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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Oct 29. 2022

씩씩하게 안녕

캐나다로 가는 길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7시.


잠을 설쳤다. 알람보다 일찍 잠에서 깼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았다. 신경이 온통 공항에 가 있어서 몸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보들이에게 하네스와 목줄을 채우고, 서류와 켄넬을 챙겼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보들이는 마냥 해맑기만 했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보들이는 켄넬 안에서 평화롭게 잠을 잤다. 내심 켄넬 훈련을 제대로 못해서 걱정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켄넬에 잘 적응한 것 같다. 이 정도라면 장거리 비행도 견딜 만하겠다 싶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공항 주변에서 마지막 산책을 하고 마지막 응가까지 깔끔하게 수거했다. 이제 남은 일은 비행기를 무사히 타는 것뿐이었다.


수속을 도와줄 봉사자님을 만나 서류 전달하고, 준비물을 점검했다. 오늘 토론토행 비행기에 함께 탈 다른 강아지도 있었다. 아직 1년이 채 안 되어 보이는 그 강아지는 기내로 탑승할 예정인지 소프트켄넬에 들어가 있었다. 보통 1명의 이동봉사자가 최대 2마리의 강아지를 데리고 비행기에 탈 수 있으니 그 아이와 보들이가 이번 여정을 함께하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두 마리의 개, 네 명의 임시보호자와 1명의 수속봉사자가 이동봉사자와 인사를 했다. 이동봉사자님은 젊은 여자분이었다. 간단하게 두 마리 개를 소개하고 수속이 진행되었다. 서류를 넘기고, 켄넬의 무게를 쟀다. 이제 두 마리의 개는 임시보호자의 품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야만 했다. 소프트켄넬 강아지의 임시보호자가 눈물을 흘리며 작별인사를 했다. 


보들이는 대형수하물을 싣는 곳으로 별도로 데려가야 해서 거기까지 우리가 함께 갔다. 이제 진짜 이별이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여러 번 상상했던 순간인데, 생각보다 담담했다.


조심히 가고, 잘 살아! 사고 치지 말고.


우리가 해줄 말은 그것뿐이었다. 7개월간 보들이도 우리도 최선을 다했다. 더 좋은 날들이 올 테니까 웃으며 보내주기로 하자.


보들이는 이별의 순간인 것을 알았을까. 멀어지는 우리를 보며 낑낑대거나 짖지도 않았다. 이게 낫다. 빨리 잊어야 금방 적응할 테니까.


다사다난했지만 결국은 해피엔딩. 

우리는 이것이 드라마의 끝인 줄 알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다음날 구조자님으로부터 토론토 임시보호처에 도착한 보들이 사진을 받았다. 무언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우리는 구조자님을 통해 미리 보들이에 대한 주의사항을 전달했었다. 친해지려고 하지 말고, 경계심 풀릴 때까지 1주일 정도 내버려 두라고. 그런데 사고는 임보처가 아닌 공항에서 터졌다.


해외 입양을 가는 개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모른다. 따라서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어떤 개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지만, 어떤 개들은 도망을 간다. 실제로 해외로 간 개들이 공항에서 도망가서 실종되거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웬만하면 공항에서 절대 켄넬을 열지 말라는 주의사항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의 입양단체 봉사자님 중 한 분이 장시간 비행으로 지쳤을 보들이를 산책이라도 시켜주고 싶으셨나 보다. 켄넬에서 꺼내는 순간 보들이는 튀어나가 공항 도로를 달렸다고 한다. 리드줄을 잡지 못한 상태라 이중으로 목줄과 하네스를 한 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예 공항 밖 고속도로로 가버리면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공항 보안요원의 도움을 받아 공항 주위를 뱅뱅 돌면서 추격전을 펼쳤고 보안요원이 손을 물려가면서 겨우 붙잡았다고 했다. 구급차까지 온 대소동이었다.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 후로도 우리는 SNS를 통해서, 구조자님을 통해서 보들이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녀석은 생각보다 빨리 토론토 임보처에 적응했고, 3주가 채 되기 전에 입양을 갔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커플과 함께였다. 이제야 진짜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안녕,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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