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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블라썸 Feb 27. 2023

브런치의 독촉장에 대한 나의 변명

- 브런치야, 내가 글을 안 쓰고 있었던 게 아니란다.

브런치로부터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이마저도 벌써 며칠이 지나버렸지만...

책을 발간하자는 제안서는 절대 아니고, 나의 게으름을 자각시켜 주는 글이랄까?

한동안 글을 발행하지 않으면, 으레 만나게 되는 메시지.

사실, 이 메시지가 처음도 아니다. 게다가 오늘 받은 것도 아니다.

작년 연말에도 한 번 받은 적 있지만, 무시하고 넘어갔고, 최근에 또 이 메시지를 받았지만 게으름 때문에 이제야 아는 척을 한다.


친절하신 작가님들은 휴지기를 가지게 될 때, 구독자에게 사정을 알리는 글도 다정하게 남기시던데, 난 들쑥날쑥이다. 언제 휴지기를 가질지 나도 몰라 그런 글을 남기지 못한다. 사실, 더 큰 이유는 내 글을 기다리는 구독자가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분 한 분이 소중한 데 말입니다.)  글이 쓰일 때는 막 쓰다가, 바쁘거나 힘들 때는 또 온리 구독자모드로 진입했었고, 앞으로 또 그럴지도 모른다.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공부, 재능 그 딴 거 중요치 않다고 성실하고 바르기만 하면 뭘 해서든 먹고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강조하는 교사인데, 정작 나는 브런치에서 성실하고 바른(?) 작가가 되지 못한다. 그나마, 학생들이 내가 브런치에 글 쓰는 줄을 모르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을 정도이다.(바른이라는 말에 의문표시는 불온한 생각을 적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 꾸준히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는 데, 꾸준히라는 말은 이제 감히 입에 못 올리겠다. 정말 열심인 분들은 매일 올리시는 분들도 있던데, 정말 그들의 근육이란 게 그리 부러울 수가 없다. 아니, 실로 존경스럽다. 매일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게 처음에는 상당히 놀라웠다. 허나, 매일 쓰시는 분들의 글을 보면,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있어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게 분명 브런치에서 말하는 글쓰기 근육이란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최근에는 글을 안 쓴 게 아니라, 쓰긴 했지만 발행을 못 했다. 쓰이지 않는 글을 억지로 짜낸 듯한 글이라 글 같지 않아서 발행 못한 글도 있고, 소설이란 것에 꽂혀서 발행을 못하고 있다.


글쓰기 연습으로 소설이 좋은 점을 말해보라고 하면, 내가 체험한 글감이 없어도 내가 상상하는 대로 글을 쓸 수 있으니 작가로서 글 쓰는 일이 너무 재밌어진다는 거다. 그냥 글쓰기가 사랑스럽다. 같은 글 하나 가지고도 몇 번을 고쳐쓰기가 가능하니까 자동으로 꾸준한 글쓰기가 가능해진다. 물론, 에세이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소설만큼 그렇게 이야기를 바꿀 만큼 휙휙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발행한 글이라도 읽을 때마다 고치는 경향이 있는 데, 에세이는 주로 조사나 문장 어순, 단어 몇 개를 바꾸는 수준이다. 그런데, 소설의 경우에는 같은 줄거리의 글이라도 시점을 바꿔 쓸 수도 있고, 심리묘사에 취중 할 것인지, 배경이나 행동묘사에 취중 할 것인지에 따라서 같은 글이 달라지기도 한다. 서술 문형을 많이 넣을지 대화형을 많이 넣을 지에 따라서 글이 또 조금씩 바뀌게 되기도 하고, 시간 순서를 정배열로 할 것인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써 볼 것인지에 따라서 또 글이 휙휙 바뀐다. 또한, 글을 읽을 때마다 부족한 부분이 느껴지면 그것 따라 조금씩 그렇게 변해간다.(이 내용들은 어떤 글쓰기 관련한 전문가들의 입장이 아니고, 글 쓰면서 부족한 제가 직접 느낀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없어도 상상만으로 일단 만들어 쓸 수 있다. 에세이보다 오히려 이야깃거리를 만들기(글감찾기)가 쉬운 느낌이기도 하다.(이렇게 쉽게 생각하니, 대단한 서사의 글은 쓰지 못하지만....) 그래서, 일단 꾸준한 글쓰기가 목표라면, 소설 쓰기를 추천하고 싶을 따름이다.


지금도, 소설이랍시고 앞부분을 조금 썼는 데, 내가 쓴 부분까지 몇 번을 전체적으로 갈아엎었는지 모른다. 에세이 쓰는 버릇 때문인지 자연스레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많이 쓰게 되었는 데,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니까, 주인공의 심리묘사적인 문장들이 많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른 인물들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느껴졌다. 좀 더 글이 생동감 있어지려면, 배경 묘사나, 행동 묘사로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 내 능력으로는 한계다. 하지만, 분명 묘사력을 높이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잊었던 우리말 단어를 떠올리기 위해 사전도 자주 찾아보게 되고, 의성어, 의태어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일단 모든 등장인물을 표현해보고 싶은 욕심에 전지적 작가 시점을 유지하고 있다. 이 걸 위해 한 편만 바꾸면 되는 게 아니라 이제껏 써놓았던 글 전체를 바꿔야 하는 지경에 이르긴 했지만...


사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기 이전에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한 번의 시도가 더 있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여주와 남주의 입장에서 같은 글을 병렬관계로 쭈욱 써 보았다. 한 가지 사건을 각각의 관점에서 써야 한다. 하지만, 여자 관점과 남자 관점의 글 두개를 쓰는 것과 같아져서, 부족한 내 능력의 한계를 금방 마주하게 된다. 또한, 두 관점으로 쓰면서 완성해 가는 것은,  글의 편수는 늘지만,  이야기 전개가 느려져 글에 대한 몰입도가 분산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두 사람의 시각으로 쓰는 것은, 다음 사건으로의 전개를 기다릴 독자를 염두하지 않고 오로지 쓰기 연습으로만 생각한다면 정말 많은 연습이 되는 매력적인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제목을 세 번째 바꾸고 있다. 에세이를 쓸 때는 제목 바뀐다고 그 내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보통 에세이 경우에는 제목을 마지막에 쓰는 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은 제목을 바꾸니, 또 글이 달라져서 썼던 부분을 완전히 삭제해 버리기도, 없던 부분을 더 추가하기도,  더 줄이거나 더 늘여 쓰게도 되었다.


그렇게, 지금의 내 서랍에는 같은 장면의 글이 서너 개 저장되어 있는 셈이다. 처음에 썼던 글과 거기서 수정된 고쳐쓰기를 한 것, 완전히 새롭게 쓴 글. 이야기가 수정되어도 혹여나 다른 타이밍에 사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쉽게 삭제를 못하고 있다.


소설을 쓰다 보니 또 내 글쓰기 단점을 알게 되었는 데, 진짜 불필요한 말, 사족이 너무 많다는 거다. 구구절절설명을 응축할 멋진 대사 한마디, 행동이나 배경, 인물 외모 묘사를 잘한다면, 불필요한 말들이 줄고 전하고픈 메시지만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데, 아직은 연습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도 그런 묘사에 중점을 두려고 의식하니 불필요한 설명이 줄기는 한다. 행동묘사를 늘인다고 글 전체를 대공사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8편 써 놓은 글이 5편으로 확 줄었다.


사건의 시간 배열도 스토리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몰입도를 높이는 기능을 하는 것 같은 데, 첫 시도는 마지막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였지만, 이야기가 너무 꼬이는 것 같아서 지금은 일단 순서대로 풀어서 쓰고 있다. 그러니, 글이 느슨해져서 역시 이야기의 흥미도가 떨어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된 점은 나란 사람이 참 재미가 없다는 거다. 슬픈 발라드를 좋아하는 취향처럼 글도 그렇다는 거다. 글을 재밌게 쓰고 싶은 데, 글이 자꾸만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로코 장르를 도전해보고 싶지만, 절로 슬픈 로맨스가 되는 이유다.


아! 한 가지 더!

나만의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절로 밤새는 일이 발생한다. 그렇게 쓴 글이라 사랑받지 못해도 내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자꾸만 애가 쓰이는 글이 된다.


브런치의 독촉을 받고서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숙제를 끝낸다는 기분도 있지만. 일단, 소설 쓰면서 느꼈던 내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어서이다. 소설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재미가 없어서이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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