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마녀의 비밀정원」
김지원, 「북쪽 마녀의 비밀정원」, 『문학들』 64
모던 고딕의 한국 버전, 이랄까. 비밀에 둘러싸인 비원이란 목조 주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으스스한 미스터리와 풋풋한 로맨스.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서른두 살의 정이가 우연히 지역 주간지에서 비원에 대한 토막 기사를 발견하게 되면서 20년 전 여름 방학으로 거슬러 오른다. 마을 끝에 자리했던 비원은 일본풍과 서양풍이 섞인 목조 주택으로, 아이들 사이에선 마귀할멈이 사는 곳으로 유명했고, 동네 사람들 사이에선 온갖 소문의 진원지로 입에 오르내렸다. 열두 살의 정이는 거기에서 소희라는 소녀를 만나고, 잃었다.
비원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관리가 조선인 애첩을 위해 지은 별장이라고 한다. 정이가 열두 살일 때 거기엔 세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살고 있었다. 애첩 본인이자 동네 아이들이 마귀할멈이라 불렀던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 열두 살임에도 벌써 키스를 경험해 본 조숙한 소녀 소희, 중년이라기엔 아직 젊고 아름다운 여인인 소희의 엄마, 그리고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정원사 준우. 동네 사람들은 외지인인 네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소문은 질투와 선망을 싣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본디 소문이란 발이 없다. 입에서 입으로 공기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것이라 옮겨 다닐 때마다 부풀려지거나 왜곡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어그러진 말들은 근원지로 여겨지는 "그 집"으로 안개처럼 스며들어 흩어지지 않는다. 「북쪽 마녀의 비밀정원」의 정이가 기억하는 비원은 긴 세월 그렇게 소리 없이 스며든 소문들로 둘러싸여 "비밀 정원"으로 구성됐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온갖 말들에 둘러싸인 채 숨죽이고 산다.
마귀할멈은 본국 일본으로 돌아간, 이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남자를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기다린다. 돌아온 그가 자신을 못 알아보면 안 되기에, 그녀는 젊어지려 소희 엄마가 주는 화장품을 바르고 약을 먹는다. ("그를 위해서 젊어져야 해, 그가 나를 못 알아보면 안 돼." 155쪽) 남자의 머리카락을 단지에 고이 모셔 두고는 보물 단지처럼 모시는 여자. 이제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마귀할멈일 뿐인 여자.
한편 소희는 아버지를 모른다. 소희의 엄마는 젊고 아름답다. 동네 여자들이 모두 그녀를 시기하면서도 그녀가 파는 화장품을 사고 마는 이유다. 소희 엄마는 화려한 외모 때문에 아마도 가는 곳마다 여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을 테다. 더구나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까지 딸린 여자라니, 그 팔자가 편했을 리는 없다. 또 비원에서 정원사로 일하는 준우는 소희 엄마의 애인으로 읽힌다. 젊은 남자를 애인으로 둔 미모의 엄마. 소희가 조숙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그러니 소희의 짧은 생애도 당연히 평탄치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준우라는 이 남자는 어째 정체가 의심스럽다. 좀 음흉하다. 소희에게 스스럼없이 구는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소희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그가 소희의 피부를 걱정하여 다리를 만지니, 냉큼 소희가 욕조로 달려가 온몸을 그대로 물에 담그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소희가 사라진다. 준우와 소희가 단둘이 비원에 남았던, 비바람 몰아치던 날 밤, 소녀가 사라졌다. 소희 엄마와 할멈이 집을 비운 그날, 정이는 소희와 함께 비원에서 밤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정이가 소희의 방에서 소희와 둘이서 했던 은밀한 행위를 준우에게 들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황한 정이는 엄마가 찾더라는 (알고 보니 거짓말이었던) 준우의 말에 도망치듯 비원을 뛰쳐나왔다. 그리하여 그날 밤 비원에는 준우와 소희 둘만 남았고, 다음 날 소희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며칠 새 머리가 하얗게 센 소희 엄마는 붉게 타오르는 목백일홍의 가지들을 가차 없이 잘라낸다. 할멈은 죽고 정이는 초경을 시작한다.
거의 매번 소문은 진짜 중요한 건 놓친다. 감정을 자극하는 피상적인 판단과 섣부른 재단이 예상 가능한 수준의 상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떠들며 재밌어하는 내가 아닌 "남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러니까 표면 아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소문은 관심이 없다. 예상을 벗어나는 일은 소문이 알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시종 그림자처럼 그려지는 준우의 존재는 소문의 이면, 소문으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을 지시한다. 항상 소문이 놓치고 마는 것. 그래서 기어이 터지고야 마는 사건의 근원. 진짜 비밀의 근거지. 준우의 다정한 태도에 대한 소희의 심한 거부 반응은 그가 바로 이것임을 암시한다.
여느 모던 고딕 소설과 달리 「북쪽 마녀의 비밀정원」에는 빌런이 명확하지 않다. 준우도 직접적으로 학대하는 남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애첩을 두고 본국으로 돌아가버린 할멈의 '그'처럼. 어쩌면 소희나, 소희의 엄마나, 할멈이나 이들을 고립시키고 소외한 건 떠난 남자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 할멈은 그다지도 애타게 일본인 관리를 기다렸나? 소희 엄마는 왜 준우를 애인으로 삼았을까? 소희는 어째서 정이에게 서투른 애정을 품었나? 자신들을 둘러싼 그 많은 말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말들, 떠나지 않고 떠도는 소문들에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붙인 것은 아닐런지.
눈에 보이는 것만이 폭력이고 억압은 아니다. 하여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떠들고 씹어댈 시간에 오히려 준우에 대한 소희의 예민한 반응을 유심히 지켜봤다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소희가 사라질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러니 진짜 빌런은 준우가 아닐 수 있다. 세 여자를 둘러싼 우리들, 우리들의 부주의하고 이기적인 말들이 외롭고 슬픈 그녀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정이의 생존은, 운이다. 억압은 늘 숨처럼 자연스럽게 구멍들을 드나들고, 생존은 운명의 손끝에서 주사위 놀이로 놀아나는 법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