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남편, 직장인… 그 사이에 ‘나’는 없었다.
그 말이 틀리진 않았다.
내 월급은 고스란히 생활비로 나갔고,
내 시간은 대부분 누군가를 위해 쓰였다.
아침엔 아이들 등교 준비,
퇴근 후엔 아내와 집안일 분담,
밤엔 숙제 챙기고 빨래 개기.
주말에도 나는
가족이 필요한 곳에 있었다.
마트, 도서관, 병원, 미용실, 장난감 매장.
거의 매 순간 ‘누구의 무언가’였다.
누구의 아빠, 누구의 남편, 누구의 기사.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디 갔지?”
가족을 위한 삶이
내 삶을 덮어버리고 있었다.
내 이름은 점점 희미해지고,
‘아빠’, ‘여보’, ‘팀장님’이라는
호칭만 남았다.
누가 나를 부르면
그게 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역할을 부르는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은
어디서도 사라져가고 있었다.
좋은 아빠가 되려 했고,
좋은 남편이 되려 했고,
좋은 직원이 되려 했다.
근데
‘좋은 나’는 놓치고 있었다.
어느 날 거울을 봤다.
피곤한 얼굴,
다크서클,
정리 안 된 머리,
텅 빈 눈동자.
거기 내가 없었다.
이 얼굴은 누구지?
내가 꿈꾸던 인생은 뭐였더라?
내가 좋아하던 건 뭐였지?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뭐였더라?
질문은 쏟아졌고,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
나는 점점 사라졌다.
누구 하나 탓하고 싶진 않다.
아내도, 아이도,
세상도.
그저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았던 탓이다.
나는 모든 걸 가족에게 썼지만,
정작 나에겐
한 조각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나에게 쓰려고 한다.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고,
혼자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책 한 장을 넘기고.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그 30분이
다시 나를 채워주는 시간이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
가족에게 더 오래 웃어주기 위해,
나는
이제 나를 지켜보기로 했다.
가족을 사랑하는 건
내가 나를 지키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걸
이제야 배운다.
희생이라는 말이
그럴 듯해 보여도,
그 안에 ‘나 없음’이
지속되면
그건 결국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다.
나를 잃지 않으려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지 못한 감정을
조용히 꺼내 본다.
지금 이 글도
내가 다시 나로 살아가는
하나의 기록이다.
나는 가족을 위해 살았다.
그 말은 아직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젠
‘나도’ 함께 살기로 했다.
내 이름으로.
내 마음으로.
내 삶으로.
“가족을 위해 살아온 나는,
이제 내 이름으로도 살아간다.”
– 인생의 바닥에서 마주한 솔직한 감정.
‘없다’는 건 때론 ‘보다’를 가능하게 한다.
다음 편은 그렇게 다시, 빈 잔에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