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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다 _ 니코스 카잔차키스

내 인생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by 박소형

10여 년 전, 병실에 누워 자유를 갈망했던 일을 기억한다.

수술 전에는 금식이라서 먹을 수 있는 자유도 없었고, 불편한 병실을 벗어나 이동할 수 있는 자유도 없었다. 그저 수술이 끝나고 나서 하루라도 빨리 병실을 벗어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서 자유롭게 지내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주어진 최대의 자유는 독서였다. 남편에게 읽고 싶은 책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신체적 자유가 없는 공간에서 책을 통해 비로소 정신적 해방감을 느꼈다. 이것이 지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자유를 갈망한 사건이다.




회사나 학교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이유도 바로 자유에 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입학 혹은 입사 시험에 통과하기만을 바라면서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학교나 회사가 미워진다. 나와 맞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학교와 회사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각기 다른 배경을 갖고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 중에서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은 당연하다.



나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 다니고 있는 학교나 회사가 나의 신체적 자유를 억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는 인간은 행복이 아니라 생존을 추구하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로운 신체적 행복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학교와 회사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행복의 조건 중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19세기 영국에서 자유를 갈망하던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인간의 본성을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본성상
모형대로 찍어내고
그것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보다는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 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따라, 밀은 자유의 한계를 규정하기 위해 의견과 행동을 구분하였다. '의견'은 그 어떤 것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행동'은 남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사적인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는 시공간을 넘어서 모든 사람이 꿈꾸는 이상향이다. 이처럼 우리가 꿈꾸는 자유로운 인간 조르바를 묘사한 책이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끊임없이 다양한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도 시공간을 넘어 영감을 주는 책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다. 당시 크레타 섬은 그리스 본토와 달리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어 유년 시절 카잔차키스는 험악한 전쟁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게릴라 단체 지도자였던 그의 아버지 미할리스 카잔차키스를 기리기 위해 지은 소설 <미할리스 대장>을 보면 그가 왜 이토록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 <미할리스 대장>은 아홉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튀르키예인들 손에 교수형을 당한 기독교들에 입을 맞추게 하며 그들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게 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 잘 보고, 죽을 때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아버지, 누가 이분들을 죽였어요?
아버지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 자유



시대적 상황과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는 자유다. 카잔차키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실존 인물 조르바에게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기도 하다.


결혼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조국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물질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 인물 조르바를 통해서 진정한 자유를 생각해 본다. 카잔차키스는 자유롭기 위해서 희망을 정복하라고 말한다.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야 그것이 바로 자유이고 자유는 곧 행복이기 때문이다.



자유롭길 바랐던 그는 생전에 이런 묘비명을 준비해 놓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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