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눈물이 많아졌다.
사춘기 아들의 불만은 엄마가 본인을 '아가'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언제?"라고 반문했는데 가족 모두가 16살 아들에게 '아가'라고 했다고 증인으로 나타나니
빼도 박도 못한다. 나는 16살 아이에게 아가라고 부르는 엄마가 맞나 보다.
어떤 엄마가 학원에 전화해 ‘우리 아이가 이걸 못해서요.‘라고 말하는 엄마가 별반 다르지 않다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눈높이 자체가 아직도 어린 시절의 꼬맹이였던가. 그건 아니었는데....
'아가‘가 입에 붙을 수밖에 없던 것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이들이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어린아이들에게 집중했던 그 시절 나에겐 아가일 수밖에 없었던 순간을 보내다 보니 당연히 그렇게 지내온 시간이 많았으니 당연한 거다.
이제는 '아가‘라는 단어와 헤어질 때가 왔다.
저녁을 먹고 있었을 때이다.
”아가. 다 먹었어? 앗! 미안해. “
나도 모르게 입에 붙은 듯 자연스럽게 나온 말에 나 조차도 깜짝 놀라서 첫째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멋쩍어하고 있었다. 첫째 표정을 보니 나에게 ’씨익‘ 웃어주고 만다. 큰 아이가 씩 웃으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주는데
그 표정 하나에 고마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책맞게 콧물까지 흐른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다. 이럴 땐 사춘기가 살짝 피해 가는 모양이다.
아이의 성장 과정을 쭈욱 지켜보면서 응원했던 모습들. 스쳐 지나갔던 세월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아이의 뒤집길 응원한 적이 있다.
”조금만 힘내. 뒤집었다. 너 참 대단하구나.”
그러던 아이가 앉고, 걷고, 뛰고 그 과정을 차근차근 해내준 게 너무 고마운 적이 있다. 그런 과정이 스쳐 지나가다 보니 또 눈물 콧물이 흐른다. ‘갱년기인가...’
옹알이 밖에 못하던 아이가 나와 대화를 하고 싸우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 학교에 들어갔는데 영어를 배우고 제2 외국어까지 배우고 있는 아이에게 ’ 아가‘라니...
이제 ’ 아가‘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는 다 큰 어른 형상을 하고 있는 큰 아들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못내 아쉬워 또 눈물이 자꾸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