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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도 Sep 05. 2024

고난

사랑의 요소 - 2/3




글을 쓰고 있는 오늘로 나는 하피를 본 지 8일 정도 됐다. 이 정도면 오래 본 건가? 더 오래 본 애들도 많아서. 그런데 더 오래 본 것 같다. 당연히 퇴원은 없던 이야기가 되었고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예정된 검사가 생겨났다. 문제는, 하피 앞에는 정말로 많은 검사들이 펼쳐져 있는데 그 검사의 '힘듦'을 떠나 이 친구는 그 모든 것을 '자는' 상태에서 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과거형으로 쓰지 않는 이유는 앞으로도 무시무시한 것들이 몇 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퇴원한 후 다시 입원해서 할 가능성도 있지만 당장은 그래 보이지 않는다)


미다졸람에는 부작용이 세게 왔고 케타민은 심장에 문제가 있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쓸 수 없었다. 덩치가 있어서 사람 몇 명이 동원되든 붙잡고 있는 게 불가능했고, 소리도 많이 질렀으며, 몸에 붙은 것들은 그게 무엇이든 가만히 놔두지를 못했다. 아티반을 제일 먼저 썼고 그걸 맞으면 좀 잘 자나 싶다가 검사실에 내려가면 깼다. 이어서 케타민. 한 번 맞고 자면 좋은데 대부분 그렇지 못했다. 해당 듀티의 하피 담당은 제발 그걸 쓸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인투베이션을 위한 물품들을 챙겨둔 바구니를 꼼꼼히 확인하고 산소통은 반드시 제대로 채워진 것으로 검사실에 보냈다. 제발, 한 번에 성공하고 와, 제발 깨지 마, 제발 산소포화도 떨어지지 마, 하는 마음도 꾹꾹 담아서.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짧다면 짧은 이 병동 생활에서 그 누구의 진정치료가 무사히 끝나기를 이 정도로 간절하게 진심으로 바란 적은 몇 번 없었다. 내 퇴근이 얼마나 늦춰지는지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부디 잘못되지만 않기를 그렇게나 바랐다.


생검, 초음파, CT, MRI.. 부위별로 각각의 검사 오더가 늘어섰다. 당일 예정된 검사가 셋, 그다음 날에도 절대 호락호락할 것 같지 않은 검사 둘이 예정되어 있기도 했다. 전날 오전에 아티반을 맞았다면 그다음 날 오후까지도 하피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 며칠간 하피의 눈은 시선을 담은 기관이 아니라 눈꺼풀에 덮인,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물체에 가까웠다. 그 눈꺼풀조차도 불규칙하게 들리고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진정제를 쓰지 않으면 검사를 할 수 없고 그 진정제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며 까딱하면 검사 좀 하려다 삽관 후 중환자실로 가면 다행인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거기다가 앞으로 갈 길은.. 아직 보수 계획 없는 비포장 도로나 다름없다. 어렵다. 상황도, 그 검사들로 시작될 치료들을 타개해 나갈 이 친구도. 깨끗한 이마와 미간, 옆으로 펼쳐진 단정하고 짙은 눈썹과 눈매 안의 그 무연한 눈동자. 어떻게 불러도 눈을 안 마주쳤다. 엄마와 아빠는 그게 무엇이 되었든 더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제, 출근길에 병동 앞 엘리베이터에서 꼬깔콘 봉지를 무릎에 얹고 휠체어에 앉은 하피와 마주쳤다. 시선이 그제보다는 조금, 아니 이 정도면 많이, 갈 길을 찾은 것 같았다. 달고 있는 수액은 당이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머, 이제 눈 맞추네요!"

"웃기까지 하네?"

부모와 나는 셋이서 환호했다. 웃은 건지는 모른다. 시원하게 빠진 눈꼬리와 입술 끝이 호선을 그리며 움직였었다. 찰나지만. 하긴. 뭐가 그리 중요하겠나, 어쨌든 나를 봤고 웃었다. 다행이었다. 내가 그 친구와 그렇게나 눈을 맞추고 싶어 했었는지 그때 알았다. 7일 만인가? 약을 준비하고, 주사부위를 몇 번이고 다시 가서 손봐주고, 그럴 때 필요한 물품이 병동에 떨어지면 다른 곳에서 거듭해 빌려 오고,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주고, 아빠 또는 엄마가 하피의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우고 그 끝부분은 테가덤으로 완전 봉쇄해서 머리를 감기거나 몸을 씻겨주는 걸 조금 돕고 자주 관망하고, 지금은 자면 안 돼!라고 몇 번이나 더 시끄럽게 옆에서 소리를 지르고.

그때마다 나는 그 친구의 괜찮음을 조금이라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걸 괜찮음이라고 표현해도 되나. 왜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기뻤다. 눈을 마주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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