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을 '유의미하게' 문장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그림일기 숙제를 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의미 없는 문장이라도) 마침표나 물음표를 찍은 문장을 온전히 적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받아쓰기 시험이었을 것이다.
나는 쓰는 것과 읽는 것을 이어진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 읽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읽는 것을 좋아하면서 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직까지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단지 나의 섣부른 선입견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나에게도 읽는 것과 쓰는 것을 참 난감해했던 시절이 있었다. 읽을 수가 없으니 당연히 쓰지도 못했던 유아기 시절의 이야기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겨우 한글을 읽기 시작했던 나는 우리 집에서 모든 것이 느린 아이로 받아들여졌다. 그 지표는 꽤 주관적인 것인데 바로 세 살 위의 언니가 유일한 비교대상군이었기 때문이다. (누구와 비교되는가는 참 중요한 문제다!)
대학원 시절 언니에게 놀이 삼아 한글을 가르쳐주었다는 아버지는 뒤늦게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한글을 가르쳐 보려고 노력하셨지만, 나에게 한글은 먼 이야기요 왜 배워야 하는가 전혀 관심 없는 대상이었다. 당시 나는 혼자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낙서를 열심히 생산하는 그냥 어린아이였을 뿐. 그렇게 한글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보편적인 일이었는지 담임선생님이 한글부터 가르쳐주셨다.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받아쓰기 시험은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 놓은 문장을 고대로 옮겨 쓰는 것으로 시작했다. 무늬만 받아쓰기 시험일뿐,칠판에 적힌 문장을 고대로 베껴 쓰는 시험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 방법이 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받아쓰기 시험에 익숙해진 후 제대로 된(?) 받아쓰기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문장을 읽고 우리는 문장을 받아 적는다. 그 첫 받아쓰기 시험은 어린 나이에도 왜 그렇게 떨렸는지. 그렇게 나는 한글을 읽기 시작했고 작은 동화책들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