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혹은 결핍이라는 삶의 구멍
올겨울 참 춥다.
겨울이라 추운 것은 예견한 일이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과 슬픔에 겨울의 추위가 더 매섭게만 느껴진다. 올겨울 나의 추위는 계엄령이라는 당황스러운 상황과 함께 시작되었고 179명의 소중한 인생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상황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나도 이렇게 믿고 싶지 않은데 유가족들의 심정은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번 겨울에 일어난 일련의 악몽 같은 사건들은 한국인이라면 마음에 한두 개의 깊은 구멍을 내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가슴에 구멍이 난 사람이다.
그 구멍을 언어로 메운다.
권혁웅 시인의 말이다. 슬픔이 커다랗게 마음속에 자리 잡아 구멍을 내면 그 구멍을 어떻게든 메워야 한다. 슬픔 혹은 결핍의 구멍을 메워야 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작가는 그 구멍을 언어로 메우기로 작심한 사람이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형의 죽음으로 생긴 삶의 구멍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으면 된다.
저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라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가득 찬 공간에 몸을 움츠리기 위해 경비원으로 일한다. 자기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작품들과 미술관에 온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그곳에서 일하는 동료 경비원들의 유대감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감정을 글로 써서 극복한다.
시인은 각자의 결핍과 상실감이란 구멍을 압축된 언어로 메우는 사람이다. 정지용 시인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유리창>이라는 시로 구멍을 메웠다. 일제강점기 대표 저항 시인 이육사는 나라를 빼앗긴 상실감을 시 <절정>으로 표현하였다. 민주주의가 결핍된 1970년대 유신 독재 시대에 김지하 시인은 시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민주주의의 뜨거운 열망을 담아내었다.
이렇게 독자들이 저자의 결핍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작품도 있지만 무언가 결핍이 있는 것 같은데 시 자체의 난해함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가 있다. 바로 시인 이상의 작품이다.
띄어쓰기와 문장부호의 생략과 같은 실험적인 시 형식과 의식의 흐름 기법 등을 사용하여 이상의 시를 읽는 순간 저자와 공감하면서 읽기가 쉽지 않다. 이상의 시 <오감도>는 조선중앙일보에 30편을 연재하기로 했지만 '정신이상자의 잠꼬대'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난해한 내용으로 인해 독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아 15편 만에 중단되었다.
이상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의 시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으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1910년 가난한 집안 환경에서 태어났다. 후사가 없던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 어린 시절을 양부모 아래서 보냈기에 사랑의 결핍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는 화가가 되길 원했지만 집안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현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진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한다. 수석 졸업 후 이상은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근무한다. 그는 건축 기사로 근무하는 동안 현재의 서울대학교인 경성제국대학 문리대 교양학부 건물을 설계했다는 설이 있다. 이 건물은 현재도 서울대학교 인문학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이상이 단순히 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건축 분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이력은 그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공간에 대한 감각이나 구조적인 사고방식 등은 건축학적인 지식과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광주과학기술원(GIST) 학생들의 연구를 통해 이상의 시 <오감도> 시제 4호가 전자기학적 원리를 활용하여 세상을 진단하는 메커니즘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시는 단순히 난해한 시가 아니라, 전자기학적 원리를 활용하여 세상의 문제를 진단하는 시인의 역할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90년 전 이상은 자신의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상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의 사랑과 결혼이다. 특히, 두 명의 여성이 그의 인생과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격정적이고 불안한 사랑의 주인공, 기생 금홍을 폐결핵 요양차 갔었던 온천에서 만난다. 이상은 예술적 영감을 얻기도 했던 금홍과 이별하고 안정과 지지의 사랑을 나누었던 변동림과 결혼을 한다.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새로운 작품을 위해 문명의 상징이라 생각했던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자신의 기대와 다른 도쿄의 모습에 실망하고 프랑스 파리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이상의 행색을 기이하게 여긴 일본 경찰은 그를 사상 불온 혐의로 체포한다. 경찰서에 구금된 이상은 고초를 겪다 풀려나고 폐결핵이 악화되어 센비키야의 멜론이 먹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1937년 도쿄에서 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일세의 귀재 이상은
그 통생의 대작 종생기
일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후 1937년
정축 3월 3일 미시,
여기 백일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맺고
문득 졸하다
이상의 묘는 안타깝게도 여러 번 이장되어 현재는 찾을 수 없지만 그의 소설 <종생기>에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것처럼 자신의 묘비명을 남겨놓았다.
이상은 인생에서 겪었던 결핍과 외로움이라는 구멍을 시와 소설로 메웠지만 생전 그의 재능은 제대로 날개를 펴지 못했다. 그는 소설 <날개>의 첫 문장처럼 박제가 된 천재로 우리에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