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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링유리 Oct 14. 2021

13. 악마가 사랑한 천국

피렌체에서 만나 제주에서 살고 있어요.

[피렌체에서 제주까지]

 

악마가 사랑한 천국 돌로미티     


산토리니에서 돌아와 피렌체에서 우리는 함께 현실의 삶을 살았다. 

짝꿍은 열심히 일을 했고, 나도 백수지만 바쁘게 피렌체에서 내 할 일을 했다.

그러다 우리의 1주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덕분에 말이다.

사실 나는 언제부터 우리가 만나기 시작한 정확한 날짜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데, 섬세한 그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악마가 사랑한 천국이 돌로미티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악마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여행지가 돌로미티이다. 바로 이탈리아 북부이다.

알프스 산맥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 돌로미티는 풍경이 장관이다. 그래서 우린 이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갈색으로 나뭇잎이 물들어 아름다운 산들을 생각하니 설렘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아름다운 산속의 산장에서 우리의 1주년 파티를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피렌체에서 돌로미티까지 차로 4시간~5시간 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노래도 함께 불렀다.

돌로미티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다.

유럽이 다 그렇겠지만, 화장실은 갈 수 있을 때 가야 하기 때문에 휴게소를 오면 꼭 가야 한다. 어떤 휴게소는 돈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바지에 쌀 순 없으니 화장실이 있을 때 들렸다.

그리고 우리는 피스타치오 크루아상과 카푸치노 한 잔 씩 각자 주문을 하고 빵을 입에 넣는 순간 누텔라와는 다른 크림의 맛이었다. 더 고소함이 들어간 크림이었다.

지금 내 기분이 피스타치오 크림처럼 달콤하고, 고소하고, 찐득했다.

이 날 먹었던 피스타치오 크림이 들어간 크루아상을 처음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한국에 가득 사 왔다. 그 크림을 먹으면 여기가 이탈리아야 하면서 빵을 구워 찍어 먹는 내 모습이 웃기지만, 한 편으론 귀엽기도 하다. 먹는 거에 진심이라는 점이 말이다. 

우리의 차는 돌로미티에 근접해 갔지만, 날씨는 구름이 가득했다.

돌로미티에 들어서는 순간 날씨에게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가득 찼다.

물론 나는 비 오는 여행에 익숙하다. 내 여행엔 늘 비가 내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특별하게 1주년 기념으로 그리고 가을 알프스는 얼마나 아름다운데 이렇게 예쁜 구름이 아닌 먹구름이 가득한 것인가 말이다.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검은 먹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이 얄밉기 그지없었다.

속상함을 마음으로 가득 품은 채로 비싸게 예약했던 돌로미티 호텔로 향했는데, 리셉션 일하는 분이 갑자기 우리에게 사과했다. 이런 뷰를 보여주게 돼서 유감이란다. 일하는 사람 탓도 아닌데 사과를 하니 괜히 내 얼굴에서 티가 났나 싶어 미안해졌다. 날씨는 내가 바꿀 수도 없고 하늘의 운명 같은 거니깐. 운명의 장난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놀아줘 버려야지 하늘도 나에게 장난을 더 이상 치지 않겠지.. 그래 맘껏 즐겨보자 라는 마음에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머리를 풀고 비를 맞으면서 뛰었다.

배정받은 룸에 들어가니 산속이 안개로 가득해 앞이 흐릿했다. 안갯속에 뷰는 눈치 없이 아름다웠다. 비 냄새, 낙엽 날리는 소리, 빗소리, 저기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와 원앙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일주년 여행이라고 여기까지 왔는데, 좋은 숙소에서 속상해하고 있을 순 없었다. 비가 내리는 운치 있는 돌로미티를 즐기기로 했으니 무엇을 먼저 할까 하다 우선 뭔가를 먹자 말했다. 사람은 음식이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기에 우리는 맛있는 것을 먼저 먹기로 했다. 스위스에서 먹었던 라면 맛은 최고였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돌로미티에서도 그 맛을 보기 위해 피렌체 중국 마트에서 사간 컵라면을 먹었다. 역시나 추운 곳에서 먹는 라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끝내줬다.

우리는 목적지가 없이 차를 끌고 산속으로 갔다. 국립공원 나왔다. 그 국립공원에서 빨간 자동차를 개조해서 다니면서 트레킹도 하고 캠핑도 하는 남자 한 명이 있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짝꿍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역시 우리는 자연을 참 좋아하는 게 분명한 듯했다. 앞이 안 보이는 안갯속을 걸어보기도 하고 비가 오면 비를 맞아보고,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그때 우산을 썼다. 잠시 숙소를 돌아와 숙소엔 사우나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었고, 룸 안에도 건식으로 사우나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우리는 추운 몸을 풀러 공용 사우나를 향했는데, 여기는 누드로 들어오는 곳이었다. 짝꿍과 나만 예의 없이 사우나 가운을 걸치고 온 것이었다. 우리는 잠시 고민하다 그 문화에 맞추어 사우나를 즐겼다. 다행인 건 사람이 거의 없어서 우리 세상이어서 덜 부끄러웠다. 룸에 돌아와 남은 여독을 풀려고 혼자 건식 사우나에 앉았는데, 이 사우나에 물을 뿌리면 습식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와 싸우나를 하는 식이었다. 나는 촌티 팍팍 나게 하는 방법을 몰라 이것저것 눌러보다 밑에 돌로 되어있는 버튼처럼 보이는 것을 눌렀다가 발가락이 잘리는 줄 알았다. 그 돌이 너무 뜨거워 소리를 지르고 찬물에 발을 담그고 한 참 있었다. 와 정말 간호사여도 이런 상황이 닥치면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런 내가 왜 이렇게 웃기는지 둘이서 한참 이야기를 하면서 잠이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모르니 정말 내 손발이 고생하긴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내가 너무 웃기고 좋은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나 자신이 이렇게 웃긴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가끔은 내 사진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남들 시선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날씨가 좋아야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래야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고, 가상의 세계 좋아요를 갈망하는 늪에 빠져서 말이다.

이렇게 비우면 편하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단번에 내가 바뀐다는 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조금씩 나다운 것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짜 여행의 맛을 알아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게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해도 언제나 나를 믿어주고 내편인 짝꿍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SNS를 하는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았던 기회였던 것 같다. 단지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인지, 더 관심받고 싶은 관종으로 살아가기 위해 하는 것인지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듯했다.

잠시 가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우리 둘은 안개 낀 숲 속을 바라보면서 앞으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안개 낀 세상도 안개가 걷히면 아름다운 뷰를 보여주듯이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날들만 가득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우리에겐 비 오는 돌로미티도 그저 아름다웠다. 아름답게 보려고 하니 진짜 한없이 아름다웠다. 여행은 늘 이렇게 아쉬움을 준다. 다시 오라는 뜻인가 보다.

날씨는 인생과 같다. 매번 내 마음 같지 않다. 

그렇다고 우울해하고 있을 것인지 웃으면서 이 날씨의 이 도시를 즐길 것인지는 우리 몫이었다.

야속했던 날씨를 조금은 원망했지만, 나중에는 이런 날씨의 돌로미티는 처음이니까 괜찮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돌로미티에서 보내는 며칠이 그냥 사랑스러웠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너무 아름다운 돌로미티 아니던가.

악마가 아닌 우리도 너무나 사랑한 천국이 바로 돌로미티이다.      

그래도 다음엔 맑은 날씨를 보여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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