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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 Nov 16. 2019

[비행일기]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랑 가느냐


"얘들아, 오늘 기장님 너어어어무 잘생겼잖아. 나 얼굴 리프팅이 좀 필요할 것 같아. 보스턴 도착하면 거들도 하나 사야겠다." 인도네시안 사무장 리엣이 호들갑을 떨며 브리핑룸에 들어서자 경직되어 있던 브리핑 룸이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고 햇살이 비친듯 분위기가 확 밝아진다.

2015년 5월 2일, 캐세이에서 새롭게 런칭한 보스턴의 첫 비행이 시작된 날. 영광스럽게도 우리가 보스턴 비행을 서비스하는 첫 팀이다. 15시간의 비행이 끝날 무렵 사무장이 프레쉬하게 화장 고치고 사진 찍힐 준비를 하란다.

보스턴 공항에 내려 이민국을 통과해 입국장으로 나가니 미리 도착해있던 회사 중역들과 지상 직원, 카메라맨까지 나와 장미와 백합이 고루 섞인 어여쁜 꽃다발과 선물 상자를 안겨주며 우리를 반겨준다. 그러고보니 비행 5년차에 공항에서 꽃다발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다. 왠지 모르게 감격스럽고 행복한 순간이다. 크루들 모두 15시간 비행 후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함박웃음 가득 사보에 실릴 사진에 포즈를 취해본다.  

기장님과 부기장님까지 이번 비행에 설레이는 표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기장님은 보스턴에 왔으니 다같이 랍스터를 먹으러 가자며 이미 크루의 수대로 레스토랑 예약까지 마쳤다고 하신다. 일단 다음날 모두들 함께 보스턴 시내로 나가 시내 구경을 하고, 랍스터를 먹으러 가는 것으로 우리들의 여정이 정해졌다.

그리고 다음날, 신나게 보스턴 시내와 하버드 대학교를 구경하고 13명의 크루가 모여 랍스터 13마리를 끝장 냈다. 랍스터를 먹으며 크루들과 이런 저런 비행 이야기, 삶 이야기. 이렇게 많은 크루들이 다 같이 저녁 먹으러 나오는 것도 참 드문일인데 첫 보스턴 비행 덕에 뜻깊은 시간이 주어졌다.

사무장 리엣은 브리핑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 그대로 굉장히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이다. 첫 비행인 덕도 있지만 모두들 그녀를 좋아하고 따랐기에 모든 크루가 비행기 밖에서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일 게다. 나는 식사 자리에서 리엣에게 모든 크루에게 유쾌하고 친근하게 대하는 그녀의 성품이 너무나 좋다고 칭찬을 건넸다. 그러자 리엣은 어떤 사무장들은 그녀의 친근함이 사무장의 품위와 권위를 침해(?)한다며 좀 자제하라는 말을 한다고도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쥬니어 크루들은 모두 분개해서 "그 사무장들이 너를 질투하는 거야!" 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리엣도 자기는 그런 이야기에 큰 신경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만의 방식이 있고, 본인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크루들이 자기의 방식을 좋아한다고.

 호텔로 직행하기 아쉬워 바에서 한잔씩 하고 우버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 길. 호주인 기장님, 인도네시아인 사무장, 필리핀 퍼서, 태국인 퍼서, 홍콩 쥬니어 크루, 한국인 나. 다국적 조합이 희한하게 보였나보다. 검은 정장을 예쁘게 차려입은 여성 택시 기사님이 앞에 탄 기장님에게 "Where are you from?" 하고 물어본다. 기장님이 캐세이퍼시픽에서 일한다고 대답하자 택시 기사가  "말도 안돼 그럴리가!" 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대답에 의아해진 우리 모두는 "왜? 캐세이퍼시픽이 왜 어때서??" 라고 눈이 동그래져서 되묻는다. 택시 기사는 자꾸만 진짜 캐세이퍼시픽에서 일하냐고 묻고, 우리는 자꾸만 왜 못믿는거냐고 반문한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보스턴에 캐세이퍼시픽이라는 중국 음식점이 있었던 것. 서양인 기장님과 부기장님이 그 중국 음식점 캐세이퍼시픽에서 일한다는게 말이 안되는 조합이긴 했다. 차이니즈 레스토랑 캐세이퍼시픽 맞냐는 그녀의 물음에 모든 크루가 한참을 깔깔 웃었던 보스턴의 추억. 어디를 가느냐보다는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한 요즘, 이 팀과 함께라면 그 어떤 힘든 비행도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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