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은 여름휴가를 무려 5주나 간다고?
프랑스는 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세계 최고의 관광대국으로 그 명성이 자자한 나라다. 프랑스는 일 년 열두 달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인데 특히 계절적으로 햇살이 좋고 밤 10시 넘어 까지 해가 비추는 여름에는 가히 절정을 이루는 곳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상징인 파리를 여행하는 관광객 입장에서 가장 관광하기 좋은 시기는 언제일까? 아이러니 하게도 프랑스를 잘 아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일 년 중 8월이 가장 파리를 편안하게 관광 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한다. 여름에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데 8월에 파리를 관광하기가 가장 수월하다는 말은 마치 모순처럼 들리지만 그 해답은 바로 부럽기만 한 프랑스인들의 장기간의 휴가에 있다.
프랑스인들에게 휴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말 소중한 것이고, 많은 프랑스인들은 조금 과장하면 휴가, 특히 장기간의 여름휴가를 가기 위해서 일 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모은다고 할 정도로 여름휴가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이다. 오죽하면 프랑스인들을 행해 ‘바캉스 민족’이라는 말을 할 정도이다. 이처럼 프랑스인들의 바캉스 사랑은 유럽에서도 특히 유별나고 바캉스 기간도 유럽에서 첫 손에 꼽힐 만큼 긴 나라다.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직장인 포함)은 여름휴가를 최소 3주에서 4주 정도 가고 마음에 드는 곳 한 군데를 정해서 최소 3주 이상을 보내는 방식으로 휴가를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많은 프랑스인들이 3주이상의 장기 휴가를 떠나는 7월과 8월에 관광지에 있는 호텔이나 캠핑장 등을 예약하려고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대부분의 숙박을 최소 1주일 단위로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는 2박 3일 혹은 3박 4일 정도로 숙박하는 게 익숙한데 프랑스에서 여름휴가를 보낸다는 것은 아무리 적어도 1주일 이상이기에 호텔이나 캠핑장들이 숙박을 그렇게 최소 주 단위로 예약을 받는 것이다. 이들의 숙박은 토요일부터 금요일까지거 1주일의 숙박 기간이다. 이런 호텔, 캠핑장의 휴가 시즌 예약시스템만 봐도 프랑스인들이 여름휴가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오래 가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여름 휴가 1주일 가는 것도 쉽지 않고 그것마저도 주말을 끼워서 눈치를 봐야 한다고 하는 상황에서 프랑스인들의 5주 가까이 가는 여름휴가는 그저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19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발표한 ‘2019년 하계휴가 실태조사’를 보면 전국 5인 이상 기업 751곳을 대상으로 여름휴가를 조사했는데 (300인 미만 605개 기업, 300인 이상이 146개 기업 대상) 직장인들의 여름휴가는 평균 4일로 나타났다. 평균 4일 여름휴가를 가는 한국과 적어도 4주를 가는 프랑스의 차이가 너무나 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휴가 일수가 가장 긴 나라로서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일 년 중 약 5주의 휴가(법정 휴가는 30일)를 가는데, 여름에 3주에서 4주 정도를 가고 흔히 스키(ski)방학이라고 부르는 2월에 있는 2주간의 방학을 이용해서 1주에서 2주 정도의 스키 여행을 많이 간다.
서양 사람들이 한국인들은 휴가를 가도 마치 전투하듯이 여기저기를 빠르게, 많이 다닌다고 하면서 우리의 휴가 방식(일명, 전투휴가)이 이상하다고 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휴가 상황에서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휴가 패턴이었던 것이다. 길어야 1주일 (많은 경우 1주일이 안 된다)인 우리의 휴가 기간 동안 비행기타고 동남아도 가야하고, 유럽도 가봐야 하는 우리는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곳을 다니고 인증사진을 찍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 곳에 지긋하게 눌러 앉아서 제대로 된 휴가를 즐기는 프랑스인들과 많은 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어야 하는 피곤한 휴가를 즐기는 우리들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프랑스와 한국의 휴가제도 차이 때문이었다. 1주일 휴가를 가는 우리와 최소 4주 여름휴가를 가는 프랑스인들과의 차이가 그런 휴가패턴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필자도 파리에 사는 동안 이해가 안됐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여름휴가만 되면 마치 이사를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웃 파리지앵들이 집안의 모든 가재도구들을 캠핑카 혹은 캐리어에 다 싣고 휴가를 가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지방으로 이사를 가는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장기 여름휴가를 떠나는 이웃들의 모습이 정말 이사를 가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프랑스인들은 그렇게 많은 휴가기간을 가질 수 있는지를 간단히 보면, 프랑스의 정식 유급휴가는 한 달에 2.5일로 계산해서 일 년이면 30일(즉 5주)가 되는데, 한국이 15일인 것에 비하면 정확히 두 배의 휴가기간을 갖는 것이다. 게다가 주당 근로시간도 35시간으로 한국의 52시간에 비하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현실이다. 프랑스 사람들도 일반적으로는 우리나라 회사원들처럼 9시 출근 6시 퇴근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나라와의 차이는 프랑스 근로자들은 주당 39시간을 초과해서 근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주당 35시간인 근로시간을 4시간 초과해서 39시간을 일했다면 이 초과된 4시간만큼을 반차휴가로 활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프랑스의 독특한 제도인 ‘RTT(Réduction du Temps de Travail)' 라는 제도로서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근로시간 단축법‘ 정도 될 것이다. 이 제도로 인해 만약 주당 35시간을 초과해서 39시간을 일하는 프랑스 근로자가 초과된 주당 4시간을 휴가로 활용한다면 일 년에 최대 24일까지 더 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기본 유급휴가 5주에다가 24일(약 4주)을 더하면 최대 9주를 휴가로 보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5주 휴가만 해도 우리에겐 꿈같은 이야기인데 최대 9주까지 가능하다면 정말 휴가 기간에 못 갈 곳이 없을 것이다. 많은 한국의 회사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근로자들이 회사를 비우고 휴가를 가는 것보다 수당으로 주길 원한다면, 프랑스 회사들은 대부분 휴가를 장려하는 문화도 우리와 프랑스인들의 휴가패턴이 완전히 다른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몇 년 전에는 프랑스의 제도인 RTT를 너무 방만하게 활용했던 프랑스의 에너지 공기업인 EDF(불어 발음은 으데에프, 우리의 한국전력과 비슷한 회사) 가 직원들에게 너무 과도하게 긴 휴가를 주고 있었다는 게 걸려서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당시 EDF가 직원들에게 제공했던 휴가는 무려 10주였었다.
재미있는 것은 8월 휴가시즌이 되면 매일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열던 빵집이나 슈퍼, 카페 등이 문을 닫는 곳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도 장기간의 여름휴가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여름휴가 기간이 되면 TV방송 프로그램도 대폭 줄어들고 뉴스도 단축되며, 아예 뉴스에서 정치소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8월에는 대통령을 비롯해서 여당과 야당 정치인들 모두 3주 이상의 휴가를 가기 때문에 바로 어제까지 치열하게 싸우던 정치인들이 모두 휴전을 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뉴스에 내보낼만한 이슈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여름에는 파리에 개와 관광객들만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 것이다.
이처럼 파리지앵들이 모두 파리를 비우고 장기 휴가를 떠나기 때문에 매일 아침부터 붐비던 지하철이나 버스도 한산하고, 교통정체도 심하지 않으며 여름 내내 비도 오지 않고 늦게까지 날도 밝으니 관광객들이 여행을 하기에 가장 좋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파리지앵들이 파리를 비우는 대신 늘어난 관광객들만큼 집시들과 소매치기들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