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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Nov 22. 2024

[프롤로그] 언젠가는 혼자가 된다






나는 달팽이를 키운다.

몇 년째 작은 수조에서 지내는 달팽이의 품종은 애플스네일. 황금색 등껍질이 멋진 물달팽이다.

나는 가끔 감당도 하지 못할 일을 벌이곤 한다. 물론, 정말 감당할 수 없는 큰 일은 아니고, 조금만 신경 쓰면 감당 가능한 일인데,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돌보는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달팽이를 키울 생각은 없었다. 오래전 친구가 마리모를 선물했다. 처음 우리 집에 온 마리모는 작은 비커 안에서 사는 아주 작은 크기였다. 비비탄 총알만 한 이 초록색 식물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저 비커의 바닥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시원한 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생각날 때마다 물을 갈아줬는데, 그럴 때마다 마리모는 두둥실 수면 가까이로 떠올랐다. 정보를 찾아보니, 어떤 이는 마리모가 좋아서 춤을 추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마리모를 잊는 날이 많았다. 드문드문 마리모를 들여다보면서 잘 살고 있나 관찰했다. 마리모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혼자서 잘 살아가는 아이였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니 정말 살아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운 날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마리모의 크기가 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돌봐주지 않아도 마리모는 몸집을 키워가며 홀로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리모를 너무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커에서 조금 더 큰 수조로 옮기기로 했다. 수조라 해봐야 작은 어항이었지만, 비커에 비해서는 정말 넓은 환경이었다. 수조 바닥에는 작은 자갈을 깔고 해초도 몇 개 구했다. 마리모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관상용 새우도 넣어줬다. 예쁜 물속 세상이 완성되었다. 마리모도 편안해 보였고, 새우도 너무 귀여웠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물질'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우를 키우는 일은 마리모를 돌볼 때와는 너무 많이 달랐다. 새우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수온을 잘 지켜야 했고, 물도 깨끗하게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속 환경은 쉽게 더러워졌다. 여과기가 없어서 물을 자주 갈아줘야 했는데, 물을 갈아줄 때 민감한 새우들은 새 물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기도 했다. 나의 근심은 커졌고, 좋은 방안을 찾아야 했다. 


인터넷에는 수조에 달팽이를 함께 키우는 사례가 많았다. 달팽이를 수조에 넣어주면 물속 환경을 개선할 수 있어서였다. 달팽이는 수조를 청소하는 청소부였다. 죽은 새우의 사체나 수조 바닥에 쌓인 노폐물, 수조 벽면에 붙은 이끼도 달팽이의 먹이었다. 나는 달팽이 세 마리를 어항에 넣어줬다. 처음에는 물이 탁해지는 시간이 좀 늦춰지는 것 같았지만, 달팽이가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새우는 몇 달을 버티더니 결국은 모두 하늘나라로 갔다. 마리모도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검초록색으로 변한 마리모는 집에 온 지 5년 만에 생을 마감했다. 어항에 남은 것은 달팽이 세 마리가 전부였다. 


이제부터는 달팽이가 수조의 주인공이었다. 날씨가 좋은 봄과 여름 사이에 수조를 베란다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자꾸 달팽이가 수조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었다. 나는 달팽이를 다시 수조 안으로 넣어줬다. 그러던 어느 날, 수조 벽면에 이상한 게 생겼다. 작은 포도송이 같은 게 벽에 붙어 있었다. 징그러웠다. 무엇인지 몰라서 찾아보니, 달팽이 알이라고 했다. 이런 환경에서도 알을 부화시킨 달팽이의 모성애, 그리고 생명력에 감탄했다. 난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냥 두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은 좀 무섭고 두려웠다. 달팽이 알은 수온이 높은 곳에서 부화한다고 한다. 베란다에서 햇살을 받으며 둔 것이 그들에게는 산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설마 부화할까,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생각조차 무색하게 몇 주 후에 달팽이는 알을 깨고 나와 수조 바닥을 기어 다녔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수조 안에는 달팽이들이 가득했다. 나는 달팽이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수조를 재정비했다. 조금 더 큰 사이즈를 구했고, 여과기도 달았다. 여과기가 있으니 깨끗한 물이 오래 유지되었다. 달팽이 먹이도 구매했다.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행복하게 지내다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달팽이들은 가끔씩 탈출을 감행했지만, 너무 높은 곳에 수조를 올려놔서인지 바닥에 떨어지면 충격이 컸다. 멋진 황금색의 껍질이 깨지는 일도 있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운이 좋은 녀석은 빨리 발견해서 물속에 넣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물속을 헤엄치며 다녔다. 그러나 오랫동안 발견되지 못한 달팽이는 말라죽어서 발견되곤 했다. 때론 물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달팽이도 있었다. 애플스네일의 수명은 1년~4년이라고 하는데, 3년 이상 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지금 수조 안에는 단 한 마리의 달팽이만이 살아가고 있다.

두 달 전만 해도 두 마리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움직임이 없어서 꺼내서 냄새를 맡아봤는데 좋지 않았다. 결국 떠났구나 싶었다. 달팽이 두 마리가 있을 땐 마음이 편안했었는데, 이제 홀로 남은 달팽이를 볼 때마다 좋지 않다. 사람이고 동물이고 혼자선 살아가기 쉽지 않은 것이 삶 아니던가. 두 달팽이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들의 생을 짐작하며 서로에게 의지했다. 그 모습이 수조 밖에서 무심코 바라보던 나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그들은 늘 함께 시간을 보내며 붙어 있었다. 마치 소울매이트처럼.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가 떠난 후에 나는 남은 달팽이가 걱정되었다. 상실감에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 신경을 썼다. 밥 챙기는 일을 잊지 않았다. 매일 아침, 달팽이는 안녕한 지부터 체크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런 내 걱정과는 다르게 달팽이는 혼자서도 아주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사람의 명이 다르듯이 세상 모든 것들의 수명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언젠가 하늘이 부르는 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서는 지금 마음껏 내 감정을 속이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소비할 수 없을 때까지 온 감정을 다 털어내고 나면, 아주 평온한 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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