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우리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여러 사건 중 비극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숭고한 정신이 깃들어 있거나 생명의 존엄성이 무참히 짓이겨지기도 한 그날들.
한강은 그날들 중 광주의 5월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에게 그 행동이란 동전 뒤집듯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겁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남아 환자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다른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결정은 깊은 고민 후에 나온 결심이며 스스로의 목숨을 걸겠다는 용기의 표현이었을 겁니다.
더 이상 활기차게 숨 쉬던 세상이 아니라 온통 공포와 비명만이 가득한 거리의 한 편에 서 있자니, 이 지옥이 펼쳐지는 중에도 여전히 파란 하늘이 고요한 밤하늘 별들이 얼마나 야속했을까요.
어쩌면 그랬기에 더 마음을 단단히 동여매고 그곳으로 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대부분 죽었습니다.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었고 골목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학생들이었고 출퇴근 길에 스쳐 지났을 시민들입니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을 뿐인데, 평범한 일상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을 그들의 어떤 면이 두려웠을까요.
당시에 힘을 가진 이들은 그들을 고립시키고 정치 프레임으로 만든 정교한 액자를 씌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액자 사진에 걸리려고 눈과 귀를 닫았습니다.
액자에 걸리지 않는다면 삶을 영위할 수 없었기에 자녀들을 단속하고 스스로도 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굴복하지 않고 분연히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자 했지만 쇠붙이 한 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벌써 40년이 지났습니다.
그들이 살던 집은 허물어져 다른 건물들이 세워지고 출퇴근하고 등하교하던 길들은 그날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뚜벅뚜벅 심장을 울리던 차가운 군홧발 소리와 저주의 고성이 울렸을 그곳도 세월이 흘러 많이 변했습니다.
희미해져 가는 숨의 꼬리를 잡으려 애쓰며 찬 바닥을 기었을 어떤 이의 흔적도, 한 번의 검지를 까닥거려 자신의 잔인함을 자랑했을 단단한 근육을 가진 사나이의 거친 숨소리도 없습니다.
이렇게 세월은 하릴없이 흘렀지만 역사는 기록됩니다.
그 역사의 과제는 이제 우리에게 공을 넘겨주었고 더는 그들을 모독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 스러져간 그들의 평안한 안식을 위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알수록 잔인해진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