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의 이유 feat,못된딸년
자신이 없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엄마처럼 내 자신은 없고 가족만, 아니 조금 더 뾰족하게 자식만 위하는 삶을 살아갈 자신이 내겐 없었다.
그건 내가 엄마를 바라본 엄마의 일생이 남편과 자식에게 너무 헌신적이었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다 저런 삶을 살아가지는 않겠지만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중에서 가장 가까운 여자인 엄마의 삶이 행복해 보이진 않았었다.
불행해 보였다는 건 아니다. 엄마에게 한번도 불행하냐고 물어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녀 나이 스물 셋, 사랑을 알고 결혼 했을리 없다. 농촌에 살았던 엄마는 농사짓기 싫어 도시남자에게 시집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 시절 대부분이 그랬듯 엄마는 선을 봤는데 그 선자리가 지금의 내 아빠 - 그는 통영 바닷가 출신으로 키도 제법 볼만하고 덩치며 얼굴이며 그 당시 빠지지 않는 인물이였다. 일찍이 여러 도시를 다니며 일을 해온 아빠는 성격도 서글서글! 시원시원(불같을지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해서 엄마의 형제들인 외삼촌들께서 모두! 다! 합격이라고 하셨단다. 그렇게 엄마는 아빠와 결혼을 했다.
결혼하고 보니 현실은 이러했다. 성격 짱짱하고 꼿꼿한 홀시어머니에 빚만 있는 형편이었고, 그 시어머니는 소고기만 드시고 옷도 양장점에서 맞춰입으시는 분이였다. 누구탓을 하겠는가! 이미 결혼은 했고, 물릴 생각조차 안했을꺼고! 출가외인이니 친정에 말도 못했을거고! 그냥 묵묵히 살아내지 않으셨을까.
신혼생활은 꿈도 못꾸고, 일 핑계로 늦게 오는 남편대신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고된 살림을 시작했다.
내가 아는 우리 할머니는 고운 소리를 하지 않으시는 분이셨다. 내가 손녀인데도 나한테 "이쁘다" 이 한마디를 해주신적이 없으신 분이다. 엄마한테는 어땠겠는가?어려운 형편인걸 알면서도 엄마한테 이거해라, 저거해달라 하셨을텐데 그마저도 고운소리로 했을리 없다. 근데 내가 못된딸년임을 느낀 하나가 여기있다. 여태 단 한번도 이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는거다. 얼마나 외로웠을까,,얼마나 힘들었을까,,얼마나 엄마도 엄마가 보고싶었을까,,그 마음을 이글을 적으면서 궁금해졌다는 거다.
못될딸년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