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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타 Jun 16. 2022

침묵의 복수극

「얼어붙은 여름」

미스터 펫, 「얼어붙은 여름」, 미스테리아 29



"당신은 내 수입이 그 사람보다 못해서 그 사람과 만나는 거야?"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선덴샹은 체구도 왜소하고 생김도 그저 그래서 여성의 호감을 살 만한 타입이 아니었다.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폭로한 그날 밤, 샤오핑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울면서 돈의 문제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고, 정판의 협박과 위협이 계속되자 그제야 낮은 목소리로 치과 의사와 헤어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와 사귄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단 한 마디도 설명하지 않았다. (130-131쪽)


황정판은 아내 샤오핑의 외도를 의심하여 흥신소에 의뢰하였고 결국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아내의 외도 대상인 선덴샹은 외적으로 볼품없다. 황정판 그의 판단으로 선덴샹이 자신보다 나은 것이라고는 치과의사라는 직업 한 가지뿐이다.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 위와 같이 따진다. 돈이 문제냐고 말이다. 그러나 샤오핑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왜 선덴샹과 바람을 피웠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황정판은 아내의 대답을 듣지 못한 채 그녀를 살해해 버린다.


이 짧은 추리소설 속에서 유일한 여성인 피해자 샤오핑의 목소리는 단 두 번 등장한다. 모두 남편 황정판의 기억에 의존한 것으로 비슷한 내용의  문장인데 분위기가 달라진다. 하나는 결혼 초반의 것으로 다음과 같다.


"정판은 충동적인 성격에 진중하지 못한 것만 빼면 다른 건 다 좋아." (130쪽)


여기서 샤오핑은 충동적인 성격 한 가지를 제외하면 모두 마음에 들기 때문에 그와 사귀고 모두의 축복 속에서 결혼한다. 다른 하나는 제외시켰던 그 한 가지 때문에 무너져 내린 상황을 보여준다.


"난 당신과 헤어지고 싶어 한 지 오래됐어! 그 난폭한 성격을 더는 견딜 수가......" (142쪽)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남편의 손에 목숨이 끊겼다. 마음에 걸렸던 한 가지 때문에 남편을 두고 외도를 했으며 그것 때문에 종내에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난폭하고 충동적인 남편의 성격이 문제인가,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아내가 문제인가?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죽은 자는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산 자인 남편 황정판의 입장에서만 전개된다. 샤오핑이 애초에 황정판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이유, 그리고 남편을 두고 선덴샹과 바람을 피운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함으로써 그녀의 목소리는 소멸되었다.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에 마침표도 찍지 못한 채. 한편 외도 대상인 선덴샹이 그녀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읊조리며 긴 유언을 남기기까지 하는데 말이다.


비단 이 소설에서만 그런 것은 아닐 테다. 추리소설 속에서 거의 대부분(사실상 늘이지만) 여자는 살해당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오로지 살해했거나 사랑했던 남자에 의해서만 전해진다. 그래서 그녀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러 처단해야 하는 대상 내지, 안타깝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만 사랑스러운 연인으로서 재현된다. 이러나저러나 여자는 남자에게 매여 있는 존재일 뿐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남자를 통과해야만 발화된다. 그렇게 나온 목소리는 듣고 싶은 말이 아니기에 절단 당해 버리거나, 그의 환상에 의해 오염돼 버린다.


그렇다면 샤오핑의 목소리를 소거시켜버린 황정판의 여름은 왜 얼어붙었나? 복수를 대신해 준 선덴샹은 왜 끝끝내 자살하고 마는가? 어쩌면 여기에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샤오핑의 목소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즉 침묵 말이다. 침묵이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황정판에게 얼어붙은 여름을, 선덴샹에게 죽음을 선사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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