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아빠의 등을 보고 자란다》

5편 침묵의 가르침, 말보다 무거운 뒷모습

by 라이브러리 파파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장 자주 후회하는 순간은
화를 낸 직후다.

말을 뱉고 나면
항상 마음에 남는다.
“그 말을 하지 말걸.”
“그 표정은 아니었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볼걸.”

그날도 그랬다.

아이가 실수를 했다.
작은 일이었다.
컵을 엎질렀고, 바닥이 흥건해졌다.


나는 바빴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말 한마디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말 대신
묵묵히 걸레를 들고 닦기 시작했다.

아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작고 조용한 눈이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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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침묵이
무겁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 침묵 속에는
많은 말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하지만 다음엔 조심하자.’
‘지금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줄게.’
‘아빠도 화가 났지만, 네가 더 놀랐을 거야.’

아이에게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아이에게 보여주는 건
더 어렵다.

말은 순간이지만
모습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아이는
그 기억을 통해 자란다.

나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건 감정을 누르는 일이 아니라,
사랑을 깊게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어릴 적 나도 그런 아빠를 본 적 있다.

어느 날,
내가 유리잔을 깨뜨렸을 때
아빠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고
말없이 유리 조각을 치우셨다.


나는 울면서 “죄송해요”라고 말했지만

아빠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뒷모습이
오히려 더 깊이 남아 있다.

그 침묵이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고,
더 성장하게 했다.

그래서 나도
그 아빠의 모습을 따라 하게 된 것일까.


말없이 등을 보이는 순간,
나는 아이에게 또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

아빠의 등은 말이 없다.
하지만 가장 진한 언어다.

혼내지 않지만 실망을 전하고,
소리를 내지 않지만 기대를 담는다.

등을 보인다는 건
어쩌면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금은 화내고 싶지만,
아이를 위해 참는다.’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그 마음이 등을 타고 흐른다.

아이도 그걸 느낀다.

“아빠가 화났어요?”
“아빠가 나 싫어졌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천천히 돌아선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다.

“아니야. 그냥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어.”

그 한마디에
아이도 안심한다.

등을 보였지만
사랑은 줄곧 아이를 향하고 있었다는 걸
아이는 천천히 이해해 간다.

언젠가는
아이도 누군가에게 침묵을 배울 것이다.

말보다 무거운 사랑을,
조용한 인내를.

그 시작이
내 뒷모습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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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이해하지 못해도
어른이 되어 돌아봤을 때
“아빠의 침묵이 참 따뜻했구나”라고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야,
너는 나를 바라볼 수 있지만
나는 늘 네가 보지 않는 방향에서
널 지켜보고 있다.

그게 아빠라는 사람의 방식이니까.

아빠의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그리고 아빠의 등은
말보다 진한 사랑이다.

나는 오늘도
말 대신 등을 보이며
아이에게 하루를 가르친다.

하지만 침묵은 늘 옳은 걸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이가 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아빠, 나랑 말 안 해?”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다시 멈칫했다.

침묵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침묵은 깊은 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말없이 등을 보인 뒤엔,
다정한 설명이 필요하구나.’

아이가 충분히 감정을 소화할 시간을 준 뒤,
나는 다가가 조용히 이야기한다.

“아빠가 아까는 화가 나서 말하지 않았어.
그런데 너를 혼내고 싶진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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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동자가 말한다.
“그걸 기다리고 있었어요.”

말하지 않아서 상처를 주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는 이유를 전하지 않아서
상처가 되는 거였다.

나는 이제 침묵을 선택하되,
그 뒤에 따뜻한 말을 덧붙이기로 했다.

아이도 서서히 이해한다.
아빠가 왜 아무 말 없이 물컵을 닦았는지.
왜 등을 보이며 거실을 정리했는지.

그 뒷모습 속엔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

“너도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길 바랐어.”
“그래서 아빠가 말 대신 보여주고 싶었어.”

그 마음이 닿는 순간,
아이의 눈빛이 달라진다.

아이와 나는 서로를 알아간다.
조용히, 천천히, 말보다 더 깊게.

침묵이 준 또 하나의 선물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다.

말로 바로 지적하면
아이는 듣지만, 곧 잊는다.

하지만 말 없는 순간에
아이는 스스로 질문한다.

“내가 잘못했나?”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질문이
자기 성장을 이끈다.

침묵은 아이 안에 작은 회의실을 만들어주고,
거기서 아이는 혼자만의 고민을 시작한다.

나는 그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자라면서
세상을 말로 배우고,
또 침묵으로도 배운다.

학교에선 설명을 듣고,
친구에겐 고백을 듣는다.

하지만 집에서,
아빠에게선 말 없는 사랑을 배운다.

그 사랑은
소리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건 장면으로 남는다.

아빠가 등을 돌리고
걸레질을 하던 그 순간.
아빠가 아무 말 없이
책을 읽던 그 오후.

그 장면들이
아이 마음속에
조용히 쌓여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등을 돌릴 때,

그 침묵 속에는
아빠의 방식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게 나의 바람이다.

말보다 무거운 뒷모습,
조용하지만 따뜻했던 그 기억.
그게 너를 지켜주는 힘이 되길 바란다.

나는 말 대신 등에 마음을 얹는다.
그리고 오늘도
너를 위해, 말없이 걷는다.


다음 편 예고

아이 앞에서는 언제나 단단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실수하고, 흔들리고, 후회하는 나도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이에게도 솔직히 말해주고 싶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그 순간,
비로소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다음 이야기》 – 아빠도 사람이야, 완벽하지 않아
불완전함을 고백하는 용기,
그것이 사랑을 더 깊게 만드는 이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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