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이유, 적성 발견
사실 부엌을 좋아했던 적이 없어요. 부엌은 힘껏 멀리하고 싶은 공간이었죠. 대기업에 다니며 성공한 도시여성을 목표로 삼던 제게, 부엌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요리라니, 취미로라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제가 매일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을 줄이야.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답니다. 손수 떡을 만들 줄 알게 되고, 백화점에서 구매하던 화과자를 연구하게 되고, 양갱으로 자격증까지 발급하게 될 줄이야. 와우.
청춘의 상징 제임스 딘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죠.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며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발견이다"
I think the prime reason for existence, for living in this world, is discovery.
하지만 미처 몰랐죠. 서른이 넘어서 적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는!
이 모든 것은 육아휴직 기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날은 여느 다른 날과 별반 다름없던 날이었어요. 아기를 겨우 재우고 휴대폰으로 맘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고 있었죠. 다른 엄마들이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읽고 있다 보면, 어느덧 혼자 있다는 외로움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그때 한 게시물이 유독 눈에 띄었어요. “응? 이건 뭐지? 케이크 위에 알록달록한 장미꽃이 있네?” 장미꽃은 장미꽃인데 평소에 쉽게 보던 색깔의 꽃은 아니었어요. 바로 클릭해 보았지요.
새로운 클래스를 오픈했다는 홍보 게시물이었어요. 강낭콩 앙금으로 꽃을 만들고, 직접 떡을 쪄서 그 위에 장식한대요. 클래스에 오면 이 모든 것을 직접 해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근데 '앙금'? 그게 뭐지?
무언가에 홀린 듯 수강 신청을 했어요. 출산 후 처음으로 아기를 4시간 동안 맡기고 외출하기로 했지요. 잠시 집 앞에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것도 두근거렸는데, 4시간이라니! 탈선하는 불량청소년이 된 듯 한 짜릿한 마음으로 첫 클래스에 참석했답니다.
클래스를 수강하며 제가 모르던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앙금이란 강낭콩, 팥, 완두콩, 호박 등의 원 재료를 삶은 후, 물기를 빼고 일정량의 물과 설탕과 함께 볶아 낸 재료의 이름이라는 것. ‘앙금으로 만든 꽃’은 ‘앙금플라워’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 그리고 앙금플라워는 밝은 색상의 강낭콩 앙금으로 만든다는 것.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정보들이 그 당시 제게는 모두 새로웠어요.
자색고구마, 비트, 쑥과 같은 천연 가루로 앙금의 색을 물들였어요. 형형색색의 붉은 장미꽃을 직접 피워보았죠. 쌀가루에 물을 섞어서 백설기도 쪄 보았어요. 완성된 떡 위에는 앙금플라워를 조심조심 올렸지요.
4시간의 클래스 내내, 저의 마음은 쉴 새 없이 두근거렸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앙금플라워와 떡 만들기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매했어요. 재료들이 담긴 택배상자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연습을 시작했죠. 앙금을 짜고, 수업에서 사용했던 가루들과 새로운 재료들을 섞어가며 쉬지 않고 장미꽃을 짜냈어요.
앙금플라워의 장점은 큰 소음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아기를 재우고 난 후, 자투리 잠을 자야 할 시간을 줄여서 꽃을 피워 낼 수 있었거든요. 아기를 키우는 엄마는 1분 1초라도 소중해요. 저는 그 시간을 앙금플라워와 함께 보냈답니다. 어느 밤은 꿈속에서도 앙금으로 장미꽃을 짰어요.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감탄했지요. 지금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작품들이었지만, 제 눈에는 조명이라도 켠 듯 빛나 보였어요.
앙금플라워라는 기법의 디저트가 개발이 된 지 1, 2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던 시기였어요. 전통 음식인 떡을 서양식 디저트인 케이크라는 형태로 표현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지요.
독학으로 앙금플라워를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피우기도 하고, 다양하세 배치해 보기도 했어요. 더 예쁘게 촬영해 보고 싶어서 집에 있는 온갖 접시와 찻잔들을 꺼내기도 했지요. 이리저리 배치하고 배경도 바꾸어 가며 수 십, 수 백장의 사진을 찍었답니다. 아기 사진을 찍는 것보다 더 열정적으로 찍었던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그 사진들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저도 모르게 팔로워가 하나, 둘 늘어났지요. 수업을 듣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까지 이르렀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제가 퇴사를 하고 직업을 바꿀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물론 마음 한구석에는 퇴사를 꿈꾸며 보다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했었지요. 또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아이가 자라는 모습에 최대한 많이 보며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요.
그래도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면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는 회사원의 일상으로 돌아갈 예정이었거든요. 저는 이미 30대였고,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 둘 용기는 없었으니까요. 앙금플라워를 좋아하고 잘 하지만, 회사를 그만 둘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1년 3개월 후. 어정쩡한 마음으로 회사에 복직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떡을 찌고, 앙금으로 꽃을 피워냈어요. 친구 아이의 돌잔치, 직장 동료 할머니의 생신, 혹은 그냥 주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앙금플라워 떡케이크를 선물하기 시작했어요.
아기와의 시간에 단련된 후 복직 한 회사는 이전보다 수월 했어요. 어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릿속에 이런 의문이 자꾸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이대로 사는 것이 괜찮은가?’
당시 30대 초반이던 저는 40대의 제 모습을 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분야이던 40대에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프로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10년 후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저의 적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되었어요.
왜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가져야 할까요?
누적 수강생 850만 명의 기록을 가진 정승제 강사는 그 이유를 “자유가 생겨요”라고 말합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프로로써의 가치가 올라가지요. 그렇게 되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더 많이 생긴다고 해요.
회사에 계속 다녔더라면 저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점점 줄어들었을 것 같아요. 적성이 맞지 않으니 재미가 없었고, 재미가 없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열심히 일을 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물론 적성에 맞는 분야도 있었죠. 하지만 곰이 재주를 부리듯 성과를 내면, 왕서방 같은 누군가가 나타나 홀라당 그 열매를 빼앗아 가곤 했어요.
그 상태로 10년이 지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요. 어떤 부서에서 일할지, 누구와 함께 일할지, 무슨 프로젝트에 들어갈지. 저의 선택권은 점점 작아졌겠죠.
컬러배스 효과 (color bath effect)를 들어보셨나요?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색을 입힌다'는 뜻이지요. 특정 색상에 집중하다 보면 그와 동일한 색상을 가진 물체나 사람이 눈에 띄게 의식되는 현상입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관심을 가지게 되자 여기저기서 보이게 되는 상황을 겪어 보셨을 거예요.
디저트도 마찬가지였어요. 앙금플라워에 빠져들었다고 끝이 아니었지요. 하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오만가지 디저트가 다 눈에 뜨였죠. 떡, 케이크, 마카롱, 머랭쿠키…하나 둘, 상상도 하지 못했던 디저트들을 제 손으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여러 가지 디저트의 클래스를 듣고 연구하다 보니 제 적성에 가장 잘 맞는 디저트는 ‘화과자’와 ‘양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이에 집중해서 클래스 커리큘럼을 처음부터 뜯어고쳤죠.
적성에 맞는 디저트를 찾아내자 제게는 더 크고 다양한 선택지가 열렸어요. 어떤 내용의 클래스를 진행할지, 어떤 업체와 함께 일을 할지, 어떤 일정으로 일을 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겨났지요. 즐겁게 일을 할수록, 기존의 방식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킬수록 그 자유는 더 커졌고요!
좋아하는 일, 적성에 맞는 일을 하자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늘어났답니다. 분명 제 일을 하고 있는데 시간이 생겨 났어요. 아이도 키우고, 운동도 하고, 원하는 시간에 친구도 만날 수 있는 자유 말이지요.
서른 살이 될 때까지도 저는 제가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수 없이 변해왔던 장래희망 중, 음식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었거든요. 디저트는 베이커리나 카페에서 사 먹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죠.
난 요리를 잘하지 못 하지만, 부엌은 내게 어울리지 않지만,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지만. 그럼에도 시도한 한 번의 클래스가 저에게 의외의 적성을 알려 주었습니다. 우와, 내가 이런 것도 잘하는 사람이었어?
중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진주는 해변가에서 찾을 수 없다. 진주를 찾으려면 깊은 물속에 빠져야 한다."
Pearls don't lie on the seashore. You must dive for it.
하루의 시간을 빼서 눈길을 사로잡는 클래스를 수강해 보세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일이라고요? 손재주가 없어서 못할 것 같다고요? 괜찮아요. 시도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거든요. 혹시 아나요? 그 짧은 시간 동안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깊은 물속에 숨겨진 진주처럼 빛나는 당신만의 적성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