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시간의 법칙을 실천한 조선의 독서왕 백곡 김득신
맘 졸이던 올해 수능도 이제 끝났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요기 베라의 말은 야구뿐만 아니라 입시에도 통한다. 수능은 끝났지만 논술이나 면접을 준비하고 수시 모집 결과를 기다리고 추가 합격까지 기다리다 보면 많이들 지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전까지 결론이 나서 올해 한 번뿐인 크리스마스를 기분 좋게 맞이하는 것도 커다란 행복이다. 정시 모집 지원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설날을 행복하게 맞이하는 것이 또 다른 목표다.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한 번에 붙고 졸업과 함께 원하는 대로 취업하는 것이 모든 부모가 바라는 우리 아이 성장 프로젝트가 아닐까. 안타깝게도 모든 프로젝트 아니 모든 인생이 그렇듯이 원하는 대로 한 번에 꽃길을 가는 경우는 드물다. 시대적 상황이나 내 주위의 환경, 물려받은 유전자까지 내 인생이든 내 아이의 인생이든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걸 우리는 고난이나 역경이라고 표현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무언가를 이루어냈다. 즉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을 내 뜻대로 바꾸어나가는 것을 우리는 성공이라고 부른다. 내 뜻대로 내 인생을 꾸려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한 가지는 반복을 인내하는 성실함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훌륭한 연주를 하기 위해서, 감동을 주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성실함이 기본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매일 3시간씩 훈련할 경우 약 10년, 하루 10시간씩 지속한다면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은 끈기의 더 넓은 의미 <그릿>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리에게 <1만 시간의 법칙>도 쉽지 않은 일인데 놀랍게도 조선시대에 <1만 시간의 법칙>을 넘어 10만 시간의 법칙을 <그릿>으로 실천한 인물이 있다. 바로 조선시대 효종이 극찬했다는 백곡 김득신이다.
백곡 김득신은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난 골칫덩어리였다. 할아버지 김시회는 스물다섯 살에 문과에 급제했고, 아버지 김치는 스무 살에 문과에 급제한 영재였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활약한 김시민 장군이 백곡의 양할아버지이다.
백곡은 어릴 적 천연두를 앓은 탓인지 머리가 둔하여 열 살 무렵부터 글을 읽기 시작했지만 읽은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집안의 장손인 백곡이 머리가 나빠 과거 시험을 치르기 어려우니 문중에서는 양아들을 들이자고 하자 아버지가 반대하였다. 공부는 과거 시험이 목적이 아니라며 백곡을 직접 가르쳤지만 수십 번 공부해도 깨치지 못하는 백곡이 안타까워 아버지는 이제 공부를 그만하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아버지 생전에 과거에 합격하지는 못했지만 백곡은 쉰아홉 살에 드디어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길에 올랐지만 바로 낙향하여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시를 지었다. 효종이 읽고 당나라 사람도 부러워할 작품이라고 극찬한 시가 바로 백곡의 <용호음>이다.
고목에는 차가운 안개가 휘감고
가을 산에는 소나기가 흩뿌리네
해 저무는 강물에 풍랑이 이니
어부는 서둘러 뱃머리를 돌리는 구나
백곡이 1억 1만 3천 번을 읽었다는 <백이열전>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자신이 많이 읽었던 <백이열전>을 소리 내어 읽는 집 앞을 지나가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백곡의 노비가 <백이열전>의 첫 번째 문장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백곡은 딸과 아내를 여의어 상을 치르는 중에도 <백이열전>을 쥐고 있거나 곡소리에 맞춰 책을 읽고 있었다니 백곡에게 <백이열전>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할 정도이다.
물론 성실하다고 모두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백곡의 삶을 보면서 유한한 인생에 자신이 원하는 꽃길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꾸준함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머리가 나쁘다고 속도가 느리다고 원망하거나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포기하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한 발씩 걸어간 백곡 김득신. 그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런 글을 남겼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 하여 스스로 한계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이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
결국 내 인생의 꽃길은 전체를 조망하면서 나를 믿고 꾸준히 가꾸어 가야 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