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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도 Oct 30. 2022

반려견과 유기견 사이

유기견으로 태어나는 개는 없다


우리는 임시보호를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몸과 마음을 재정비해서 좀 더 잘할 수 있을 때 다시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보리와 바비로 시작해 보들이까지 8개월간의 임시보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정이었다. 임시보호는 끊임없는 절망과 희망의 반복이다. 인류애를 상실하게 하는 인간에게 실망했다가, 개의 변화에 희망을 갖다가, 가혹한 현실에 좌절했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을 기대하고 만들어가는 일. 개를 위해 시작했지만 결국 사람이 구원받는 일.


임시보호를 하면서 나는 유기견을 대체할 다른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버려진 것이 그들의 최대 특징인 것처럼 낙인 짓는 표현처럼 보인다. 유기를 한 것은 인간인데 그 책임은 개가 지고 있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애완견이 아니라 반려견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개가 살아 있는 장난감이 아니라 함께 사는 생명체라는 인식이 강해진 것처럼 유기견이 아닌 다른 말로 그들을 부른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찌됐든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규정하니까 말이다.


세상에 유기견으로 태어나는 개는 없고, 그렇게 살도록 운명 지어진 개도 없다. 반려견과 유기견 사이에는 아주 얇은 벽 하나가 있을 뿐이다. 어제의 반려견이 버려지면 곧 유기견이고, 오늘의 유기견이 가족을 만나면 내일은 반려견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미디어나 SNS에 가득한 귀엽고 화려한 반려견의 세상이 전부는 아니며 버려지고 소외된 채 보호소에서 구조만 기다리는 유기견의 세상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동물을 학대하고 버리지만, 누군가는 분노만 하는 대신에 구하고 보호한다는 것을. 한 마리의 개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내어준다는 것을.


언젠가 유기견이라는 말조차 사라지고 임시보호라는 일조차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리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지금 반려견과 살고 있다면 부디 끝까지 함께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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