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을 좋아했기 때문에
떡국
재료 : 떡국떡, 참기름, 소고기, 간 마늘, 간장, 파, 소금, 후추, 달걀
1 떡국떡을 헹궈 물에 불린다.
2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소고기를 볶는다.
3 물을 붓고 간 마늘, 간장을 넣는다.
4 물이 끓으면 떡국떡을 넣고 끓인다.
5 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6 달걀지단을 부쳐 잘라 올린다.
7 후추를 뿌려 먹는다.
김치전
재료 : 김치, 부침가루, 물, 참치캔, 참기름
장 : 간장, 꿀, 고춧가루, 깨, 식초
1 김치를 잘게 자른다.
2 부침가루를 붓고 참치캔을 넣고 물을 적당히 붓고 잘 섞는다.
3 기름을 두른 팬에 한 숟가락 크기로 부친다.
올 초 새해에 사람들을 여럿 초대했다.
일본인 사람들 몇몇도 왔고
교회 사람들도 몇 명씩 몇 차례 왔다 갔다.
자취한 경험 없이 겨우 1년 차 주부였던 나는
가장 만만한 떡국, 김치전, 불고기 같은 걸 준비했는데도
2인분 이상을 하려니까 떡국의 떡이 불어 버리고
김치전은 태우고 불고기에 양념을 빼먹는
실수를 연발했다.
게다가 오빠의 지인들을, 나는 초면인 사람들을
잘 대접하고 싶기도 해서 긴장하기도 했다.
여기선 한국 마트에 가야만 떡국 떡을 살 수 있는데
초대한 사람과 떡국 떡의 양을 잘못 계산한 내 실수로
가벼운 다툼이 시작됐고 불필요한 언쟁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혼자 반복해서 오해했던 것까지 끄집어낸 나는
다음 날까지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손님들이 오는 당일 아침에 다시 다투는데
한국에서 온 갑작스러운 슬픈 소식까지 더해졌다.
그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떡국 떡의 양은 알맞았다.
하지만 그걸로 내 속상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고
한국에 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만 더해졌을 뿐이었다.
이러저러한 일들이 쌓여 마음이 계속 불편했던 내가
오빠의 손님들에게 더 다정하게 대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미안하고 후회가 된다.
내년 새해에 다시 초대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외에도 우리는 몇 번을 더 다퉜는데
대부분 사소한 말들의 오해가 원인이었다.
어떤 다정하지 못한 마음들은 언제나 후회로 남는다.
다정한 마음을 줄 기회를 놓치는 것 또한 그렇다.
다정함은 언제나 반갑고 누구에게나 기쁘지만
다정한 태도를, 다정한 말을 적재적소에 건네서
오래 기억에 남고 추억이 되는 선물로 줄 기회는
그리 흔치 않으니까.
앞으로 그와 나에게 오래 슬퍼할 만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그곳에 우리가 꼭 함께 있었으면 한다.
그 일이 다른 한 사람을 피해 가는 행운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
같이 겪지 않은 일에 같은 슬픔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고,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므로.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어떤 퇴사한 사람의 유튜브를 보고 있는 오빠에게
그런 냉소적인 말투나 판단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무심코 던진 내 평가절하의 말이 오빠를 화나게 했다.
오빠가 감정 이입하고 있는 이야기를
내 냉소적인 마음으로 재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오빠는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내 책,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가리키며
내가 오빠를 좋아했던 건
저 작가처럼 따듯한 사람이기 때문이란 걸 안다고.
그 말은 오빠 자신도 예전에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삶에 지쳐 자신이 변했단 걸 안다는 말이었다.
그때 나조차 당황스럽게도 눈물을 왈칵 쏟은 나는
오빠가 그 시절의 오빠를 잊은 줄 알았다 대꾸했고
그 바람에 다툼이 쉽게 화해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어 후회스럽다.
내가 따듯한 사람을 좋아해서
오빠를 좋아한 걸 안다고 했지만
사실 순서에 오해가 있다고.
내가 오빠를 좋아했기 때문에
따듯한 마음들을, 다정한 마음들을
좋아하는 내가 되었다는 것.
이게 올바르다.
이십 대 초반의 내가 이십 대 후반의 오빠를 만나
오랜 시간 동안 좋아하고 애달파하면서
오빠라는 사람을 가장 어른스러운 사람,
그래서 가장 닮고 싶은 어른으로 여겼다.
그래서 내 취향의 대부분은 오빠를 기준으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말의 ‘같이’는 영어의 ‘like’와 ‘with’의 뜻을 함께 갖는다. 뭐든 당신과 ‘같이’하면 결국엔 당신‘같이’ 된다는 뜻일까.”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새해 손님맞이를 모두 끝낸 우리는
겨울 바다를 보러 갔다가 그 길로 시즈오카까지
1박 2일의 갑작스러운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였지만
어떤 것도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올해도 끝으로 향한다.
연말보다는 연시가 더 기대가 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외국에 있어서 나이를 먹는다는 부담이 덜하고
특별한 행사 같은 것들에 자유로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올해에도 손님들을 초대할 기회가 있다면
살림 경력이 1년 더 쌓였으니 좀 더 수월하게
손님들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새로운 메뉴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