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적막이 좋은 당신
어떤 노래로도 날 채울 수 없는 밤이 있다.
어떤 말로도 내 마음을 홀릴 수 없는 그런 밤. 고요한 침묵만이 나의 친구가 되어 나를 위로하고 보듬는다. 적막만이 남아 있는 밤. 나는 이 밤이 좋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밤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요함 속에 느끼는 편안함. 나는 가볍게 떠올라 밤에게 내 몸을 맡긴다.
가끔 과분한 사랑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이대로 괜찮은 건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미노리카와 오사무 감독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보면서 세 친구가 화창한 날에 도시락을 싸들고 공원 산책을 하는 장면에서 웃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은 살아감에 있어서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구나.'
언제고 좋은 감정으로 언제까지든 누군가 옆에 있어 준다면 결혼하지 않고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겐 너무 과분하다. 나같은 사람에겐 한 남자의 여자가 되는 일은 어쩌면 이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온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사랑에는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그 존재 자체가 의미없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강도하, 서찬휘의 만화만담을 인터뷰하면서 오희려 역인터뷰를 당하게 되었다. 사랑의 정의에 대해 '희생'이라고 말했던 내게 그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즐거운 연애를 해요.
연애는 즐거우려고 하는 거야.
연애만큼은 즐거워야 한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지금에서야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난 사람에 시달리고 생활에 지쳤다. 나이 들어 갈 수록 좋은 일보다 시시하고 참고 견뎌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으므로, 연애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하라는 조언이 이제서야 뜨겁게 와닿는다.
그럼 어쩌면 그 시절에 난 누군가에게 희생할 준비가 되었던 것일까. 결혼 해도 될만큼. 자꾸만 변해가는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조심스러워 하는 나. 무심한척 무딘척 하는 마음은 아마도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어막을 수십개는 쳐놓고도 그마저도 안심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밤이 깊다.
잠이 많은 내가 이렇게 잠을 쪼개서라도 잠들지 않는 이유는 밤의 소리를 듣기 위함이다. 티비소리, 라디오소리, 사람소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안에서 나는 밤의 고요한 적막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