는 아니었다.


문제는, 엄청난 경계심과 입질이었다.


먼저 다가와 공격을 하진 않지만 우리가 1미터 내로 가까이만 가도 벌써 으르렁거렸다. 섣불리 만졌다가는 물리고 말 것이었다. 일단 후퇴. 아니 일단 그대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다행히 식탐은 강해서 저녁약과 사료는 뚝딱 해치웠지만 그것이 다였다. 녀석은 처음에 자리 잡았던 방석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턱시도와 하네스를 한 상태로 잠이 들었다.


이 아이에게는 이미 두 개의 이름이 있었다. 하나는 동물등록칩에 등록된 이름, 또 하나는 이전 임보자님이 지어준 이름. 이미 SNS에는 이전 임보자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었기에 우리는 공식 이름은 바꾸지 않고 우리끼리만 이름을 하나 지어주기로 했다.


보들.

지금 듬성듬성하게 난 털이 언젠가는 풍성하게 다시 나서 보들보들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절반, 그리고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서 성격도 보들보들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절반이었다. 예상보다 까다로운 손님이지만 우리에게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장은 하루 두 번, 약과 사료를 제시간에 챙기는 일부터 하자. 나머지는 조금씩 노력하면 돼. 일주일 정도는 시간을 주자. 우리는 일주일 정도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보들이가 오고 일주일, 우리는 여전히 보들이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고, 녀석은 아직도 턱시도와 하네스를 입은 상태였다. 으르렁거리며 경계심을 보이는 것도 변함없었다.


간식을 주면 다가오기는 했지만, 간식만 쏙 먹고 자기 자리로 잽싸게 돌아가버렸다. 간식도 사람으로부터 30cm 이상 떨어진 곳에 둬야만 먹으러 왔다. 좀 더 다가왔다가도 금방 다시 멀어졌다. 확인한 것은 하나였다. 경계심을 이길 정도로 식탐이 강하다는 것. 


그 사이 우리는 수백 개의 동영상을 보며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옆으로도 다가가 보고, 엎드려서도 주고, 누워서 던져주기도 했다. 틈날 때마다 우리는 보들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패에 우리는 좌절했다. 


우리가 틀렸던 걸까. 시간이 더 필요한가. 방문 훈련이라도 받아봐야 하나.


동생과 나 사이에 수많은 토론이 오고갔고, 우리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일단 하네스와 턱시도라도 벗기자. 애정과 연민은 이전 임보자님도 이미 충분히 줬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입양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입양 준비다.


우리는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기로 했다. 즉, 손을 좀 물리더라도 하네스와 턱시도를 벗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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