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오디션 - 다시 만난 세계

comic- 미끼의 데님 쇼츠

by 블루 캐롯










전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두 여자의 운명적 재회 / 이미지- 단행본 발췌





개업한 지 한 달이 되도록 의뢰인이 없어 파리만 날리는 사립탐정사무소. 탐정 박부옥은 사건 수사를 위해 사두었던 돋보기로 태양열을 모아 파리 퇴치에 쓰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낀다. 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드디어 의뢰인이 찾아왔다는 기대감에 부풀지만 곧이어 들어온 사람을 보고 경악한다. 그녀의 이름은 송명자. 두 사람은 여고 동창이자 친구로 177cm의 키에 보이시한 외모로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인기인이었다. 하지만 월등히 높은 명자의 인기에 자격지심을 갖고 있던 부옥은 하나뿐인 자신의 팬을 명자에게 빼앗긴 후 원수 사이가 된다.





과거 송 송 회장이 만났던 네 명의 천재 소년들
송 송 회장의 유언으로 천재 소년들을 찾아 오디션에 참가해야 하는 모험이 시작된다 /이미지- 단행본 발췌





지난날 철없던 자신의 행동을 잊으란 것이 아니며 단지 의뢰인으로서 찾아왔다는 명자의 간곡한 부탁에 부옥은 먼저 의뢰 내용을 듣는다. 한국 가요계의 대부이며 국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송송 그룹의 창업자이자 명자의 아버지인 송 송 회장이 과거에 만났던 네 명의 음악 천재 소년들을 찾으라는 유언을 실행하기 위한 것으로 단서는 일기장이 전부다. 게다가 그 천재 소년들로 팀을 결성하고 송송 그룹에서 주최하는 밴드 오디션에 참가해서 우승해야지만 유산을 상속받는 조건부 상속녀가 된 명자가 인생의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상황을 알게 된다.




돈이 없어 사건 착수금은 바로 줄 수 없다는 명자의 말에 내쫓으려 하자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사건을 맡아 준다면 네 명의 천재 소년들을 찾고 오디션에서 우승한 뒤 원하는 만큼의 비용을 지불 할 것이며 이 일이 끝날 때까지 부옥의 조수가 되어 시키는 일이면 뭐든지 다 한다는 것. 과거 콧대 높은 태도의 명자가 자신에게 숙이는 모습을 보며 유산 상속 욕심에 변했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반드시 아이들을 찾아 데뷔시킬 것이며 아버지가 한 일이라면 본인 역시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 어떠한 일도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보인다. 부옥은 명자의 눈빛에서 탐정으로서 직감적 확신을 느끼게 되었고 의뢰를 수락해 네 명의 천재 소년들을 찾기 위한 본격적인 탐문에 들어간다.







(좌측) <오디션> 단행본 5권 표지의 네 명의 천재 소년들과 공모전 대상을 받은 작가의 데뷔작 <TALENT>가 수록된 단편집 <COME BACK HOME> / 개인 소장
<언플러그드 BOY>의 초판 이미지와 주인공 현겸이의 명대사, 팬들을 위해 고화질 이미지를 작가가 직접 올려주었다/출처-천계영 작가 X (구 트위터)
H.O.T. 의 노래 '우리들의 맹세' 애니메이션 MV의 작화를 담당하며 카메오로 출연한 <언플러그드 BOY>의 현겸이와 지율이, 와우 풍선껌 광고의 현겸/ 출처-영상 캡처
작품 탄생 28년 만에 복간된 <언플러그드 BOY>의 초판본과 그 안에 들어 있던 엽서와 스티커. 1권 표지와 같은 엽서에는 천계영 작가의 특별 메시지가 있다/개인 소장





대한민국 순정만화 최초 100만 부 판매를 돌파한 <오디션>은 1997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2001년 완결된 만화가 천계영의 초 매가 히트작이다. 어린 시절 음악에 각기 다른 천재성을 지닌 네 명의 소년이 현실의 팍팍함으로 재능을 키우지 못하고 살다가 그들의 천재성을 알아봐 준 유일한 인물이 남긴 유언으로 세상에 발굴되며 전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디션>이란 작품을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원작자인 만화가 천계영의 데뷔와 이후 작품들의 흐름을 먼저 되짚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녀의 만화 인생이 시작되며 한국 순정 만화계의 지각 변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천계영 작가는 1970년생으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광고 회사에 입사 후 2년간 C.F 제작에 참여했다. 이후 만화를 그리기 위해 퇴사하는데 C.F 제작 때 익혔던 다양한 기술은 그림, 공간, 이야기를 모두 아우르는 만화라는 매체에 큰 장점이 된다. 당시 만화가가 되려면 동호회 활동이나 문화생으로 경험을 쌓고 데뷔하는 게 일반적인 루트였지만 그녀는 독학으로 1년간 준비한다. 이때 펜촉을 먹물에 찍어 수작업으로만 그리던 출판만화에 국내 최초로 포토샵(Photoshop) 기법을 적용하며 디지털 문화를 수혈하고 그것을 반영한 작품으로 1996년 제2회 윙크 신인 만화 대 공모전에서 단편 <TALENT>로 대상을 받아 데뷔했다. 당시 격주간 순정만화 잡지 윙크의 애독자였던 나는 그녀의 데뷔작을 보고 기존의 순정만화에서 보지 못했던 신선함과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한 상태로 나온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대상 수상 직후 인터뷰로 기억한다. 만화 그리기를 배운 적이 없어 독학하기로 했을 때 습작에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기에 그동안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어 생활비로 쓸 돈을 친오빠에게 빌린 뒤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그림체 만들기와 스토리 연출 방법을 공부했다는 에피소드가. 모두가 부러워하던 대상 데뷔는 타고난 끈기와 노력으로 보이지 않는 재능의 감각을 깨워낸 결실이었다.




해성처럼 등장한 신인 만화가는 몇 개의 단편을 발표한 뒤 첫 잡지 연재를 시작했고 <언플러그드 BOY>는 공개와 동시에 전국 소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큰 키에 조각 같은 비율과 작은 얼굴, 모공 하나 보이지 않는 피부, 뛰어난 패션 감각에 춤까지 잘 추며 심성마저 착한 그야말로 남자친구에 대한 모든 이상향을 집대성한 인물 강현겸의 등장은 엄청난 인기를 불러왔다. 게다가 이야기를 진행하며 캐릭터들을 패셔너블하게 표현하던 작화는 학원물의 주요 타깃층인 10대들에게 인기 있던 브랜드와 입고 싶은 멋진 옷을 나를 대신해 입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며 '트렌디하다'라는 게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게 했다. <언플러그드 BOY>로 천계영 작가는 한국 순정만화계의 판도를 바꿨으며 그녀의 데뷔 이전과 이후가 다른 경계를 지었다. 작품의 어마어마한 인기는 당대 최고의 아이돌 H.O.T. 의 노래 <우리들의 맹세>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에 작화를 담당하게 했고 <언플러그드 BOY>의 주인공들로 C.F가 만들어지며 만화의 주요 캐릭터들이 그려진 문구류는 발매와 동시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그네에 앉아 수줍게 지율이를 위로하는 현겸이의 말에 함께 감동받았던 기억은 28년이 지나 복간된 책을 봐도 여전히 유효하다. 어른으로 자라나던 성장 길에 만났던 그 친구는 우리가 영원히 사랑하는 소년으로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머금어 잊을 수 없는 아이콘이 된다.






오랜 시간 독자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천계영 작가의 작품들 / 이미지 출처- 서울문화사, 예담, 카카오 페이지




<언플러그드 BOY>의 놀라운 성공 이후 천계영 작가는 작품을 발표하면 히트하는 릴레이의 연속이었다. <오디션>, 소설 <the 클럽>, <DVD>, <하이힐을 신은 소녀>, <예쁜 남자> 등의 작품은 참신한 설정과 톡톡 튀는 캐릭터들로 독자의 사랑을 받는다. 2000년대 초 한국 만화에서 웹툰의 약진이 두드러짐을 간파하며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전향해 발표한 <드레스 코드>는 데뷔 때부터 작품 안에서 보여준 패션에 대한 관심을 작가 개인의 영역에 대입해 만든 것으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기 위한 방법을 쉽고 상세히 설명한다. 단순함을 강조한 *데포르메 그림체를 사용하여 정보 전달을 도왔고 그녀의 새로운 시도는 독자와 평단의 호평을 받는다. 이때 그림체의 변화는 2009년 선보인 <예쁜 남자>에서 시작된 것으로 <드레스 코드>를 거치며 다듬어졌고 후속작 <좋아하면 울리는>에 선이 간결하고 면의 느낌을 살린 미니멀한 세 번째 그림체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데뷔 때부터 보여준 자신만의 그림체는 누구의 영향을 받아 파생된 것이 아니라 '본래 천계영 그림'으로 정의된 모습으로 계속 다듬어지고 변신을 거듭한다. 만화를 보는 주요 타깃층의 세대가 가진 특성이 급격히 변화함에 맞춘 작가의 고민과 노력이 한눈에 보이는 대목으로 베테랑 만화가의 위치에 있음에도 끊임없이 생각하는 업(業)에 대한 열정과 장인정신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새롭게 만든 세 번째 그림체로 작업한 <좋아하면 울리는>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앱(App)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기발한 발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현재 누적 4.445만 독자가 보았으며 드라마와 예능으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화수분처럼 진귀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며 만화를 그렸던 작가는 2025년 5월 웹 소설 <왕이 될 몸>을 선보이며 새로운 분야로 영역을 키워 여전히 뛰어난 스토리텔러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데포르메- 미술, 특히 주로 회화에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일부 변형, 과장, 축소, 왜곡을 가해서 표현하는 기법. 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이라고도 불린다. 데포르마시옹은 데포르메의 명사형일 뿐이라 의미상으로는 완전히 동일하지만, 둘을 미묘하게 구분해서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주로 미술사적인 얘기를 할 때 데포르마시옹이라는 용어를 쓰고, 현대 상업미술 쪽 얘기를 할 때 한국에서는 데포르메라는 용어를 쓰는 편이다. 출처- 나무위키









만화 <오디션>의 초판본 전권과 작품의 주인공인 네 명의 음악 천재들로 결성된 '재활용밴드'의 탄생 장면 / 이미지- 개인 소장, 단행본 발췌
<오디션> 속 인물들은 신선한 재미와 파격적 설정으로 저마다 독보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 이미지- 단행본 발췌





커리어의 전부가 히트작인 작가의 작품 중 유난히 <오디션>이 많이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순정만화 최초로 100만 부 판매 신화를 기록한 역사적 만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천계영 만화라는 브랜드'를 전 국민이 알 정도로 각인시킨 주인공 이어서다. 한순간 반짝 유행하는 가벼움으로 인기를 끄는 소재가 아닌 인간의 성장에 필연적인 고뇌와 방황의 순간을 그리며 데뷔 전부터 애정을 가졌던 만화, 패션, 음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집결해 자신만의 위트가 함께 버무려 저 맛깔난 이야기를 만들었다. 전체 내용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유머로 캐릭터의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표적인 예로 작중에서 장달봉이 마포 반점에서 일하며 배달한 짜장면을 '비벼드려요'라는 차별화된 서비스로 동종 업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에이스로 등극한 일화는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참신한 이야기로, 이와 같은 유쾌한 설정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들에게도 해당된다. 출생신고 시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아라비아 숫자가 들어가 '왕5삼'이란 이름을 가진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는 날카로운 치아로 '개이빨'이란 별명을 가진 강력계 형사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순정만화에 개이빨을 가진 남자가 등장하리라는 걸! 왕5삼 반장의 캐릭터 디자인은 기존 한국 순정만화 형식의 찬란한 파괴다. 이렇게 하나하나 작은 부분도 세심한 설정으로 만들어진 비하인드는 캐릭터의 밀도와 희소가치를 높여 독보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작품 도입부 천재 소년들이 데뷔해 낸 앨범의 인터뷰를 미리 보여주며 신선한 이목을 끌고 사랑에 관한 주제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순정만화에 토너먼트식 오디션에 참가해 대결하는 모습은 소년만화의 대전 격투물의 방식을 차용하면서 독자의 성별과 연령을 폭넓게 확산시켰다. 또한 천재적 능력을 가진 이유로 처음부터 최고가 되는 만화적 허구가 아니라 집안 형편과 각자의 사정으로 재능을 키울 시기를 놓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에 실제 한 이야기를 반영했다. 제약을 뛰어넘는 인간의 성장이 어려운 탓에 이것은 각박한 현실에서 꿈을 잃고 살아가는 모든 이의 마음을 관통한다.




10년 전엔 음악 천재였지만 재능을 갈고닦을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천재성을 방치하고 살아왔던 네 명의 소년들은 실력을 겨뤄야 하는 오디션에 참가하기엔 쓸모없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팀을 결성하여 훈련을 시작하고 그들의 천재성 갱생을 바라며 지어진 이름이 '재활용밴드'가 된 것은 쓸모 없어진 것을 다시 쓸 수 있게 하는 자원 재활용의 뜻깊은 취지에서 착안하며 탄생된다.





키 큰 여자가 신는 하이힐, 타투와 피어싱, 예쁜 남자와 혼혈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패션으로 당당히 맞선 <오디션> 속 인물들/ 이미지- 단행본 발췌





이 작품의 독창성은 각자의 개성이 빛나는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을 만든 패션에서 나타난다. 그들이 입는 '옷'이 곧 정체성이라는 것을 작가는 매우 잘 알고 있으며 복식에 대한 이해와 깊은 탐구가 느껴진다. 현실 세계에서 외모와 옷차림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 사람을 제일 먼저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오디션>은 인물이 입는 옷을 통해서 패션 문화를 보여주며 네 가지 사회적 편견에 당당히 맞선다




첫째로 '키 큰 여자가 신는 하이힐'이다. 한두 번을 제외하고 177cm의 키를 가진 명자와 부옥은 언제나 12cm의 하이힐을 신고 큰 키를 더 강조하며 멋지게 거리를 활보한다. 유전자의 영향으로 태생적으로 큰 키를 남자가 가졌을 땐 훤칠해서 멋있다고 하지만 남자보다 키가 큰 여성은 부담스럽다는 한국 사회의 인식에 키 큰 여성들은 외출 시 높은 굽이 있는 신발을 피한다. 그러나 그녀들은 주변의 편협한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이힐은 자신의 각선미를 더 돋보이게 하는 아이템으로 착장에 맞춰 다양한 디자인으로 골라 신을 수 있는 상황을 즐긴다.




둘째는 장달봉의 '타투와 피어싱'이다. 그는 양팔 상완 부위에 불꽃같은 무늬와 가슴에 반달 모양의 컬러로 된 타투를 새겼고 얼굴과 배꼽에 총 11개의 피어싱을 했다. 타투는 고대부터 피어싱은 기원전 1500년에 시작되며 현재는 자신을 패셔너블하게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화는 과거 샤머니즘의 주술적 의미와 사회에서 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형벌로서 낙인을 몸에 새긴다는 의미로 행해져 현대에 와서도 부정적 의미가 남게 됐다. 타투와 피어싱으로 자신을 표출하는 사람에게는 독특한 개성의 발현이지만 위와 같은 인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인간 자체의 격이 떨어진다로 폄하된다.



시골에 살던 달봉이가 서울로 와 도시의 화려함 속에 만난 타투와 피어싱은 남과 다르게 나를 표현하는 도구로 그는 가슴에 있는 반달 타투에 장래의 꿈과 목표를 담았다. 본인의 몸에 타투를 새기고 피어싱을 부착하기에 타인에게 불편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 하지만 길을 가다 타투와 피어싱을 많이 해서 불량스럽게 보인다는 이유로 검문을 당하고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다. 여전히 몸과 얼굴에 있는 타투와 피어싱으로 종종 오해를 받지만 이제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이 매일 옷을 골라 입어 자신을 돋보이게 꾸미는 것처럼 타투와 피어싱이 함께 했을 때 그가 원하는 패션 스타일이 완성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예쁜 남자와 혼혈'이라는 류미끼의 외모다. 남자는 멋있다 여자는 예쁘다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에서 예쁜 남자는 돌연변이 취급을 받는다. 예쁨은 여자의 영역인데 그것을 침범한 남자가 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국내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남아는 하늘색, 여아는 핑크색 옷을 입히는 것과 같은 견해다. 그리고 단일민족 국가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한국적 특성은 타 인종과의 결합으로 피부색과 생김새가 달라지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다. 그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나와 다른 모습에서 오는 이질감에 대한 어색함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감정은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혼혈에게 사회의 차별과 냉대를 받게 했다.



근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성별에 맞추기보다 각자가 가진 고유의 개성에 초점을 맞추는 시대가 되었으며 세계화에 국제결혼도 드문 일이 아닌 게 됐다. 사회적으로 변화된 인식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에게 혼혈로 기존 한국인과 다른 외모를 가진 것에 차별받는 일이 예전보다 현저히 줄었다. 작중 미끼는 예쁜 남자이자 혼혈아로서 늘 주변의 집중된 관심과 따가운 눈초리 속에 살며 차별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을 '너무 예쁜 거'라며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크고 남성인 동시에 여성적 매력을 가진 모습을 숨기지 않고 표현해 높은 자존감의 원천으로 만들었다. 더불어 여자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을 혼혈이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특혜로 여긴다.




천계영 작가는 겉모습으로 판단되는 편협한 시선을 캐릭터들이 패션으로 극대화해 멋지게 소화한 모습으로 보여주며 일반적 시선에 맞지 않는다고 개성을 움츠리기보다 자신 있게 드러냈을 때 더 존중받을 수 있음을 나타내 사회적 편견을 통쾌하게 깨부쉈다.









탐정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옷으로 얘기하는 부옥, 그녀에게 바바리(트렌치코트)는 곧 탐정이다./ 이미지-단행본 발췌





Passion(열정)이자 fashion(패션)으로 설명되는 만화 <오디션>은 1권에서 10권의 완결까지 그야말로 버릴 게 하나도 없는 패션 만화의 바이블이다! 천계영 작가가 처음부터 패션에 몸담겠다고 결심했다면 아마도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로서 거장의 위치에 있을 것이다. 그녀의 패션에 대한 이해는 전공자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으로 얼마나 애정을 갖고 공부하며 고민했는지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캐릭터들의 의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촌스러움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대담하고 감각적인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작품 속 패션이 현재에도 세련되게 다가오는 것은 일시적인 유행(fad)이 아니라 유행을 안 타는(classic) 아이템을 적절히 활용하고 어울리게 변주했기 때문이다. 패션을 사랑하고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 하겠다.




캐릭터가 입은 옷을 통해서 자신을 표출하고 규정하는 모습은 작품 초반 부옥이의 명대사로 전해진다.



"탐정이 탐정답게 바바리를 입고 있어야 의뢰인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거지!

의사가 왜 흰 가운을 입고 있겠어?"



내가 입고 있는 것이 바로 나라고 의식하며 탐정의 바바리를 입었다는 부옥의 말은, 작품 안에서 인물들이 '나답게' 옷을 입어 표현할 것에 대한 예고다







타고난 미모와 큰 키에 뛰어난 패션 감각의 명자는 길거리를 런웨이로 만든다. / 이미지- 단행본 발췌
동서양의 경계 없이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는 명자 / 이미지-단행본 발췌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나 부옥의 원룸에 얹혀사는 명자가 가지고 온 옷들이 방을 한가득 채웠다 / 이미지- 단행본 발췌
명자는 자신의 옷을 고쳐 무대의상을 만들고 돈이 되는 옷은 팔아서 자금을 만든다 / 이미지- 단행본 발췌




송명자. 엔터테인먼트 재벌 송송 그룹 회장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177cm의 키에 하얀 피부와 속눈썹이 풍성하며 눈동자가 크고 예쁜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타고난 미인이다. 태생적으로 부유한 환경과 편견 없는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 자존감이 높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능숙하다. 그 표현 능력이 탁월한 분야는 패션으로 좋은 옷과 패션 아이템을 마음껏 쇼핑하며 갖게 된 심미안(審美眼)은 인생 최대의 무기다. 화려하고 독특한 옷과 패션 물품을 모은 옷장 컬렉션은 그녀의 미모를 돋보이게 하며 하루아침에 조건부 상속녀가 되어 길거리로 나앉게 됐을 때 돈이 필요하면 팔아서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실물 자산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아버지의 유언으로 찾은 네 명의 천재 소년들로 재활용밴드를 결성해 오디션에 참가시키고 매니저로서 의상까지 도맡아 꾸며 줄 때 자신의 옷을 이용해 멤버 별 특성과 콘셉트에 맞춰 감각적으로 리폼한다. 또한 입는 옷의 스타일에 따라 가발을 이용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출하는 진정한 패션 고수로서 팔색조의 매력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모습은 잠재된 능력이 표출된 일부분으로 훗날 세계적인 레이블로 성장하는 '명자 레코드'의 수장으로서 총괄 디렉팅이 가능한 인재로 만들었다.




재벌가의 영애로서 일반 사람은 쉽게 접할 수도 살 수도 없는 *오뜨 꾸뛰르 수준의 옷을 입는 명자는 빼어난 미모와 완벽한 비율의 신체를 가진 자신을 보다 아름답게 나타내기 위해 패션에 빠져들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옷은 가방과 구두, 값비싼 보석과 액세서리까지 동원해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최고의 스타일을 만든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 송 송 회장이 이룩한 부(富)가 원천임을 알고 있으며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누린 모든 것에 감사함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돈 한 푼 없이 조건부 상속녀가 되는 위기를 맞이해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동안 부유한 환경에서 풍족하게 자라며 다양하게 쌓은 경험은 자산이라 여겼고 분명 이것을 바탕으로 무엇이든 해 낼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오뜨 꾸뛰르- 소수 고객층을 위한 맞춤복, 혹은 그것을 만드는 의상점. 공식적으로는 파리의상조합에서 지정한 기준에 맞는 조건을 갖춘 의상 제작점에서 만들어지는 옷이다. /출처-나무위키





재활용밴드와 함께 오디션을 거치며 달라진 그녀의 옷차림은 주위 사람이 느낄 정도다.




갖고 있던 옷과 패션 아이템 중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팔아 재활용밴드의 오디션을 위한 비용으로 쓰며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는 명자는 빈털터리가 된다. 자신을 감싸고 있던 화려함이 걷히자 그녀는 비로소 아버지의 유언에 담긴 속뜻을 깨달았다. 송 송 회장은 지나치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딸이 일반인은 살 수 없는 고가의 옷들로 치장하며 특권층의 우월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을 염려했다. 그런 이유로 비싼 구두를 사면 혼을 냈고 유언장을 통해 그녀를 조건부 상속녀가 되게 하면서 늘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고생 없이 산 명자가 인생의 고난을 이겨내며 내면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길 바란 것이다. 오디션 막바지 명자의 옷이 초기에 입던 옷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딸이 자립하길 바랐던 송 송 회장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일상생활을 하며 입기엔 불편하고 화려한 장식과 디테일의 고급 맞춤옷을 선호하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송명자와 변득출. 그들이 입는 옷에는 '나는 남과 다르다는 특별한 의식'이 서려있다. 자신이 입은 옷으로 신분을 나타냈던 봉건시대의 복식처럼 일반인은 살 수 없는 고가의 맞춤옷은 현대사회의 특권 계층을 나타낸다.






화려한 옷과 메이크업에 하이힐은 심미주의자 변득출의 정체성이다
(좌측) 설치미술 같은 예술성이 느껴지는 독특한 모자를 만드는 영국의 세계적 모자 디자이너 필립 트레이시와 그의 작품 /이미지 출처- 필립 트레이시 공식 홈페이지
자신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맞춤옷은 그의 막대한 재력과 권력의 과시다 / 이미지 출처- 단행본 발췌





변득출은 송송 레코드의 사장이자 대주주 중 한 사람이며 부동산 재벌인 아버지에게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키와 얼굴에 대한 외모 콤플렉스는 지독한 심미주의자로 만든다. 그를 화려하게 감싸는 독특한 옷들은 부와 권력에 대한 과시다. 세상에 단 한 벌로 변득출을 위해 디자인되고 제작된 옷은 각각의 테마가 있으며 이야기의 흐름에 그가 가진 생각과 욕망을 절묘하게 나타내 웃음을 유발한다.




옷과 메이크업으로 늘 다양하게 꾸며 변화를 주지만 언제나 바뀌지 않는 것은 158cm의 키를 보완하고자 실내에서도 신는 12cm의 하이힐이다.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와 남성 귀족들이 신으며 키가 커 보이게 체형을 보완하고 특별한 신분을 나타내 자랑할 수 있었던 하이힐은 현재 여성들이 주로 신지만 남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그에겐 현대에 신흥 귀족으로서 위치를 가진 상징이며 정체성이 된다. 더불어 유니크한 머리 장식과 모자를 쓰는 모습은 영국의 세계적 모자 디자이너 필립 트레이시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설치미술 같은 예술성이 느껴지는 그의 모자는 왕실이나 할리우드 스타들이 착용하는데 이 모자를 쓰고 가는 자리는 보통 사람은 낄 수 없는 파티와 행사장이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잘 알고 있기에 변득출은 일반인과 자신의 신분이 구별되도록 모자라는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명자에게 프러포즈를 거절당해도 그가 계속 구애하는 것은 그녀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 완벽한 여자라서다. 세상에서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된 독특한 옷과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을 소유해야지만 완전무결한 미(美)에 도달한다고 믿는다. 작중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쟁취하려는 모습을 좋게 볼 순 없지만, 자신을 가꾸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패션을 향한 열정만큼은 높이 살만하다. 결말부 그의 머리 장식엔 평화의 상징이 등장하는데, 마치 모두의 행복에 염원을 담은 듯해서 독자에게 끝까지 웃음과 재미를 선사했다.






바바리(트렌치코트)를 탐정의 상징으로 알며 365일 입는 여자 박부옥. 보디슈트에 허벅지까지 오는 싸이하이 부츠도 소화하는 패셔니스타 탐정이다 / 이미지-단행본 발췌
트렌치코트와 함께 1997년~2001년 선보인 부옥의 원조 에슬레저룩과 란제리룩은 현시점에서 보아도 세련됨이 뛰어나다/ 이미지- 단행본 발췌




명자와 같은 키를 가진 여고 동창이자 친구로 늘씬하고 까맣게 그 흘린 피부가 매력적인 여자 박부옥. 불같은 성격과 오버액션으로 태세전환이 빠른 특성은 그녀의 직업인 탐정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직업적 위계에 한해서 탐정과 조수가 같은 레벨의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가진 개업 한 달 차 탐정이다. 어느 날 여고 시절 라이벌이자 원수인 명자가 첫 의뢰인으로 찾아와 아버지의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사건을 맡기며 네 명의 천재 소년을 찾아 그들이 밴드 오디션에 참가하는 여정에 동행하게 된다.




여고시절 머리를 짧게 자르고 큰 키에 보이시한 스타일을 즐겼으나 현재는 허리 밑으로 내려오는 긴 머리를 정수리 높이 치켜 묶은 포니테일 헤어로 여성미와 활동성을 나타내며 섹시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옷차림과도 잘 어울린다. 긴 다리에 볼륨 있는 몸매를 강조한 부옥의 옷은 상의는 어깨와 복부의 노출이 많은 브라탑(Bra top) 형태와 하의는 밀착되며 몸의 곡선이 드러나는 5부 레깅스(바이커 쇼츠)로 1997년 연재 당시와 현재의 상황에서 비교해 봐도 과감하고 대범한 옷인 것에 변함이 없다. 이것은 몇 해 전부터 글로벌 트렌드로 유행하고 있는 *에슬레저룩의 원조라 말할 수 있는 형태로 부옥의 원조 에슬레저룩 스타일은 지금 나오는 옷들과 견주어도 그 세련됨이 뛰어나다. 이 멋진 에슬레저룩이 탄생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부옥이의 한 벌 뿐인 최애 아이템 겨울용 바바리(트렌치코트)를 365일 입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트렌치코트가 탐정의 상징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어서 한여름 무더운 날씨를 버티기 위해 안에 입는 옷들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과감해진 것이다. 게다가 트렌치코트를 만드는 소재로 유명한 개버딘 원단의 촘촘한 밀도에 폴리에스테르 100%인 체크무늬 안감을 덧대 봉제한 방식은 실제로 여름에 입기가 매우 힘들다.




패션의 클래식 아이템인 트렌치코트를 부옥이가 탐정으로서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자 시그니처룩으로 조합한 선택은 완벽이란 말 이외엔 다른 표현이 없다. 에슬레저룩을 메인으로 비키니 탑에 청바지를 입고 레이스가 도드라진 란제리룩을 입지만 옷차림에 천박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단연코 트렌치코트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클래식 아이템이 주는 우아함이 노출의 선정성을 차단하며 고전적 느낌이 자칫 지루함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을 에슬레저룩과 란제리룩으로 신선함을 더한 윈윈전략이 최고의 시너지를 냈다. 그 시대에 유행하는 많은 겉옷 중에서 정통 트렌치코트 스타일을 선택한 그녀의 안목은 정확하며 부옥은 탐정의 직관적 촉으로 분명 알고 입었을 것이다. 클래식의 클래스가 영원하다는 걸.




*에슬레저룩- 운동을 의미하는 애슬레틱(athletic)과 여가를 뜻하는 레저(leisure)의 합성어로, 스포츠웨어를 기반으로 하여 활동적이면서도 편해 보이는 옷차림을 일컫는 용어이다. 스포츠웨어 업계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스포츠웨어 판매를 확대시키기 위해 스포츠웨어를 일상복에 가깝게 만들면서 탄생하였다. 국내에서는 201년대 후반부터 늘어나기 시작하여, 2011년을 전후로 유행하여 일반적인 스타일 중 하나로 정착되었다. 주로 활용되는 스포츠웨어로는 러닝용 조거, 등산용 바람막이, 요가용 레깅스 등이 있다. / 출처-나무위키






재활용밴드의 첫 앨범 발매 후 인터뷰에서 장달봉과 10년 전 송 송 회장과 만났던 소년 시절의 모습 / 이미지- 단행본 발췌
근육질의 육체미가 돋보이는 옷으로 자신의 매력을 살리는 장달봉. 언제나 부끄러우면 얼굴에 홍조가 생기는 귀여운 남자다 / 이미지- 단행본 발췌




송 송 회장이 아내와 사별 후 슬픔을 달래기 위해 혼자 여행하던 중 초강역에서 만난 첫 번째 천재 소년 장달봉은 시골 마을의 까까머리 소년으로 자연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듣고 음계를 찾아내는 천재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본인의 음악적 재능을 알지 못하고 단순한 놀이로서 여긴 그는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지 못해 중학교를 중퇴 후 일찌감치 서울로 가 돈을 벌겠다고 결심한다. 달봉은 별 다른 소식도 없이 잘 살고 있다는 엽서 한 장만 본가에 덜렁 보내고 그 엽서에 찍힌 마포구 소인을 단서로 추적하던 중 부옥의 동물적인 촉에 발견한 그는 마포구의 마포 반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배달원으로서 그의 특별한 능력은 업계에서 드물게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5년 전속 계약을 하지만, 명자가 어린 시절 송 송 회장과의 만남을 말하며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재능에 대한 얘기를 듣고 밴드 오디션의 멤버가 된다.




근육질 몸매가 돋보이도록 상의가 딱 붙는 옷을 자주 입고 중단발의 헤어스타일을 반묶음 하며 양팔과 가슴에 컬러로 된 타투, 얼굴에 피어싱을 한 모습에서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삶의 자유스러운 태도를 추구하는 경향이 보인다. 남다른 애국심을 가진 그는 가슴에 있는 반달 모양의 타투에 태극무늬를 넣어 장래에 꿈을 담는다. 글로벌 브랜드 나이키의 심벌 스우시가 장악한 국내 패션에 언젠가 한국인의 기상이 느껴지는 브랜드 반달곰을 만들어 전 국민의 가슴에 새겨 주리라는 담대한 포부를 갖고 있다. 하지만 타투의 좋은 의미와는 별개로 불량스러워 보인다며 불심검문을 당하고 경찰서에 간 적이 있다. 종종 외모로 오해받지만 한 번이라도 그와 말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수줍을 땐 금세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여전히 순박한 시골 소년의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이 살기 위해 얻은 자취방을 재활용밴드가 함께 살기 위한 합숙소로 내어주고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긴다. 멤버들 중 유일한 미성년자인 보컬 황보래용을 깨워 소시지를 볶아 도시락을 만들어 등교시키고, 힘든 오디션 경합을 치르고 온 날엔 대야에 물을 받아 래용이의 얼굴과 발도 씻겨주는 다정한 형이다. 특히 그의 다정함은 여성에게 잘 전해지는데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성을 플러팅 하는 고급 연애 스킬을 가진 마성의 남자로 나이에 비해 사귄 여성의 수가 상당하며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별도의 사진첩을 만들어 보관한다. 펩시 마크를 태극무늬로 착각해 국산 콜라로 여기고, 구구단에서 8단이 어려워 못 외우는 등 음악 이외의 분야에서는 허술한 기억력으로 곤란을 겪지만 처음 들은 곡이라도 한번 듣게 되면 즉시 머릿속에 저장되어 모든 악보를 그려 낼 수 있는 그는 팀 내에서도 모차르트 급의 음악 천재로서 인정받으며 무대 위에선 최고의 베이시스트가 된다.





재활용밴드의 첫 앨범 발매 후 인터뷰에서 황보래용과 10년 전 송 송 회장과 만났던 소년 시절의 모습 / 이미지- 단행본 발췌
우울증 일 때와 조증을 앓을 때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황보 래용
팀의 귀염둥이 막내이자 재기 발랄한 매력의 소유자 황보래용은 팬티와 내복, 수건과 생활정보신문마저 패션 아이템으로 쓰는 재치 있는 패션을 선보인다 / 이미지- 단행본 발췌




명자와 부산 해운대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던 송 송 회장이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알게 된 두 번째 천재 소년 황보래용. 바다에 빠진 소년은 해변에서 1km 이상 떨어진 먼 곳에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구조요청을 해 살 수 있었다. 물 속에서 외부의 공기 없이도 갖고 있는 숨으로 참고 오래 견딜 수 있게 한 폐활량과 멀리 있는 곳까지 전달되던 목소리를 만든 튼튼한 성대와 성량이 타고나지 않았다면 어린아이의 몸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소년의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성(聲)으로 한번 들었지만 잊을 수 없었다. 구조 당시 병원으로 이송되며 RH-의 특수 혈액형을 가졌다고 외치는 아이 어머니의 외침을 단서로 인근 병원에서 의료기록을 찾아 현재 재학 중인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쉽게 발견하지만, 명자와 부옥은 그가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폐인처럼 지내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RH-B형이라는 희귀한 혈액형을 가진 황보래용은 일반 사람과 다른 몇 가지 특이점이 더 있다. IQ170에 5개 국어에 능통하며 전국 규모의 수학, 과학, 컴퓨터 프로그래밍 경시대회에서 1등을 밥 먹듯이 한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은 주변의 시기와 질투로 집단 따돌림을 받게 했고 그 스트레스의 영향은 조울병(躁鬱病)을 앓게 한다. 명자와 만났던 시기는 우울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부옥의 사무실로 올 때는 조증(躁症)이 찾아와 밝아진 모습이 되어 간신히 오디션의 멤버로서 참가할 수 있었다.




양극성 정신질환으로 성격이 밝고 흥분된 상태가 된 래용은 검은 머리를 오렌지색으로 염색하고 직사각형의 뿔테안경은 테두리 끝이 높게 위로 올라간 안경으로 바꿔 고양된 마음을 표현한다. 자신을 외계 행성 '레'에서 온 외계인 '베레베레베레'라고 소개하며 변화된 성격은 옷차림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눈알 모형이 스프링에 달린 머리띠를 착용하고 교복 셔츠 대신 화려한 *플라운스 장식의 블라우스에 염색 머리를 가리기 위해 생활정보신문을 고깔로 접어 머리에 쓰는 등 기상천외한 패션을 선보이며 들뜬 마음을 표출했다. 갑자기 흥분된 상태에서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다니고 상의 탈의에 팬티와 내복 차림도 스스럼없이 보이며 겉보기에 노출증이 있는 것처럼 오해를 사지만 그것은 생애 첫 무대에 오르는 긴장된 순간 천재로서 진가를 자연스럽게 발휘하는 행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평소 취미로 모으는 수건을 목에 두르며 성대를 보호하고 신발을 벗어 맨발을 무대 지면과 닿게 해 안정감을 느끼게 하여 본능적으로 최고의 목소리 컨디션을 낼 수 있도록 만드는 타고난 보컬이다.




*플라운스(flounce)- 프릴보다 폭이 넓은 주름 장식. 옷깃, 소맷부리, 드레스, 바지, 치마의 단 따위에 쓰인다./ 출처-네이버 사전






재활용밴드의 첫 앨범 발매 후 인터뷰에서 류미끼와 10년 전 송 송 회장과 만났던 소년 시절의 모습 / 이미지- 단행본 발췌
선이 가늘고 고운 자신의 신체적 장점을 돋보이도록 옷을 입는 미끼/ 이미지- 단행본 발췌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미끼의 데님 쇼츠,그는 나에게 어울리고 좋아하는 옷을 입을 뿐이다./ 이미지- 단행본 발췌





동호대교 위에서 차가 고장 나 서비스센터를 기다리던 송 송 회장이 멀리서 난간을 막대로 긁으며 다가와 만나게 된 세 번째 천재 소년 류미끼. 그는 백인 혼혈에 10살쯤 돼 보이는 소년이 막대와 난간을 악기처럼 다루며 다양한 음악 장르의 필(feel)이 느껴지는 리듬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 감탄한다. 손의 힘으로 강약을, 걸어가는 속도로는 음의 길이를 자유롭게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서 정확한 템포를 지켜 박자를 쪼깨는 모습은 어린아이라고 믿기 힘든 실력이었다. 동호대교 근처 초등학교에서 백인 혼혈 아이를 찾고 살던 동네를 좁혀가며 만난 미끼는 고등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가수 데뷔를 준비하는 친구의 백업댄서로 일하고 있었지만, 명자에게서 어린 시절 자신의 취미가 음악적 재능의 한 부분임을 알고 오디션을 보기로 결정한다.




군인 출신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백인 혼혈로 미키(Mickey)를 억세게 발음했던 것을 어머니가 들리는 데로 한글로 받아 적어 미끼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가 어릴 때 부모님이 헤어지고 어머니가 노점상을 하며 모자가 힘들게 사는데, 일을 하러 나간 어머니를 기다릴 때 방바닥에 누어 집안의 모든 시계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 리듬을 만들고 박자를 나누며 음의 감각을 몸에 익혔다. 어려서부터 혼혈이자 예쁜 남자로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게 일상이었던 미끼는 눈치 100단의 공감 능력자로 자신의 미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어려운 상황을 쉽게 극복해 가는 재주가 있다. 재활용밴드로서 합숙하며 생활비에 보태려고 달봉이와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지만 집세를 내고 나면 식비가 부족해 쌀이 떨어지기 일쑤인 상황에서 슈퍼 총각을 미모와 말로 구슬려 외상을 받아 식료품을 사고, 팀의 멤버 국 철을 짝사랑하는 주인집 손녀 몽희의 마음을 알아주며 쌀과 반찬을 기부받는다.




쾌활하고 긍정적인 미끼의 삶의 태도는 그의 패션에도 나타나며 여자보다 예쁜 남자로서 선이 가늘고 고운 자신의 몸이 돋보이는 옷을 입는다. 목선과 팔의 라인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상체에 슬리브리스를 입고 하체는 와이드 한 힙합바지를, 다리를 강조하기 위해 데님 쇼츠를 입을 땐 무릎까지 오는 엔지니어 부츠 또는 웨스턴 부츠를 신고 상의는 여유 있는 긴팔 티셔츠를 매치해 스타일에 밸런스를 맞춘다. 미끼가 입은 데님 쇼츠는 남성복에서 대중적으로 만드는 기장이 아닌 옷으로 여성이 입는 핫팬츠와 비등하다고 볼 수 있는 짧은 길이다. 착용 모습으로 미루어 그는 남성용 데님을 잘라 입은 것이 아니라 여성 데님으로 나온 제품을 입은 것이다.




미끼는 일반 남성에 비해 작은 골격과 엉덩이, 가늘고 긴 다리를 가져 골반이 여유 있는 여성 데님을 입기에도 불편함이 없는 체형이다. 신체를 적절히 노출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그는 예쁜 남자로서 여자의 옷을 입은 게 아니라, 나에게 어울리고 좋아하는 옷을 입었을 뿐이다. 미끼가 데님 쇼츠를 입은 1997년은 아직 *젠더리스(genderless)의 경향이 나오지 않았던 시기다. 하지만 빼어난 미모와 허리를 넘기는 긴 머리카락에 선이 얇은 체형적 특성은 성별이 모호한 실루엣을 만들었고 여기에 여성 데님 쇼츠는 완벽히 들어맞아 시대를 앞선 패션을 보여 주었다. 본인의 취향과 개성을 살린 옷으로 성별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을 구분 짓지 않는 자유로운 삶의 태도를 지닌 미끼는 드럼을 칠 때 누구보다 정확하고 구분된 리듬과 템포로 박자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천재 드러머로 변모한다.





*젠더리스(genderless)- 일반 성과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옷차림을 즐기는 새로운 패션 경향을 이르는 말. /출처- 네이버





재활용밴드의 첫 앨범 발매 후 인터뷰에서 국 철과 10년 전 송 송 회장과 만났던 소년 시절의 모습 / 이미지- 단행본 발췌
팀 내 최고의 패셔니스타이자 다리가 예쁜 기타리스트 국 철. 그의 패션은 여전히 세련되고 멋지다/ 이미지- 단행본 발췌





대전에 출장 간 송 송 회장이 수입 음반 전문점에 들렀을 때 어린아이가 재즈 코너에 있는 것이 신기해 지켜보다가 비닐에 붙은 도난방지 텍(tag)을 벗겨 내용물만 훔쳐간 모습에 뒤쫓아 만난 마지막 천재 소년 국 철. 계속 지켜보던 송 송 회장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손동작은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소년의 미래가 걱정돼 선도(導)의 목적으로 대화를 시작한 송 송 회장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리코딩된 음악만 듣고도 뮤지션의 내면 깊숙한 생각과 감정마저 분석하는 탁월한 음악적 영감을 갖고 있음에 충격을 받고 빠른 손놀림과 아주 긴 손가락을 가진 소년은 기타리스트로서 최고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수입 음반 전문점 길 건너편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에 살던 철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주변에 소식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CD를 훔칠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서울의 대형 음반 매장에서 도난당한 목록을 살펴보던 중 장르를 시기별로 집중해서 듣는 국 철의 음악 감상 특징을 포착하며 이어진 부옥의 수사로 그가 '빠른 손'이라 불리며 소매치기로 활동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명자와 부옥은 경찰의 눈을 피해 철이만 알아들을 수 있는 송 송 회장과의 일화를 적은 현수막을 음반 매장 앞에 걸어 접선을 시도하고, 오디션 접수 마지막 날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모습으로 팀이 되기 위해 찾아왔다.




소년 시절 그가 처음 절도를 하게 한 것은 고아원에 가기 전 희미하게 남아 있는 뮤지션이었던 아버지와의 추억 때문이다.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진 않지만 그의 음악을 듣는다면 분명 아들이기에 느낌으로 알 수 있다고 여겼고 아버지의 음악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 기타 연주를 듣게 됐을 때 그 앨범을 훔쳐 달아난 것이 최초의 도둑질이 됐다. 절도는 범죄고 나쁜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행위가 아니었다면 송 송 회장과의 만남도 생기지 않아 그가 가진 재능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하니 하늘이 내린 운명적 만남이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활용밴드 멤버 중 사복 패션 일인자인 국 철은 천계영 작가가 작정하고 만든 패셔니스타다. 자신의 다리가 예쁜 것을 알고 있는 그는 하체 라인이 돋보이게 스키니진을 자주 입고 클래식하면서도 트렌디한 패션아이템을 소재와 디자인에 따라 연출 방법에 변화를 준다. 끝이 살짝 올라가 그의 눈매와 비슷한 오발 선글라스에 겨울 아우터의 고전 무스탕을 입고 북유럽 감성의 노르딕 패턴 스웨터와 앤디워홀의 마릴린 먼로 작품이 프린팅된 니트에 블랙 재킷을 걸쳐 쿨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만들었다. 또한 본인과 록 밴드의 반항적 이미지와도 부합하는 슬리브리스에 영문 레터링 KISS를 *핫피스로 장식한 디테일과 지브라 패턴의 애니멀 프린트는 너무나 유니크하다. 여러 옷들 중 지브라 무늬를 입은 모습은 실제 얼룩말(zebra)의 성격이 나빠서 사육사들마저 길들이기를 포기했다는 말이 나온다는 동물적 특성이 그의 까칠한 성격과 함께 떠올려진다. 6권에 실린 멤버 별 단독 일러스트에서 입은 옷으로 인물들의 성향을 나타냈던 이스터에그(Easter egg)와 작중 이야기 속에서도 유일하게 지브라 패턴을 국 철만이 입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련되고 다양한 옷차림과는 달리 앞머리를 길게 내려 눈을 다 가린 그의 헤어스타일은 세상의 불필요한 시선에서 자신을 차단한다는 듯 폐쇄적이다. 그러나 노래를 듣고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속 뜻을 통찰하며 말할 때는 앞머리의 장막이 거치며 눈이 밝게 빛난다. 그는 주변에 무심하게 보이지만 음악과 재활용밴드에 관한 거라면 늘 적극적이며 생활에서 얻은 영감으로 곡을 쓰기 위해 집중하고 무대에 올라가면 리듬에 완벽히 빠져드는 천재 기타리스트다.





*핫피스(hot piece)- 큐빅 등의 반짝이는 장식. 또는 그러한 장식을 어떤 제품에 붙이는 일.

/출처-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오디션 참가로 팀을 결성해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예심을 통과하고 본선과 결승까지 10명의 팀과 만나 단기간에 잠들었던 재능을 깨워낸 네 명의 소년들. 과거의 천재가 아닌 단합된 동료로서 재활용밴드란 이름으로 지금의 현실에 도착했다.



자신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네 명의 소년들은 재능을 찾아 키우기보다 하루를 살아가는 오늘의 무게를 버티기 위한 날을 지나온다. 늘 누군가의 평가로 언제나 현실의 오디션에 놓여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현재는 답답하고 미래는 밝은 내일을 약속하지 못해 불안하지만 잃었던 꿈의 순간을 되짚어 다시 만난 세계에는 바라고 이뤄지길 기다리는 나의 이야기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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