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찾는다는 것

혼자 있는 시간 안에서

by 김효정

오랜만에 혼자인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얼마만이던가. 이렇게 고요하고 조용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어쩌면 나는 이 시간을 너무나도 애타게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미뤄뒀던 이불빨래를 하고, 욕실에 세제를 뿌려 닦아냈다. 먼지와 오래된 샘플로 가득한 화장대를 정리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냉장고 청소도 말끔히 해야지. 청소하는 자체를 즐기는 나는 무언가를 치우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복잡하고 지저분한 공간이 깨끗해지면 내 머릿속 생각도 정리가 된다고 해야 할까. 내 공간을 청소하면서 다짐한다.


더 이상 끌려다니지 말자,
지금보다 더 나를 사랑하자.


싫으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너무 참고 살았다. 마음을 숨기고 입을 닫아 버렸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도 마찬가지. 상대방이 상처 입을까 봐 솔직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거절을 못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왜 마음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할까. 미안함에? 아니면 표현 자체가 귀찮아서? 아니면 나에 대한 통찰력이 없어서?


나는 나를 너무 버려두었다. 그 덕분에 난 누구한테 건 성격 좋고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었지만, 실속 따위는 챙기지 못했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보다 중요한 게 나를 찾는 일이라는 걸. 함께하는 시간도 좋지만, 혼자 지내는 것도 나 같은 사람에겐 없어선 안될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


다이어리 맨 앞장에 2017년 버킷리스트를 적다가 마음이 쓰렸다. 나를 가로막는 제한이 너무 많았다. 2040년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버킷리스트를 적을 수 있을까? 짊어진 삶의 무게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래도 책 100권 읽기와 소설 완결하기 정도는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물론 개인적인 시간이 많지않아, 꽤 정신없이 살아야 할 테지만 말이다.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늘 다짐하지만, 언제나 다짐뿐이라는 사실이 실망감을 안겨준다.


너 워커홀릭이잖아.

회사를 다니면서도 프리랜서 일을 하는 나를 보며 그는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렇게 일하면 떼돈을 벌겠다면서. "글쟁이가 원고 몇 자 써주고받는 돈이야 몇 푼이냐 되겠어. 네가 말하는 떼돈은 대체 언제쯤 벌 수 있는 거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런 말을 하는 그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었음을 알았기에 그냥 웃음으로 흘려버렸다.

"적당히 해. 네 인생을 즐기고 살아."

그래... 네 마음 모르는 건 아니야,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사는 너라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내게 독립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은 아니었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 안에서 나를 돌보고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싶었다. 조용한 공간 안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밤새 잠들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내가 독립을 선택한 이유였으므로. 서럽고 힘겨운 일들이 한가득 일 거란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좋았던 것은 나를 혼자 내버려 두는 시간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시작한 독립이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 공간에 들어오거나 방해하는 것을 예민하게 여겼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이유였다.


헤세의 글 중 좋아하는 시다. 생의 외침을 들을 때마다, 용감히 서러워하지 않고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 한다. 지나간 일들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것처럼. 언제나 바라던 바람은 곁에 멘토 같은 누군가가 있기를 원했지만, 현실과 이상은 너무 멀리 떨어져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에 순수하지 않은 목적이 자꾸만 숨겨져 있었다. 불행히도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대해주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관계의 법칙이었다(천명관의 '고래' 문체를 흉내 내봄).


2017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정신 차리고 또 한 번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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