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내가 애정하는 시 11

by 유작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1930년대 대표 시인 백석은, 내가 윤동주 다음으로 좋아하는 시인이다. 그가 지은 수많은 명시들이 있지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제일 아낀다. 이미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이 시는, <<여성>>이라는 잡지의 1938년 3월호에 발표되었다.


시를 읽을 때는 그 배경을 알고 읽으면 더 재밌다. 현대 시 수업 시간마다, 교수님이 들려주시는 시인들의 미담과 연애사, 가정환경 등의 숨겨진 이야기가 항상 기대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은 어떻게 그 많은 시인들의 생활상을 동네 친구 얘기하듯이 우리에게 생생히 들려주셨을까? 시보다는 시인 자체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셨던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1938년은 일제 강점기의 어둡고 암울한 시대였다는 것과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백석 시인이 이렇게 아름답고 순수한 서정시를 쓸 수 있는 배경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사진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백석 시인은 굉장한 훈남이었다. 영어와 러시아를 잘했고 거기에 시 잘 쓰고 핸섬한 모던 보이 백석(1912~1995)에겐 당연히 흠모하던 여자들도 많았겠지. 그중에 통영 처녀 '란(박경련)'과 기생 '자야'의 인연은 특별했다.


백석이 평생 마음에 두었던 여인은 기생 '자야'인데, 그녀가 바로 이 시에 나오는 '나타샤'라고 해석한다. 자야를 사랑했지만 백석은 부모님의 반대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고, 경성으로 떠난 자야를 수소문 끝에 찾아 1년 간의 동거생활을 한다. 하지만, 백석은 다른 여인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이들은 영원히 헤어지게 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지은 백석은, 이 시를 자야에게 직접 건넨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는 마음을, 눈 내리는 밤에 흰 당나귀를 타는 모습과 잘 대비시켜서 시의 분위기는 더욱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둘의 슬픈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깊은 산골로 가 그녀와 함께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백석의 애타는 마음. (잠깐 시어 소개를 하자면 출출이는 뱁새, 마가리는 오두막이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 지는 게 아니라, 세상이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라고.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라고. 응앙응앙 우는 흰 당나귀. 백석은 천재다.



우리말을 자유롭게 쓸 수 없고, 일본 제국주의의 무자비함과 폭력성이 짙어지는 가운데에서 시를 쓴다는 것, 시 쓰는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나타샤를 만난 시인의 세상만큼은 따뜻하지 않았을까? 눈이 나리는 겨울밤에, 나타샤를 흰 당나귀에 태우고 둘 만의 오두막을 향해 달리고 싶은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 시가 마음을 녹이는 이유다.



keyword
이전 10화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