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축복이야 May 04. 2024

윗집 아이, 사춘기가 너무해

네 맘 내 맘  20240504


우당탕탕, 월월월, 다다다 다다

11시가 넘은 시간.

윗집에서 나는 소리다.

12시가 다 되어 갈 때 이 소리가 날 때도 있고

어느 날은 여기에다 고함이 더해질 때도 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윗집 아이들은 초등 중학년 정도 되어 보였다.

남자 형제였는데 둘이 비슷하게 생긴 탓에  종종 헷갈렸다.

매일 마주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형제는 수줍은 얼굴을 하고 인사를 건넸다.

자기 몸보다 큰 자전거를 낑낑거리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

나는 버튼을 눌러 기다려주었다.

사랑이 많은 아줌마 모드로 말을 걸었다.

"형아, 정말 멋있다. 자전거도 혼자 척척 들고."

또 수줍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아이들의 학원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달랐는지 자주 마주치지 못했다.

윗집에 형제가 사는 것 치고는

크게 시끄럽거나 소란스럽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욕실을 통해 노랫소리가 들렸다.

목청을 다해 부르는 것에 비해

썩 노래를 잘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정말 감정은 풍부하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늦은 밤 한 번씩 쿵.

뭔가 둔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안 그래도 새가슴에 사소한 것에도 잘 놀라는 나는

그 소리가 날 때마다 깜짝 놀라 심장을 놓다.

입에서는 나도 몰래 나쁜 말이 튀어나왔다.



거기에 소리 가 추가되었다.

다다다 다다.

강아지가 날뛰는 소리.

왈 왈왈 왈왈.

강아지가 사납게 짖는 소리.

보통은 소리는 세트로 들려왔다.

다다다 다다 뛰면서 왈 왈왈 왈왈 짖으면

뭔가 쿵쿵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럼 나의 긴장도와 예민함은 극에 달한다.

이것은 이제 막 사춘기에 들락 말락 하는 내 딸에게도 전해진다.

"엄마, 윗집 소리가 너무너무 커서 힘들어."

"엄마, 자꾸 이상한 소리가 계속 나."

어떤 조치를 취해 달라는 뜻을 그냥 넘긴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자."



강아지는 윗집 아이의 노랫소리가 한창이다가

종종 아이의 고함이 섞일 때, 그 쯤에 온 듯하다.

형제는 중학생이 되었을 테니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나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를 새 가족으로 들였나 보다 혼자 짐작했다.



윗집 아줌마는 직장을 다닌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주 아주 가끔 마주치는 것이 전부였는데

어느 날 강아지와 함께였다.

어느 날은 강아지가 예쁜 옷을 입고 유모차에 있었다.

산책을 가는 모양이었다.

뭔가 강아지의 신분은 더 상승해 보였고

더 귀하게 대우받는 느낌이었다.



아침 9시.

고래고래 꽥꽥!!

우당당탕!! 쿵쿵!! 왈 왈왈!! 다다다 다다!!

형제 중 누군지는 모를 한 녀석이 울부짖고 있었다.

너무 조용한 아침 시간이라 소리가 크게 들렸다.

'왜!!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왜!! 왜!!'

10분을 넘어 계속되고 있었고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보면 아이가 학교에 있어야 시간인데 왜 저러나.

윗집 엄마는 이 사실을 알고나 있나 걱정이 됐다.

소리가  계속되니 나도 예민해지고

심장도 2배속으로 뛰기 시작했다.

애 키우는 엄마로 걱정도 됐다가 아래층 주민으로 화도 났다가 

마음이 이리 뛰고 저리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결국 인터폰을 눌렀다.

경비 아저씨께 상황을 전했다.

윗집에 직접 찾아가신 모양이었다.

그리곤 조용해졌다.

애가 진정이 된 걸까.

그렇게라도 잠시 멈춘 게 다행이지 싶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횡단보도에서 윗집 애를 봤다.

어머나! 그 옆에는 엄마가 있었다.

아... 윗집 엄마가 있었던 거구나.

아이가 아파서 학교를 안 간 건지.

소리를 질렀던 아이가 맞나 싶게 순하디 순한 얼굴로 엄마와 걷고 있었다.

만약 내가 형제를 어릴 때부터 보지 않았다면 왜 저러나,

일주일에 여러 번 시끄럽다 얘기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순둥순둥하던 형제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아직 남아있어서인지 참게 된다.

형인지 동생인지 모르겠지만 사춘기 터널을 지나고 있겠지 싶으니 그러려니 하게 된다.

어쩜 윗집 아줌마는  예쁜 푸들을 아들 삼고 있는지도.



오늘도 쿵. 왈왈. 다다다는 계속되는 중이다.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아~씨!! 소리와 함께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나의 딸도 욕실에서 흥얼거리 시작했다. 

평소에 흰머리로 고민해 본 적 없는 내 머리에도 흰머리가 몇 개씩 보인다.

나도 비슷한 상황을 지나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형제들이 성장통을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정말 깊은 밤은 참아주길.

아줌마 심장 떨어져.




이전 02화 메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