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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_ 천상병 시인

비정상적인 정부의 희생양이었던 시인의 삶과 지금 우리의 현실

by 박소형 Dec 10. 2024
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그날> 곽효환



일주일  12월 3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무심코 보았던 텔레비전에서 대통령이 나와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뉴스 속보를 보았다. 서울에 있는 딸아이와 남편이 걱정되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늘에는 헬기가 날아다니고 거리에는 장갑차가 돌아다니고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로 진입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 밤, 어느 누가 맘 편히 잠을 잘 수 있었을까.      



나도 울컥 울음이 터졌다.

가족에 대한 걱정과 평화로운 시기에 어이없이 계엄령을 선포한 권력자에 대한 분노였다. 불과 6시간 만에 계엄령은 해제되었지만 그날 이후 나의 아주 보통의 하루가 사라졌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걱정 때문에 잠들지 못했다. 매일 다이어리를 쓰고 좋은 문장을 필사하고 독서를 하는 루틴까지 흐트러졌다. 일주일 만에 다이어리를 찾아보니 그날 이후 나의 시간은 멈춰있었다.    


 

나도 다시 견디는 힘을 배워야 했다.

불안감에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새로운 뉴스를 찾아보는 것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책장에서 예전에 읽었던 시집을 읽다가 지금 내 마음과 같은 시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 시가 바로 곽효환 시인의 <그날>이다.      



사실 몇 년 전에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텍스트 자체로만 시를 이해하려 하니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시인이 겪었던 텍스트 이면에 있는 상황을 현재 나의 상황과 연결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나의 경험과 시인의 경험에 교집합이 생겨 절묘한 타이밍에 다시 만난 <그날>은 나에게 감동적인 시가 되었다.






인간은 죽음을 아는 유일한 존재이고 죽음은 인간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일생의 한 과정이다. 죽음은 모든 인생사의 교집합이기에 죽음을 주제로 한 시에 많이들 공감하는 게 아닐까.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그렇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 천상병


19세기 프랑스의 시인 랭보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거대하고 체계적인 비틀기를 통하여 견자見者가 된다.
   

즉 자신의 모든 감각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시인이라는 뜻이다. 죽음을 아름다운 소풍을 끝내는 날로 바라본 천상병 시인은 정말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을까.     



천상병 시인은 흔히 기인이자 천재였다고 말한다. 막걸리를 좋아하고 방랑자 기질이 있는 기인이었고 중학교 때 지은 시로 문단에 이름이 실리기도 하였다. 6.25 전쟁 시 미군의 통역관으로도 활동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다니면서 평론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시인의 삶을 망가뜨린 것은 동베를린 공작단 사건, 세칭 동백림 사건이다. 1967년 6월 8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박정희 정권은 3선 개헌을 통해 국회 의석을 2/3 이상 끌어올리려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6.8 부정 총선 규탄 시위가 일어나자 사회적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간첩 사건을 조작하였다.      



시인의 술친구 강빈구가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자 친구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인도 연루되어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고 시인은 모진 고문을 당하여 그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에 병이 들었다.



정신착란에 가까운 증세를 보이며 여기저기 떠돌다 서울 시립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이를 알지 못한 동료 시인들은 객사한 것으로 오해하고 그의 작품을 모아 유고 시집인 <새>를 출판하였다. 다행히 책이 출판되고 나서 시인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인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친구 여동생이었던 목순옥 여사가 여러 해 동안 시인을 간병하였고 이를 계기로 결혼하였다. 목순옥 여사가 찻집 <귀천>을 운영하면서 시인을 돌보았고 술을 즐기던 시인은 간경변으로 향년 63세의 나이에 귀천하였다. 그의 묘비명에는 <귀천>의 마지막 구절이 쓰여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비정상적인 정부가 시인의 삶을 망가뜨려 놓았지만 시를 향한 그의 마음만은 꺾을 수 없던 것은 아닐까.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또 다른 비정상적인 정부의 행태를 지금 다시 목도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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