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색깔은 검은색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들은 번개맨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사람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우리의 어릴 때 모습을 보게 된다면 알 수 있다.
아이는 매 해마다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달랐다.
아이가 사랑하는 캐릭터들이 다를 때마다 나도 함께 유아들의 유행을 따라 캐릭터들을 알게 됐다.
아들은 그의 팬이라는 걸 인증하듯 티셔츠 가슴 한가운데에 사랑하는 캐릭터를 대문작하게 박은 옷을 입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린이집에 갈 때 옷을 입지 않겠다고 불사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옷들은 대체로 밝은 원색으로 또래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어린이집에 가보면 대체로 캐릭터 옷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물론 엄마들의 패션 취향으로 캐릭터 입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나야, 독립 개체인 아들의 패션 의견을 존중했다.
다섯 살까지는 사랑하는 캐릭터들을 동경하며 가슴 한켠에 캐릭터들을 품고 다니는 옷을 입고 지냈던 것 같다.
여섯 살부터인가 옷이 달라졌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본인이었으면 하는 ‘캐릭터 이콜 나’ 공식이 성립되는 캐릭터화되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스파이더맨을 입고 본인이 스파이더맨이 되었다며 스파이더 흉내를 낸다.
캐릭터들이 착장 하는 의류를 구입해서 입혀야 했다.
참으로 신기했던 건 아이가 찾는 옷들이 인터넷에 언제나 있었다.
어떻게 그런 옷들을 어른들이 알고 있을까? 제일 어처구니없었을 때가 브롤스타즈의 레온의 초록색 자켓을 사서 입었을 때였다.
그 옷을 입고 편의점에서 산 츄파춥스를 입에 넣고 다녔을 때 나는 그 모습을 어처구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그렇게 매해 아이는, 아이들은 서로 이야기나 한 것처럼 옷들이 비슷했다. 미취학 아동들의 운동화도 캐릭터로 포진되었다.
그를 지나쳐간 뽀로로, 타요, 폴리, 코코몽, 옥토넛, 번개맨, 헬로카봇, 또봇, 라바, 애니멀포스.
쓰다 보니 갈대처럼 많은 캐릭터들을 사랑했던 아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일 학년 때까지 캐릭터가 있는 운동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2학년부터는 모든 옷과 용품에 캐릭터들이 사라졌다.
언제 그들을 사랑했었나 싶을 정도로 사라진다.
어른들과 유사한 색상의 옷들을 입는다.
가끔 그림이 크게 그려져 있어도 되지만 절대 유아용 캐릭터가 존재하면 안 된다.
옷 사는 게 편해졌다. 아웃렛매장이나 코스트코에서 아들 사이즈 맞춰 대량 구매해 오면 되었다.
아무거나 잘 입었다.
중학생이 되어 아들의 패션에는 어둠이 찾아왔다.
어두운 갈색, 밤색, 어두운 녹색, 회색등을 입었다.
그런 옷들은 성인복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티셔츠에 그림이 좀 그러져 있어도 입었는데
중학교 2학년이 돼서는 본격적인 패션 흑화가 찾아왔다.
상하복 모두 검은색을 찾고 티셔츠에는 어떤 무늬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어디에 가도 검은색 옷을 사긴 힘들었다.
최근에 산 검은색 티셔츠에 손톱만 한 고양이 그림이 있었는데 겨우 통과되었다.
글과 그림이 크게 쓰여 있으면 안 된다.
꼭 본인들을 세상 속 그림자로 만들려는지
검은색 옷만 찾는다.
길 가는 아들과 친구 녀석들을 보니 모두가 패션 흑화되어 있다.
패션 흑화로 대동단결된 모습을 보니 얼굴 하얀 그림자들이 모여있는 느낌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쁠 나이인데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싶은가 싶은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