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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Jul 17. 2024

'글'이라는 언어

오해가 아닌 '이해'로 읽는 글

'글'이라는 것만큼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을까.


어떠한 면에서 글은 말보다 더 신중하다. 물론 세상의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버튼만 클릭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구독자가 되는 시대이니 나의 영향력이 어떠하든 글이 가지는 신중함이 예전보다는 가벼워진 것은 부인할 없는 사실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글'은 '말'보다 조금은 신중한 언어라고 믿고 있다. (사실 믿고 싶은 것에 가깝다.)


다른 한편으로 글이라는 것은 오해를 부르기도 쉽다는 생각이 뒤따른다. 글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라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서는 읽는 이가 쓰는 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읽는 이가 문장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작가가 의도한 행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 글이 비록 조금 덜 정제된 모습이더라도 오해라는 것이 자리 잡을 틈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적을 것이겠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를 때가 많다.

 누군가는 내가 찍은 마침표와 느낌표에 자신만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글'이라는 언어가 가지는 묘미가 아닌가. (물론 글을 쓰는 사람도 읽는 이의 특성을 고려해야 할 때가 많다. 사실 현실에서 활발하게 사용되는 대부분의 글은 쓰는 이와 읽는 이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직접 나누는 대화 속에서는 표정과 목소리 톤, 상황 속 분위기 등 비언어적인 요소가 또 다른 언어로 자리 잡고 상황을 주도한다. 반대로 오로지 텍스트 자체로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은 비언어적인 모든 상황 속 분위기를 오로지 텍스트 자체에 녹아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함께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된 단어와 문자의 나열만으로 최대한 담백하게(!!) 내 진심을 아무런 오해 없이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을 참 오래 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글이라는 언어는 쓰는 이와 읽는 이의 세월이 쌓인 경험, 느낌, 감정 등이 함께 앙상블을 이루는 새로운 언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나만의 앙상블이 만들어 내 언어로 타인의 글을 읽고 마음에 담는다.





© joannakosinsk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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