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내린 뒤의 아침의 공기가 자작하게 서늘해졌다.
문득 집을 나서다가 집 앞에 놓인 작은 택배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먼지 쌓인 포장지 위에 어딘가 자주 접했던 인자하며 익숙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아들아 올해 열매가 잘 맺었으니 보내는 거다. 맛있게 먹어라."
아침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그 한 줄이, 가슴을 스치며 따뜻한 물결을 일으켰다.
나는 조심스레 상자를 열고 안에 든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 상추의 싱그러운 녹색과 토마토의 붉은빛이 한아름 피어올랐다.
간장에 잘 절여진 오이와 양파도 한아름 담겨 있었다.
그 아래로 고추 몇 개, 그리고 작은 고구마 몇 덩이가 포근히 안겨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흙의 온기를 간직한 채 그 안에서 햇살을 품고 있었다.
나는 상추 한 잎을 집어 들고, 코끝에 대어봤다.
비에 젖은 듯 촉촉한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이 잎사귀가 싹튼 곳은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뒤편 텃밭인 것을 알고 있다.
아버지가 무릎 꿇고 씨앗을 심던 그곳이다.
"이 상추는 물이 많아야 맛이 살아. 매일 저녁에 물을 줘야 해 해가 지기 전에."
아버지가 자식처럼 온 힘을 다해 가꾸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모든 농작물들이 그 물줄기의 기억을 안고 먼 길을 왔다.
마치 힘들게 살고 있는 내 마음속 '힘내'라는 영양분을 한껏 집어넣으려는 부모님의 마음과 같이.
토마토를 보니 붉은 껍질이 태양을 머금은 듯 밝게 빛났다.
작년 여름 아버지가 텃밭을 보살피고 오셔서 말씀하셨다.
"이 작물들이 열매 맺는 걸 보면, 기다림의 기쁨을 알게 돼."
"그리고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으니 한 걸음씩 나아가면 돼"
모든 작물은 아버지의 노력과 기다림을 응축한 선물이다.
손으로 만져보니 아직 따뜻함이 남아 있는 듯하다.
아버지의 손등 그 주름진 온기가 스며든 듯 아직 까지도 따뜻하다.
부엌으로 가서, 상추와 토마토 그리고 고추를 씻는다.
물줄기 아래에서 잎들이 춤을 추듯 흔들린다.
나는 아버지가 보내주신 재료로 음식을 만들며 아버지의 텃밭을 떠올린다.
봄에 씨앗을 심고 여름에 잡초를 뽑으며, 가을에 열매를 거두는 그 단조롭지만 노력의 일상.
아버지는 홀로 그 모든 노동을 하시지만 그 안에는 가족을 향한 마음이 가득하다.
"너희가 멀리 가도, 이 맛으로 집을 기억하렴."
모든 재료 안에 담겨있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멀리 와있는 자식을 위해 매번 이렇게 상자를 보내주시고, 쪽지를 읽을 때마다 눈가가 살짝 뜨거워진다.
고추의 매운맛이 입안에 스며들며 아버지의 강인함을 느끼고, 토마토의 부드러운 단맛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당신의 포근함을 삼킨다.
이 음식 한 입이 아버지의 땅과 연결된 다리처럼 느껴진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 열매를 통해 우리는 가까워진다.
아버지가 텃밭을 가꾸는 이유는 단순히 먹을거리가 아니라 사랑을 심기 위함이다.
그 씨앗이 싹트고 열매 맺는 과정이 아버지의 삶처럼 인내롭고 따뜻하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전화를 건다.
"아버지 상자 받았어요. 정말 맛있네요. 고마워요."
수화기 너머,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잘 먹고 힘내라. 내년엔 더 많이 보내줄게." 그 목소리가 가슴을 데우는 햇살처럼 스며든다.
이 선물이 주는 기쁨은 맛 이상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손길과 땀방울 그리고 말하지 않은 사랑의 증거다.
멀리 있지만 이 평범한 농작물이 나를 집으로 데려간다
아버지의 텃밭이 영원히 푸르게 열매 맺기를 빈다.
그리고 이 온기가 내 하루를 밝히는 별이 되리라.
먼 길을 온 이 선물이 가슴에 영원한 봄을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