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찬란한 멸종

by 달숲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에서 삼시 세끼를 함께 먹는 날이 시작되었다. 아들의 대학 입시도 끝이 났고, 원서 접수와 합격 발표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즈음 랄랄라 모임에서는 이종모의 <찬란한 멸종>이라는 책을 함께 읽고 있었다. 기후위기로 닥쳐온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 인간의 미래를 그리는 책이었다. 또, 멸종되어 사라진 생물들이 화자로 자신들이 겪은 대멸종을 소설처럼 이야기하고 있어서 지구의 역사를 생생하게 상상하며 그려볼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밤마다 둘째 아이에게 조금씩 읽어주었다.

“엄마, 공룡이 멸종한 것처럼 우리도 멸종할까 봐 무서워.”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걸 막을 힘도 우리한테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이 책을 쓰신 거야.”

딸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들을 나에게 던졌다. 우리의 마지막에 대해서.

“엄마, 엄마는 왜 이렇게 나를 늦게 낳았어?”

“엄마는 엄청 기다렸는데, 네가 하늘에서 놀다가 늦게 온 거지. “

“내가 할머니가 되면 엄마는 세상에 없겠지? 나를 좀 일찍 낳지 그랬어. 너무 슬퍼. 엄마가 늙지 않았으면 좋겠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딸이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나의 찬란한 멸종을 상상하며 글을 써보아야겠다 생각했다.




올해는 2074년이다. 내 나이 96세. 이제 움직일 힘이 없어 누워만 있게 된 지 며칠이 지났다. 음식을 끊은 지 삼일째. 물은 조금씩 마시며 지내고 있었는데 이제 오늘 아이들이 다녀가고 나면 물도 줄여갈 생각이다. 먹은 게 없어서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픈 몸으로 움직이는 게 고되었는데 오히려 가만히 누워 있는 게 편안하게 느껴진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안식소에 입소한 지 일 년. 요즘은 내 나이 또래이거나 큰 병에 걸려 생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들어와 인생 회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입소하는 순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그날이 다가왔다. 지난달 나는 드디어 이제 떠날 결심을 했다. 그가 먼저 떠나고 몇 해는 슬픔에 빠져 웃음을 잃은 채로 지내왔는데, 이곳에 있으면서 비로소 지난 시간을 행복하게 떠올리며 지낼 수 있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아이들이 손주들을 데리고 이곳에 오기로 되어 있다. 아이들이라고 말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들 나이가 환갑이 넘은 지 한참인데 아이라니. 영원한 내 아이들. 원과 림. 곧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나처럼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겠지.


내가 아직은 의식이 명료할 때 온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하루 종일 가만히 누워 있으면 의식은 스르륵 잠 속으로 빠져들어 꿈과 현실을 오간다. 이곳에 온 뒤로 부쩍 아이들을 키울 때 생각이 많이 난다. 가만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때를 떠올려본다. 눈을 감고 생각을 하다 보면 다시 스르륵 잠 속으로 빠져든다. 그 시간이 행복하다. 그저 회상할 때는 만져질 듯 만져지지 않던 것들이 꿈속으로 들어가면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니까. 이렇게 품에 안겨오는 둘째 아이의 보드라운 살을 만져볼 수도 있다. 오늘 꾸는 꿈은 더 현실 같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아이의 살결.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머리에 가만히 입을 맞추고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 내 아이의 냄새. 아, 얼마 만에 맡아보는 내 어린아이의 냄새인가. 이 행복한 향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가.


내 품에 안겨 있는 림이의 지금 나이는 열 살이다. 3학년에 올라가기 전 겨울방학이다. 2026년이 막 시작되던 그때인 듯하다. 스무 살 봄부터 집을 떠나 살던 원이가 아직 방에서 자고 있는 걸 보면.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나 거실 창밖을 내다본 림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내 품으로 파고든다. 밖에 눈이 왔다며 나가보자고 종알댄다. 이 앳된 목소리.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이것 봐봐’ ‘엄마 이리 와봐’ ‘엄마 나 봐봐’ 엄마, 엄마, 엄마를 불러대던 그 목소리다. 그때 나는 이 목소리를 그리워하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진짜로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집안일을 하거나 내 일을 하면서 몇 번 건성으로 대꾸해 주다가 이내 ‘그만 좀 부르라며’ 목소리를 키우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애한테 왜 그렇게 신경질적이야” 라며 둘째 아이 편을 들어주었다.


“밖에 눈 왔어?”

주방 옆 방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직은 젊은, 40대 후반의 남편 목소리. 나는 지난 십 년간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루라도 전화 통화를 하지 않거나 티키타카 티격태격하지 않으면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서로 실랑이도 많이 하던 내 평생의 말동무. 내가 너무나 그리워하던 그 목소리다. 림이를 무릎에서 내려놓고 건넌방으로 가본다.

“잘 잤어?”

침대에 누워 있는 그가 다정하게 묻는다. 그가 누워 있는 침대 옆 행어에는 커다란 링거 비닐백처럼 생긴, 이제 막 복막투석이 끝난 빈 투석백이 매달려 있다. 맞아. 십 년이 넘도록 그는 이렇게 집에서 복막투석을 하면서 지냈었지.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잊고 있었다. 복막투석 효율이 떨어지면서 그는 인 수치와 칼륨 수치가 올라가 매일 밤 다리에 쥐가 나서 몸을 비틀며 괴로운 신음을 뱉곤 했다. 그러면 나는 비실비실 잠이 덜 깬 채 달려가 다리를 주물러주곤 했었다. 복막투석을 위한 도관을 심느라고 배에 뚫어둔 구멍에 염증이 생기고 매일 피고름이 나와 너무 힘들어할 때 기적처럼 장기기증센터에서 연락이 왔었다. 아빠에게 신장 기증을 하고 군대도 면제받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원이를 뜯어말리고 억지로 군입대 시킨 지 1년 만에 찾아온 희소식이었다. 군대에 있는 원이에게 전화로 이 소식을 알리며 둘이 펑펑 울었었다. 6학년에 막 올라간 림이는 엄마가 이식 수술을 한 아빠의 병간호를 할 동안 너무나 의젓하게 자기 생활을 잘해주어 대견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로 부쩍 자라 사춘기도 없이 어른이 돼버린 것 같아 때로는 안쓰럽게 느껴지던 내 딸. 하지만 2026년의 나는 그 몇 해 뒤의 미래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 나는 그 삶을 때로는 너무나 버거워했다. 첫째 원이를 이제 대학에 보내야 해서 학비와 생활비가 걱정이었고 둘째 림이는 아직 어려 엄마 손이 많이 필요했다. 언제 이식 수술을 할 수 있을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환자와 보호자로서의 삶을 생각하면 자꾸 한숨이 나왔었다.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엄마, 다정하게 마음을 살펴주는 배우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는데, 때때로 나는 자꾸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 무렵 나는 오직 내 생각에만 몰입할 수 있는 곳,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꿈꾸었다. 결국 내가 어디엔가 두고 온 꿈을 찾겠다며 따로 방을 얻어 작업실까지 만들었다. 그때는 그 작업실이 나에게 유일한 도피처였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 하지만 또 언제라도 금세 가족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곳. 나는 그렇게 매일 그들 곁을 떠났고, 매일 다시 돌아왔다.


“응 눈 많이 내렸어. 투석 끝났으면 같이 나가볼까?”

거실에서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림이는 벌써 신이 나서 장갑을 찾으러 돌아다닌다. 강아지 봄이도 림이를 따라 흥분해서 팔짝팔짝 뛰기 시작한다.

“봄아, 산책할까? 산책?”

림이의 말을 알아듣고 봄이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낑낑거린다. 그래, 강아지 봄이도 있었지. 이렇게 발랄하게 뛰어다닌 걸 보니 한참 어린 강아지 시절이다. 우리 곁에서 20년이나 함께 살면서 아이들의 유년을 함께 채워줬던 착한 강아지. 그 헤어짐이 가슴 아파 다른 동물을 다시 키울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 보드라운 털을 다시 만질 수 있다니. 장갑을 찾은 림이가 내복 바람에 장갑만 껸채로 다시 내 품으로 달려와 안긴다. 이 말랑하고 작은 몸. 아이를 꼭 끌어안아 본다. 이 꿈에서 깨고 싶지가 않다. 더 많이 안아줘야지. 종알대는 이 아이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싶다. 이 아이가 하는 말들을 다 받아 적어 놓고 싶다. 내가 모두를 돌보고 있었던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가장 많이 사랑받고 있었다. 모두 나를 너무나 사랑해 주며 눈 맞춰주며 안아주고 있었다. 눈가가 뜨거워진다.


“엄마, 나 왔어.”

안식소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딸의 목소리가 들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눈꺼풀조차 번쩍 떠지지 않는다. 무거운 몸. 다시 현실로 돌아왔구나. 잠시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이곳이 어디인지, 지금이 언제인지 가만히 기억을 더듬는다. 생각도 말도 퍼즐을 맞춰나가듯 느릿느릿.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내게는. 딸이 다가와 내 볼에 입을 맞춰준다.

“어머니 저도 왔어요.”

“할머니 저도 왔어요.”

사위와 손녀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내가 이곳에 입소해 있는 동안 딸은 손녀와 둘이 유럽으로 드로잉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에서 잔뜩 찍어온 사진을 내게 보여준다. 손녀가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릴 때의 내 딸과 똑 닮았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엄마 저 왔어요”

“할머니 저희 왔어요.”

그때 마침 다시 문이 열리며 아들네 가족들이 들어온다. 손녀와 손자 두 녀석들도 이제 다 장성했다. 손자와 아들 내외는 최근에 내가 북스테이를 하며 살던 구옥을 다시 개조해서 서점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 집은 내가 남편과 함께 은퇴 후 노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정성 들여 가꾸던 집이었다. 작은 마당을 품고 있는 ㅁ자 형태의 집. 그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며 여러 모임도 하고, 손주들이 어릴 때는 맞벌이로 바쁜 아들 딸 부부를 대신해서 방학 때마다 아이들을 맡아주기도 했었다. 거실과 방 하나를 서재로 꾸며 글쓰기 작업실로 쓰면서 사람들이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게 빌려주기도 했는데, 노년의 살림에 쏠쏠한 보탬이 돼주었다. 그 집에서 나는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들을 다 이루었다. 아이들 곁에 있어 주는 엄마가 되고 싶던 소망과 글을 쓰는 작가이자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내 개인의 성취를 다 이룰 수 있게 해 준 집이었다. 나와 내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까지도 품어주던 곳. 그 집을 개조해서 아들과 손자가 새로운 꿈을 이루어간다니 흐뭇하다. 아들이 그 집을 어떻게 개조했는지 설명하며 사진을 보여준다. 오늘은 그 집에 가보는 꿈을 꿨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으로 가볼까.


아들과 딸이 한쪽씩 내 손을 잡아준다. 너무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말해주었다. 눈가가 다시 뜨거워졌지만 진심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올라와서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아들과 딸도 눈가가 빨갛게 젖어 있었지만 아무도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나의 찬란한 멸종을 상상하며 글을 쓰는 동안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마치 지금의 내가 미래에서 온 사람 같았다. 눈물을 닦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둘째가 신나게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오리며 논 흔적으로 거실 곳곳이 어질러져 있었다. 그 작은 종이 조각들이 내가 안식소에 누워 떠올리던 생생한 과거의 추억들처럼 느껴졌다. 작고 귀엽고 반짝이는 순간들. 나는 이제 그것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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