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아이가 내 품에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행복감보다 이 세상에 아이와 나, 둘만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 커져갔습니다. 남편도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려다 보니 매일 늦게 퇴근하여 독박육아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에 소통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어서 세상과 단절된 섬에 아이와 둘이 갇혀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이를 재워 놓고 창밖을 바라보면 눈물이 흐르고 뛰어내리고 싶다는 옳지 못한 생각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출산 휴가를 끝내고 복직을 하면서 우울증은 사라졌습니다. 사실 이런 증상이 산후 우울증인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우울증이 병이라는 사회적 인식보다는 일시적인 우울한 감정일 뿐이라고 여겨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우울증이 병이라고 여겨진 것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서로 소통하기 힘들어진 최근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놀랍게도 조선시대에도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 호질 등을 지은 위대한 문장가 연암 박지원입니다. 연암의 손자인 박주수가 그린 연암의 초상화를 보면 연암은 매서운 눈매와 풍채를 갖고 있어 우울증과는 상당히 멀어 보입니다. 여하튼 연암의 사상처럼 시대를 앞서간 병을 앓았던 젊은 시절 연암은 조선시대에 우울증을 어떻게 치료했을지 궁금해집니다.
정서적 육체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경우가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하는 데 연암은 우울증의 원인을 알았던 걸까요. 연암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약을 먹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기로 합니다.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우울증의 증상이었던 거식증과 불면증을 고쳐나간 이야기가 민옹전에 담겨 있습니다.
기이한 노인이라고 민옹을 소개받은 연암은 민옹과 함께 하루를 보내기로 합니다. 연암은 민옹에게 음식 먹기를 싫어하고 밤에는 잠을 못 잔다고 하자 민옹은 갑자기 일어나 연암에게 축하한다고 합니다. 연암이 놀라서 무엇을 축하하느냐고 묻자 집이 가난한데 음식 먹기를 싫어하니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잠이 없으면 낮과 밤을 아우르며 갑절을 사는 것이니 장수와 재물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민옹의 역발상으로 거식증과 불면증이 병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끼니때가 되어 밥상이 들어오자 얼굴을 찌푸리고 음식의 냄새만 맡고 있던 연암에게 민옹은 화를 내며 돌아가려 합니다. 손님을 앞에 두고 혼자 먹으려고 하니 예의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연암은 사과하면서 음식을 다시 차려오게 하자 민옹은 사양하지 않고 팔뚝을 걷어올리고 음식을 맛깔스럽게 먹습니다. 이를 본 연암은 저절로 침이 고이면서 예전처럼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밤이 되자 민옹은 책을 암송하는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자신은 벌써 다 외웠다며 재촉하는 민옹의 말에 연암은 책을 외우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민옹과 소통하면서 우울증을 고친 연암은 민옹이 세상을 뜨자 우울증이 다시 도졌다고 합니다.
시련은 사람은 더 단단하게 하고 사유하게 만들기 때문일까요. 어찌보면 연암의 우울증은 연암 문학의 근원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노론 명문가 집안의 연암이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 신분에 상관없이, 직업에 상관없이, 가진 것에 상관없이, 개의치 않고 친구가 되고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글을 남깁니다.
그들을 보면서 눈으로 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까마귀는 검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빛의 강도나 반사에 따라 자주색으로도 보이고 비취색으로도 보인다고 연암은 말합니다. 사물은 본디 정해진 색이 없는데도 눈으로 먼저 정해버리고 눈으로만 정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연암은 청나라 건륭제 고종의 칠순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합류하여 연경에 도착했다가 황제가 피서를 위해 열하의 별궁에 갔다는 소식에 열하를 향해 가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담은 <열하일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황제의 고희연 전에 열하에 도착해야 해서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너야 했는데 강을 건너가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시뻘건 흙탕물이 두려워 하늘을 보며 건너고 밤에는 거센 물결이 보이지 않는 대신 강물 소리가 공포스러웠습니다. 이렇게 강물을 건너다 죽을 것 같은 위기 속에서 연암은 문득 깨닫게 됩니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하는 사람, 즉 마음을 잠잠하게 하는 자는 귀와 눈이 해로움이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아져서 병통이 되는 것이다.
<열하일기_일야구도하기>
눈과 귀에만 의존하여 판단하면 편견과 선입견이 생기고 그런 편견과 선입견이 만들어 낸 사회관습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쉽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연암은 사대주의에 얽매인 형식주의와 보수 성향을 거부하고 실용적인 북학 사상을 받아들입니다. 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백성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는 이용후생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노론 가문이었던 연암이 이렇게 당시의 틀을 깨는 생각으로 글을 남긴 것이 더욱 놀랍기만 합니다.
연암의 마지막 가는 길도 선각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69세 때 풍비가 와서 꼼짝할 수 없게 되자 약을 멀리하고 술상을 차려 친구들을 불러 서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전 장례를 치르다 세상을 떠납니다.
연암이 세상을 떠나고 2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눈으로 본 것으로만 모든 것을 쉽게 판단하며 진짜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연암이 말한 까마귀는 검지 않다는 말에 어린 왕자가 말해준 비밀이 떠오릅니다.
이제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간단해. 그건 오직 마음으로 봐야 올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야.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