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 신은 신발보다, 풀어진 마음을 더 먼저 묶어야 했노라
아침마다 전쟁이건만,
오늘은 유독
내가 진 날이었다.
戊戌年(무술년 – 개의 해) 늦가을,
아침 등원 시간은 촉박하였고,
첫째 아들(長子, 장자 – 맏아들)이
“아빠, 신발 신겨줘~” 라 외치기에
나는 오른손엔 백팩, 왼손엔 우유팩을 들고
급히 무릎을 꿇었노라.
허나 허둥지둥 신긴 운동화의 끈은
결국 제대로 묶이지 않았고,
아이는 몇 걸음 걷다 멈춰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이건 좀 그렇다…”
나는 뺨이 붉어졌으며,
내심 ‘어릴수록 봐주는 법 아닌가’
생각했으나,
아이는 가방을 벗더니
스스로 끈을 묶기 시작하였고,
내가 도우려 하자
손을 막으며 말했노라.
“아빠는 그냥… 옆에서 보고 있어.”
그 순간 나는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아비로서
잠시 조용히 물러서야 했노라.
풀어진 것은 끈이 아니라
내 자존심이었으되,
묶인 것은
아이의 마음과
그 작은 자립심이었도다.
신발 끈을 묶는 데 걸린 시간은
3분 남짓이었으나,
그 순간 아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묶기 시작한 것이었노라.
“신발 끈을 묶을 수 있다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순간,
옆에서 지켜보는 아버지의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