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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 Nov 16. 2019

[비행일기] Give and take

"그래서 니 말의 요점이 뭔데? 이 비행을 어떻게 즐거운 비행으로 만들거냐고!" 사무장 미카의  다그침에 빌리의 얼굴이 벌개지고 브리핑 룸의 분위기가 싸해진다. "음.. 내 생각엔 말이지.." 옆에 있던 클라라가 빌리를 도와줄 요량으로 입을 열자 "너한테 물어본거 아니거든. 빌리한테 물어봤잖아" 하고 단칼에 잘라버린다. 세상에, 언니, 언니가 그렇게 다그치는데 즐거운 비행이 가능하겠어? 오늘 나의 갤리 퍼서 티모시는 뒷 갤리 크루들을 모아놓고 "자 얘들아, 긴장하지마. 그냥 우리는 무조건 트레이닝 스쿨에서 배운대로 하면 되는거야. 긴장하지마" 하는데 본인이 제일 긴장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2:8로 정갈하게 가르마를 타서 귀 뒤로 넘긴 오빠의 단발 머리가 이미 회사 규칙에 어긋난다.

일본인 사무장 미카는 트레이닝 스쿨의 트레이너와 비행을 겸임하고 있다. 트레이너는 으레 회사 규칙에 있어서 더 깐깐하기는 한데, 아 이 사무장, 진짜 만만치 않겠다. 7시간 40분의 두바이 비행을 함께 해야 한다니. 승무원들 사이에서 유명 사무장과 부사무장의 블랙 리스트가 돌고 있는데 나는 이 리스트 체크를 잘 안한다. 해봤자 비행 전에 괜히 더 긴장만 되고 어차피 해야 할 비행이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폭탄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 나는 차라리 속 편하다. 오늘 사무장도 블랙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유명한 1인이란다. 그럼 그렇지.

새벽 2시 5분에 이륙하는 두바이행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 칵테일 서비스 없이 바로 밀 서비스가 나간다. 승객 입장에서도 그 늦은 시간에 칵테일 서비스를 받고 밀 서비스를 기다리느라 한시간 가량을 소비하느니 얼른 식사를 마치고 주무시는게 더 나을터이다. 도어 4의 뒷 갤리에서 열심히 밀 카트를 세팅 하는데 사무장이 저 멀리 도어 1에서부터 굳이 행차하셨다. 안오셔도 되는데.
"벌써 칵테일 서비스 끝냈니?" "아니, 이건 밤비행이라 칵테일 서비스 없는데." "그럴리가." 그녀는 우리의 코 앞에서 회사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서비스 플랜을 확인한다. 거 봐. 없다고 했잖아. 나중에 다른 크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했단다.
밀 서비스 중간에 트레이가 부족해 갤리로 돌아가 열심히 트레이를 내 카트로 옮겨 넣었다. 트레이를 거의 다 옮겨 넣을 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고 있던 미카. "그 카트 좀 삐걱거리고 시끄럽던데 다른 카트 없니?" 아니, 다 옮기기 전에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다른 카트로 트레이를 다시 옮겨 넣는 동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모두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이 비행은 두바이에서 크루들이 바뀌고, 바레인까지 가는 승객들은 트랜짓 할 동안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야한다. 그 사이에 크루들은 승객들의 수를 세어야 하고. 티모시가 승객의 수를 세서 알려주자 존 바이 존으로 숫자를 달라고 했단다. 앞 존에 30명이고 뒷 존에 29명이야. 라고 보고하자 그녀는 "그거 말고!! 총 몇명이냐고?!!" 라고 했단다. 저기.. 30명 더하기 29명은 59명이에요.. 그리고 잘못 내렸던 승객 한 명이 다시 탑승하자 승객의 수를 처음부터 다시 세라고 했다고. 저기.. 59명 더하기 1명은 60명인데요.. 승객이 탑승하고 있는 비행기의 열린 도어는 항상 승무원들이 지키고 서 있어 승무원 모르게 어느 누구도 탑승할 수가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아닐텐데. 미카, What is wrong with you?  

이상한 사람 곁에는 다들 가고 싶어하지 않는 법이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모인 회사이다보니 종종 이상한 크루들이 있을 때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사무장은 그 날 비행의 최고 존엄이니 보통 부사무장이라도 같이 다니면서 말 걸고 기분 맞춰주고 하는데, 오늘 부사무장 베스는 그런 타입이 아닌가보다. 미카를 그냥 혼자 두는것 보면 말이다. 두바이 공항에 내려서 호텔 셔틀버스까지 갈 때도 말 한마디 안건다. 다른 크루들도 삼삼오오 자기들끼리 모여서 다니지 사무장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참 외로워보인다.  

다른 크루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본인이 체크해봐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그녀. 본인은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사무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크루들. 덕분에 비행은 삐그덕 삐그덕, 아까 내 카트만큼이나 소음이 심하다.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신뢰받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는 걸까? 인생 Give and take 법칙 아닙니까.

내가 인간관계에 있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았다면, 그 이유는 주위 사람들을 내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그들을 신뢰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신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좋다. 물론 그렇다고 길 가다 만난 아무하고나 신뢰를 주고 받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래? 밤비행에는 칵테일 서비스가 없다고? 난 있는줄 알았는데 내가 잘 모르고 있었나보다! 라고 상대를 신뢰하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설령 상대도 틀리면 어떠한가. 밤비행에 칵테일 서비스 안했다고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도 아니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기 보다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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