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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가 너무해

by 김효정



환절기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계절의 변화는 생명체에 혹독한 몸살을 앓게 한다. 식물만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온도차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잎이 노랗게 변하거나 시들기도 한다. 그래서 해가 짧아지는 가을에 최대한 빛이 잘 비추는 곳에 두어 충분한 광합성을 하도록 한다. 물도 덜 주는 것이 좋은데, 흙이 마르는 속도가 느려지는 가을에 여름처럼 물을 주게 되면 과습이 올 수 있다.



나는 환절기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온다. 눈꺼풀이 얼마나 무거운지 컴퓨터를 켜놓고 꾸벅꾸벅 졸기일쑤인데, 아메리카노를 진하게 내려 마셔도 정신이 차려지지 않는다. 이럴 땐 한숨 자고 일어나는 것이 좋지만, 단잠에 빠지는 날에는 꿀 같은 오후 시간이 모두 지나 버리고 만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더니,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침에 눈을 뜨면 어느새 잘 시간이다. 할 일은 쌓여 있는데, 몸은 피곤하다며 침대에 가길 바란다. 예전처럼 일에 대한 끈기나 열정도 사그라들어 '내일 하자'는 마음으로 체력을 비축하는 걸 우선으로 하지만, 난 여전히 시간에 쫓기고 마음이 무겁다. 그렇다고 미리미리 일을 처리해 놓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왜 해야 할 일을 끝까지 미뤄놓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이런 긴박함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그냥 '게으르다'로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반면에, 푸디는 요즘 살만해 보인다.

산책하는 시간도 늘었다. 드디어 걷기 좋은 날씨임을 가장 먼저 느꼈을 것이다. 오동통한 엉덩이를 실룩대며 걷고 또 걷는다. 친구들의 흔적을 귀신같이 찾아내며 본인의 흔적을 더한다. 푸디는 풀이 많은 곳을 좋아하는데, 풀냄새와 흙냄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배변을 해결할 때도, 자연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 곳을 선호한다. 이제는 더 이상 나오지도 않는 오줌 방울을 떨어뜨려 가며, 친구들에게 본인의 안부를 전한다. 본능에 충실한 푸디에게 가을, 겨울은 가장 행복한 계절이다. 더운 날씨만 아니라면, 오랫동안 걸어도 견뎌줄 체력을 가지고 있어서다.


요즘 푸디와 산책을 할 때, 모기가 극성이다. 겁 없이 달려들어 피를 뽑아간다. 사실 나는 모기에 잘 물리지 않는 체질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렇게 모기가 내 피를 좋아했나 싶을 정도로 잘 물린다. 푸디와 산책을 하고 나면 손, 팔, 다리에 모기가 문 자국이 선명하다. 푸디도 물리지 않을까 싶어 잘 살피다가, 푸디의 털이 이중모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실성한 모기가 아니라면 푸디를 물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빼곡한 푸디의 털을 뚫고 들어갈 수도 없거니와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다시 나올 수 없을 만큼 푸디는 털북숭이다. 오죽하면 동네 할머니들은 우리 푸디를 보고 복실이라고 부를까. 털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가끔씩 물어올 때면, 곤란하기도 하다. 하루에 한 번씩 빗질을 해 주는 것 말고는 딱히 관리를 하는 게 없는데 말이다.


짧은 산책 시간 동안 다섯 군데나 모기에 물린 나는 가려움증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달님과 함께 산책을 할 때는 모기에 물린 적이 없었는데, 달님만 없으면 모기에 물린다. 사실, 달님은 나가기만 하면 모기에 물려서 들어온다. 나는 그런 달님에게 "모기는 냄새나는 사람을 좋아한대"라며 놀려대곤 했는데, 달님이 없으니 이제 모기는 방패막이 없는 나에게 신나게 달려든다. 그러고 보니 달님이 나 대신 모기에 물려준 것이었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초입에 모기는 더 강력한 힘을 자랑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폭염이 강할 때는 모기도 기운이 없어 활동을 하지 못한단다. 그런데 9월의 선선한 기온으로 모기도 살만한 환경이 된 것이다. 참고로 모기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는 25도 전후라고 한다. 산책할 때 긴팔 위주로 입고, 화장품 냄새가 나지 않게 신경 쓰는 수밖에.



모두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시간,

생명을 가진 것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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