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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Jan 03. 2023

집사는 미용사

발톱깎이 트라우마

작년까지만 해도 푸디는 두세 달에 한 번쯤 미용을 했다. 모량이 많고 또 금방 자라는 아이라 가위컷으로만 전문가의 손에 맡겼었다. 언제나 곰돌이컷으로 잘라달라 요청을 드렸지만, 미용하고 난 푸디는 언제나 하얀 백구가 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내가 푸디의 털을 자른 건, 푸디가 다리 수술을 받은 다음부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프리랜서 집사가 된 후.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미용을 할 때 반려견과 함께 있지 못한다. 미용하는 선생님의 말로는 집사가 함께 있으면 아이가 불안해하고 자꾸 움직이려고 하기때문에 미용할 때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그런 이유로 아이를 맡기고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편하지는 않았다. 특히 다리도 성하지 않은 아이라 앉는 자세도 불편할 테고 오랫동안 서 있으면 앞다리를 전다.


그래서 시작했다. 푸디의 미용. 나는 푸디를 눕게 하고(최대한 푸디가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게) 푸디의 털을 잘랐다. 성격이 좋은 푸디는 미용을 할 때에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나는 한 번도 강아지의 털을 잘라 본 적은 없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위질을 했다. 물론 삐뚤삐뚤, 털이 예쁘게 잘라지지는 않았지만 봐줄만했다. 무엇보다도 푸디가 편해 보여서 힘들어도 계속 잘라보기로 했다.

세네 번의 미용을 했고, 실력은 늘었다가 다시 줄었다가 마치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얼마 전 푸디의 발톱을 자르면서 일은 터지고야 말았다.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발톱정도는 잘 자르던 나였는데, 그날은 무슨 정신이었던 건지 세 번째 발톱을 너무 바투 잘라버렸다.



생전 소리한 번 내지 않던 푸디가 기겁하며 달아났다. 아마도 핏줄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강아지는 사람과 달리 발톱 끝까지 혈관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특히 검은색의 발톱을 자를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론상으로 들은 적은 있지만, 설마 피가 나도록 자를 줄은 몰랐다.


미안한 마음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몇 번을 안아주고 다독였지만, 푸디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며칠 후 자르지 못한 발톱을 자르려 다가갔지만,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표정부터 달라졌다. 발톱 자르기를 완강하게 거부하며 시위하는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

발톱이 길어 발바닥을 찌를 텐데, 걸음걸이가 평소와 달리 이상한 것도 같았다. 안 그래도 수술 이후 걷는 게 편하지 않은 푸디가 긴 발톱으로 불편할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오늘은 꼭 발톱을 잘라야겠다고 다짐한다.


푸디, 미안해. 엄마가 올해는 일 좀 줄이고 너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볼게. 대신 너도 약속 하나만 해줘. 발톱 자르는 게 무서워도 엄마를 한 번만 더 믿어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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