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한 걸 고백하는 건, 논문을 지키는 일이다
그 한 마디가 머릿속을 더 메말라가게 했다.
이런 말로 빠져나가야 할까?
아니면 솔직히 고백하고,
그 빈틈을 내가 직접 메꾸진 못했지만,
인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나을까?
‘연구의 한계’란 단어는 언제 들어도 찝찝하다.
애써 쌓아 올린 논리의 탑에
내가 스스로 금을 긋는 기분이니까.
하지만 연구자는 안다.
그걸 쓰지 않으면
자도, 심사자도, 나 자신도 그 논문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걸.
"왜 이건 안 했어?"라는 질문에
"몰랐어요"보다
"한계임을 알고, 앞으로는 이렇게 확장할 수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방어가 아닌 설계라는 걸
진짜 연구자라면 안다.
내가 못한 건
데이터를 못 모았거나
시간이 부족했거나
모델이 너무 복잡하거나
혹은, 정말 중요한 변수 하나를 빠뜨렸거나.
그걸 ‘변명’으로 쓰는 게 아니라,
‘다음 사람에게 주는 지도’로 쓰는 게 한계 서술이다.
한계란 단어를
이렇게 오래 붙잡고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모자란 걸
글로 쓴다는 건
결국 내가 논문에 얼마나 진심인지,
나의 리서치 태도를 드러내는 고백이니까.
가장 부끄러운 순간은
그걸 ‘애매하게’ 덮으려 했을 때였다.
어설프게 회피한 흔적은
글에 다 남는다.
심지어 글보다 먼저 나를 부정한다.
하지만 용기 있게 썼을 땐 달랐다.
심사위원도, 교수님도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제야
논문을 ‘완성’했다고 느꼈다.
못한 걸 고백하는 건,
논문을 지키는 일이었다.
연구의 목적은 전지전능한 결과를 내는 게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과정’을 설계하는 것.
그래서 한계는 연구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연구를 지켜주는 울타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