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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쪽 Sep 16. 2020

소확인 [小確人]

내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사람

우리 집 앞엔 테이블 3개만으로도 꽉 차는 작은 커피숍이 있다. 


2년 전쯤 그 커피숍이 생기기 전에 그 장소는 간판도 없이 창고로 쓰였는데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 작은 공간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버린 공간이었다. 좁은 골목에 인도도 제대로 없이 오고 가는 차로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되는 곳으로 그 창고 양옆에는 오래된 이발소와 야채가게가 있다.

누구의 관심도 못 받던 그 낡은 공간이 어느 날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가득 쌓인 박스들이 나오고 페인트 공사를 하더니 예쁜 조명이 천장을 채우고 하얀 유리창이 반짝였다. 남편과 나는 오고 가며 과연 저 자리에 어떤 가게가 들어올지 궁금해 이런저런 상상을 했었다. 

유리창을 덮은 하얀색 커튼이 열리면서 커피잔과 커피머신이 보였다. 카페였구나.

그 자리에 카페가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공간에 떡하니 카페를 차린 것도 그리고 그 버린 공간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 사장님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가게가 오픈하자 나와 남편은 저 커피숍은 6개월도 못 버티고 아마 문을 닫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큰 대로변에 스타벅스가 대로를 끼고 양옆으로 4개나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픈한 지 꽤 지났는데도 가게 안에 손님이 한 명도 없다. 

그래도 사장님은 주 6일 약속한 시간에 문을 열고 닫았다.


어느 날 보니 일주일 반짝 오픈 기념으로 바닐라라테를 2000원에 파는 행사를 했다. 

2000원에 이끌려 가게 문을 열자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경쾌하다. 아~ 기분 좋다.

은은하게 풍기는 커피 향도 좋고 그 좁은 공간에 나무와 작은 화분들 그리고 아기자기한 소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보기 편하다. 어느 한 곳 정성이 안 들어간 곳이 없다. 모든 게 과하지 않고 딱 적당했다. 

가게가 너무 예쁘다는 말에 모든 것을 직접 발로 뛰며 골랐다고 한다. 사장님의 센스와 부지런함도 좋다.

결제한 2천 원이 미안하리만큼 바닐라라테도 훌륭하다. 바닐라라테에 들어가는 바닐라빈을 시럽이 아닌 진짜 빈을 쓴다며 사람 좋게 웃는다. 맛있다는 말에 고맙습니다라고 답하는 얼굴에 나도 기분이 좋다.

사장님의 친절함도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고 딱 이 커피숍 같다.

그 커피숍을 다녀오고 나서 기분이 참 좋았다. 공간이 주는 힘인지 바닐라라테가 맛있어서 인지 아님 사장님의 친절함 때문이었는지 그 뒤로도 나는 종종 그 커피숍을 찾았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날에는 얼른 뛰어나와 유모차를 들어 가게 안에 옮겨주는 수고스러움에 감사했고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는 날엔 말없이 커튼을 쳐 햇빛을 가려주는 배려에 행복했다.




10대에는 단짝 친구가 내 전부였고 20대에는 목숨을 건 것처럼 사랑에 치열했으며 30대에는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치고 좌절했다. 한 번도 인간관계가 쉬운 적이 없었고 내 맘대로 된 적도 없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내가 좋은 사람에겐 너무 뜨거웠다. 뜨거운 내 마음에 뜨뜻미지근한 상대방 반응이 서운했고 그래서 더 집착했다. 반대로 내 맘에 들지 않은 사람에겐 너무 차가웠다. 분명 좋은 점이 있었을 텐데 두꺼운 벽을 만들어 작은 틈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점점 더 꼬이고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이가 들어서 인지 이제는 인간관계에 크게 의미를 두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나이가 내게 주는 선물이 뱃살만이 아닌 게 감사하다. 

너 밖에 없었던 10대 시절 친구는 5년 전 결혼식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고 20대 때 내 운명의 사랑이었던 그 사람은 이제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차라리 맞짱을 뜰까 싶게 지독히도 싫었던 직장선배는 그냥 너 살대로 살다 저세상 가라 하고 둬 버린다. 

관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져 우리를 힘들게 한다. 너의 마음은 너의 것이고 나의 마음은 나의 것이니 내가 너한테 한만큼, 또는 내가 너에게 기대한 만큼 너가 나한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관계를 객관화하여 거리를 두고 보면 온전히 나에게 더 집중할 기회가 생긴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관계,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됐다. 요즘 나는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만나면 내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사람이 좋다. 


내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소확인은 우리 집 앞 커피숍 사장님이다.

서로 이름도 나이도 어디에 사는지도 몰라서 좋다. 

언제나 보면 얼굴 붉힐일도, 그렇다고 깔깔깔 서로 손잡고 웃을 일도 없다. 그렇게 가뿐해서 좋다.

속속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서 척하면 척하지 않아서 좋다.

만나면 잇몸이 다 보이도록 활짝 웃어주는, 그 미소가 나를 행복하게 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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