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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 Sep 20. 2024

활성화 에너지

죽음이란 공평한 선택지인가?

활성화 에너지란 화학반응에 필요한 에너지를 의미한다. 더 안정적인 생성물(에너지 준위가 낮은)을 만드는 화학반은 결국엔 에너지를 방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을 시작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를 활성화 에너지라고 한다. 마중물과 비슷한 것이다. 결국 넣은 물보다 많은 물을 얻게 되지만 마중물이 없으면 아무런 물도 얻을 수 없다.




자살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내가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목숨을 끊을 용기가 없었다.


전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자살이 근본적으로 나쁘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행한 삶을 살 바에는 죽는 게 낫다 결론지었지만 사실 확신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자살은 나쁜 거라 말하는 세간의 세뇌인지, 나의 본능인지 혹은 둘 다인지 모르겠어도 정말 죽어도 되는 건지, 죽는다면 방법은 뭘로 할 것인지 등등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만약 죽음을 택한 것이 내가 무언가를 놓쳐 발생한 잘못된 선택이라면 어쩔 텐가? 무지한 실수를 할까 무서웠고 번복할 수 없다는 죽음의 특징이 두려웠다.      


0으로 돌아가는 행위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그러니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으면서도 가볍게 '죽는 게 나을까 사는 게 나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간단한 질문에 정확한 답을 냈는데도 아무것도 택하지 못하고 끙끙대는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란 애초에 공정한 선택지일까?'


삶과 죽음이 과연 같은 난이도의 선택지냐는 이야기다. 답은 명료했다. 아니? 죽음이 훨씬 어렵다. 내가 삶에 대한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삶은 이어지고 있었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이렇게 많은 생각 끝에도 망설임만이 남아있다는 현실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 주었다.


삶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어진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할 때에는 이성의 결정과 본능을 제어할 힘까지 있어야 한다. 말이야 쉽지, 이성부터 일단 죽음에 대해 명쾌하지 못했고 본능이란 그리 쉽게 휘어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죽음에 강한 의지로 저항한다. 이성적인 판단이 죽음을 향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자살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 대부분이 운 좋게(혹은 운 나쁘게) 계획이 좌절되었을 때 안심한다고 한다. 본능이란 간단할 수는 있지만 가벼운 것은 아니다.


불행을 버리고 0이 되기 위해서는 ‘죽음에 뛰어드는’ 고통 혹은 과정을 감내해야 했다. 그게 본능을 거스른다는 정신적인 문제이든, 아니면 목숨을 끊는 행위 자체의 물리적 고통이든 그를 뛰어넘기 위해 에너지를 필요로 함이 명백했다. 아무리 죽고 싶다 혹은 죽을 거라 말해도 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층건물 난간에서 발을 내딛을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두 번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두 번 모두 나에게는 머릿속의 상상을 현실로 옮길 용기가 없었고, 죽고 싶었음에도 버젓이 살아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죽지 못할 것이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을 만큼 용감하지 않았다. 내 죽음에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는 너무 컸고, 나는 그 에너지를 지불하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불하지 못할 것임이 확실했다.


죽음이란 당연히 삶과 같은 무게를 가지는 선택지라고, 언제나 마지막 방법으로 택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죽음이 나를 속인 것 같았다. 얼핏 고민 없이 삶을 살아가듯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듯 보였지만 사실 죽음이란 삶보다 훨씬 흐릿하고 또 값이 많이 나가는 놈이었다. 아이패드 프로와 에어가 엇비슷하게 생겼지만 사실 프로가 훨씬 비싸고 성능이 좋은 것처럼 말이다.


이 사실을 깨닫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삶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무얼 해도 즐겁지 못했고, 슬프고 화나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삶을 영원히 지속해야 한다고?

하루하루가 절망감의 연속이었지만 '인생이 0보다 못하면 죽지 왜?'라는 안일한 생각이 이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항상 있는 줄 알았던 탈출구가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아니라 벽에 붙은 tv일 뿐이었다. 나는 갇혔다. 우울증을 앓을 때 꾸었던 꿈처럼. 고통밖에 없는 이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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