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타 Jun 15. 2024

내 기억 속, 작은 만화책 한 권

글밥 있는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용기 한 줌





겨우 읽기 시작한 한글이지만 '책'이란 녀석은 처음부터 좋아했다. 아마도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른들의 손바닥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하드커버 그림책을 책꽂이에 곱게 모아두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책은 서랍장에 고이 보관해 두고 소중히 아껴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때 엄마는 제법 글밥이 많은 책을 읽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그림이 많은 책들이 좋았다. 글밥이 많은 책들은 상대적으로 그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책장을 넘기며 그림을 살펴보는 재미가 없었다. 그런 책들은 사놓기만 하고 제대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와 함께 간 서점에서 만화책 한 권을 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표지에 그려진 주인공의 분홍색 머리가 색감에 예민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리라.


그 책은 다름 아닌 '김동화' 작가님이 그린 <요정핑크>라는 만화책이었다. 당시 서점에 첫 번째 책이 없어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두 번째 책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아이 마음에 꼭 그 책을 사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책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도 모른 채 두 번째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만화책 수십 권을 하루에도 거뜬히 읽어낼 수 있지만 짧은 동화책만 읽어낸 나의 독서력으로는 하루가 꼬박 걸려서야 그 만화책 한 권을 다 읽어 낼 수 있었다. 저녁이 지나고 어둑어둑한 밤이 되어서야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은 뒤 스스로 얼마나 대단하다 생각했었는지 그때의 그 뿌듯함이란. 언니의 책상 책꽂이에 꽂혀 있던 수많은 만화책들을 보면서 마냥 부러워만 했었는데 이제는 그 책들을 펼쳐볼 용기가 마음 한편에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만화책 한 권을 하루 종일 읽어낸 나의 모습을 기특해하셨고 그 이후로는 만화책을 포함한 많은 책들을 아무 조건 없이 사주셨다. 단 출판사에서 판매하는 전집만은 예외였다. 한꺼번에 책을 구매하면 끝까지 책을 완독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전집만은 절대 사주지 않으셨다. 언니와 나는 서점에서 시리즈로 나오는 책들을 사서 한 권씩 모아 우리만의 전집을 완성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책에 대한 애정이 내 안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 daniellajardim, 출처 Unsplash





이전 12화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숙제하는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