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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군 Mar 21. 2020

작은 욕실에서 문 닫고 족욕하는 즐거움

이런게 소확행 인가요?

3월 21일 토요일 오후 3시 20분 


사색의 방에서 30분간 명상을 했다. 사실 명상이라고 말하기는 그렇다.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연습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사색의 방은 2층에 있는 작은 욕실이다. 이 작은 욕실은 창문도 없다. 1평도 안되는 작은 공간이다. 창문이 없어서 낮에도 문을 닫으면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주로 손님이 올 때 사용한다. 아니면 아내가 1층 욕실을 길게 사용한다. 거의 나만 쓴다. 그런데 요즘엔 2층 방이 내 작업실이다. 난 하루종일 2층 작업실에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욕실은 내 전용이 됐다. 사실 욕실이라기 보단 화장실이다. 샤워기와 세면대가 있지만 샤워하기엔 정말 좁은 공간이다. 예전에 원룸에 살때, 그렇게 작던 그곳 화장실도 여기의 2배는 된다. 거기다 최근엔 전구까지 나갔다. 귀찮아서 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둠의 공간이 완벽한 블랙홀이 됐다. 


요즘 또 다른 내 취미는 족욕이다. 족욕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이케아서 사서 안쓰는 조금 커다른 휴지통이 내 족욕기다. 책상 아래에 뜨거운 물을 받은 이 통을 가져다 놓고 발을 넣고 있어야 글을 쓰고 생각을 할 수 있다. 단점은 물이 금방 식는다. 그래서 자주 통을 들고 화장실에 가서 새로운 뜨거운 물을 받아 와야 한다. 이게 너무 귀찮다. 엇그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화장실에 앉아서 족욕을 해볼까. 


그런데 이렇게 완벽할 수 없는거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문을 닫는다. 완벽한 어둠, 우주다. 원래 어두운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다. 명상의 공간으로, 사색의 공간으로, 또 그냥 음악을 듣거나 노래를 부르는 공간으로 너무 좋았다. 거기다 물이 식으면 바로 샤워기로 보충하면 된다. 그리고 이 작은 1평짜리 욕실을 난 내 사색의 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도 사색의 방에 들어간다. 뜨거운 물을 받고 발목을 담근다. 잠시후 몸이 뜨거워진다. 머리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복잡했던 머리가 한결 맑아진다.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속의 단 한평. 그런데 이 한평이 마법과도 같은 공간이 된다. 인터스텔라 OST를 튼다. 워낙 좁은 공간이라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이 영화관 뺨친다. 나만의 오디오 룸이다. 눈을 감는다. 우주가 펼쳐진다. 나만의 우주다. 


온갖 잡 생각이 우주를 점령한다. 어둠과 호흡에만 집중한다. 잡 생각의 별들이 마구마구 펼쳐진다. 내가 할 수 있는것은 상상밖에 없다. 우주로 향하는 주인공처럼, 이 공간이 우주인듯 상상한다. 곧 그 별들이 가지런히 정리된다. 어떤것은 별똥별처럼 아래로 떨어진다. 어떤별은 은하수 넘어 사라진다. 어떤별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다. 이런 잡별들이 정리되고, 곧 행복한 기분이 밀려온다.


내가 하고 있는 많은 생각과 고민이 부질 없게 느껴진다. 어차피 모든것을 할 수는 없는데, 욕심만 많다. 지금 필요한것은 그냥 내 자신의 길만 바라보고, 내가 정한 길을 뚜벅뚜벅 걸으면 된다. 주변의 잣대, 타인의 시선에 갖히지 말자. 그건 내가 아니다. 


나 답게 걷다, 뛰다, 쉬는 거다. 


문을 열고 나오니 또 다른 밝은 세상이 펼쳐있다. 욕실 문 밖에서 내가 나오길 기다리던 봄(우리집 진돗개)이 신나서 꼬리를 흔든다. 밝은 햇살이 거실에 떨어지고 있다. 


행복하다.
 이런게 소확행이란 건가.


왼손으로 글씨쓰기 연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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