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한 짝이 사라진 날, 나는 아이 둘을 학교(서당)에 보냈노라
※ 조선시대 아비의 마음을 녹여
혼을 다해 글로 담았습니다.
朝(조 – 아침)은 희망의 시작이 아니었고,
실로 출정(出征, 출정 – 전장으로 나아감)
그 자체였도다.
辛丑年(신축년 – 소의 해) 봄,
시계가 七時三十分(칠시삼십분 – 오전 7시 30분)을
가리켰을 때,
집 안은 이미 혼란의 도가니였도다.
첫째는 유치원 가기 싫다며 양치컵을 들고 달아났고,
둘째는 기저귀를 벗기자마자 도망쳐
소파(조선시대 이불솜) 아래로 숨었으며,
나는 치약(조선시대 죽염)을 한 손에,
양말 두 짝을 다른 손에 들고
아내에게 소리쳤노라.
“저기... 오늘 도시락 싸셨어요?”
그녀는 조용히 나를 보며 대답했다.
“나는 네가 쌌는 줄 알았다.”
이리하여
양말은 한 짝이 사라졌고,
가방은 찬밥으로 채워졌으며,
첫째는 이도 안 닦고 출발했고,
둘째는 코밑에 밥풀을 붙인 채 울음을 그치지 않았도다.
그러나 결국 두 아이를 유모차(지게)에 태워
그 작은 발걸음을 보내며,
나는 해를 바라보며 읊었노라.
등원이란, 시간을 맞춰 보내는 일이 아니라
세상의 풍파에도
마음을 무사히 실어보내는 의식이었다.
“아침이란, 커피 한 잔보다
실종된 양말 한 짝과 더 가깝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