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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도 Sep 05. 2024

고난

사랑의 요소 3/3








전산 화면에 모니터링 중인 숫자가 시각에 따라 연동되고 있었다. 지금은 센서를 안 떼고 일단 잘 자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체온을 재러 병실로 들어갔다. 아이를 대학병원에 입원시키게 된 부모들이면 사실 체온계 정도야 다 가지고 있다. 먼저 본인들이 재 보고 열이 난다고 알려주는 때도 많다. 어쨌든 체온은 반은 명분이고 환자가 괜찮은지 보러 가야 한다. 자고 있었다. 쿨쿨. 아빠는 자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귀에 체온계를 꽂았다. 늘 궁금했다. 스크래치를 낸 자리처럼, 잘 자란 숱 많은 머리카락은 귀 옆에서 폭 일 센티, 길이 칠 센티미터 정도로 비어 있었다.

"여기로 수술했었어요?"

"이거요? 아.. 그때도 힘들었는데. 이 뒤로도 자국 있어요. 크게 했었거든요. 두 번."

"두 번이나 했구나."

"그전에 병원에서, 한 번 더 해야 한다고 해서 두 번 하고, 그러고 조혈모세포이식도 했는데."

"네. 어. 그런 것치고는 부작용이.."

생각보다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피의 피부는 말끄럼했다. 안 그런 부위도 많았지만.

"그러고 본원으로 갔더니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렸냐고 그러던데요. 방사선 종양학과 교수가 자기는 치료 못 해준다고 그랬어요. 애가 이 지경이 됐다면서."

"이 지경요? 어떤, "

"원랜 멀쩡했거든요. 발달장애 없었어요."

"아. 부작용이 그렇게 왔구나."

"네."

나는 이식 후에 피부가 누렇게, 또는 발긋하게 변하다가 무슨 페인트 껍데기마냥 벗겨져 가던 기록들만을 떠올렸던 것이다.

"화내더라구요. 부모 욕심이 너무 컸던 거 아니냐고.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그러던데요."

".. 그걸 그렇게 얘기했어요, 거기서? 아니. 치료를 내가 선택해서 하나, 병원에서 이거 하자 그러면 동의서 쓰고 하잖아요."

하피가 몸을 뒤척였다. 얼굴 피부가 뽀송해서 그렇지 덩치는 완전히 청소년이나 다름없다. 나이로 따지면 그게 틀린 말도 아니다. 안 그래 보여서 그렇지.

"그러니까요, 하하."

아빠는 조금 웃었다.





-





이들에게 하피는 사랑이다. 나는 그들이 비닐장갑으로 정맥주사가 꽂힌 하피의 손을 방어하고, 의료기상사에서나 파는 테가덤을 지퍼백에 한가득 넣어 가지고 다니며 샤워를 해야 할 때마다 손목 위에 덕지덕지 붙여 방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도 씻길 수 있구나, 얼마나 많이 그렇게 씻겨 온 걸까. 매일? 이틀, 삼일에 한 번은? 이어 그 부모에게 하피는 정말 소중한 아들이라는 걸 알았다. 그 행동 하나하나는 고난일지라도 그들에게 이 친구는 분명 사랑이었다.


특정 치료가 최선이라는, 이따금의 꽤 성의 없는 회진과 설명을 들은 후 간이침상에 누워 휴대폰으로 정보를 갈구하듯 찾는다.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이런저런 치료를 거치는 아들을 그렇게 돌본 후 당도한 다른 곳에서는 왜 그렇게 했느냐는 꾸지람을 듣는다. 마치 아들이 변해 가는 게 어떤 잘못된 선택에서 기인한 것처럼.

선택? 그걸 고를 수가 있었던가? 하지만, 나의 잘못이라면 나의 잘못인 것이다.

비록 그 시간이 매우 짧긴 하나, 병원 식당 라면을 몇 번이나마 끓여 먹어 본 입장에서는 그 질문이 어이가 없었다. 저 부모는 얼마나 스스로를 책망했을까. 사람들은, 상황은 참 그렇게 무례할 때도 있구나. 저런 류의 일을 당장의 분노 없이 말하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울분을 참았으려나. 멋대로 생각이 떠다녔다.





-





엄마와도 비슷한 대화를 했었다.

"CT는 아닌데, MRI는 좀 가차 없어요. 애기 안 자면 병동으로 다시 올려 보내거든요."

"다시 올라온다구요?"

"네. 거기는 검사실에 도착했을 때 애가 완전히 자는 상태여야 받아요. 도중에 깨면 다시 병실로 돌려보낼 거라.. 아까 약을 쓴 게 약기운이 남아 있긴 한데, 어쨌든 처음부터 다시 재워야 돼서 지금은 깨야 돼요."

".. 7,8년 전에도 그랬어요. 딱 여기서. 그때도 자는 약 썼는데 잘 안 잤거든요."

"아.. 8년 전이요?"

"어떻게 이렇게 변한 게 없을까요. 그쵸."

"거의 십 년 전인데."

"그때도 애가 안 자서 검사가 진짜 안 됐는데. 그냥 3개월 뒤에 와서 다시 찍으래요."

"퇴원하고 다시 와서요?"

"네. 그땐 별생각 없었는데 그러고 세 달 있다 오니까 어디까지 퍼졌다고 그러잖아요. 나 그때 교수님한테 소리 지르고 울고 그랬는데."

"..."

"그때 바로 그래도 찍어줬으면, 아니었으면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무슨 대답을 더 했더라. 애기 계속 깨워 주시고 검사실에서 연락 주시면 콜벨로 알려 드리겠다,라고 그랬겠지.

시점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나는 가엾다고 계속 느꼈던 것 같다. 마른 체구의 엄마가 하피의 팔다리를 붙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병실 문을 열었을 때, 부모 눈에는 훨씬 더 잘생겼을 얼굴을 볼 때, 휴대폰을 귀에 올려놓고 손을 항상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는 하피에게 만지지 좀 말라고 소리 지르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 짜증과 다르게 너무 애처로운 목소리로 나를 호출할 때, 눈도 제대로 못 뜨는데 오늘 당장 또 할 일이 남아 있어 약에 취한 그 친구를 억지로 깨워 못 자게 해야 했을 때. 그 얕은 순간들이 지속적으로 모여 그런 감정을 만들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안쓰러운 사연을 찾는 건 아닌 쪽을 찾는 것보다 훨씬 쉬울 텐데, 아무튼 그렇게 다가왔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다.





-





그러니까, 아들의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런 감정과 사건의 잡음까지도 상대해야 하는 그들과 이 모든 삶의 흐름이 어쩌면 좀 안타까워서. 앞으로도 절대 순탄하리라고 볼 수 없는 그 친구의 생활과 그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 가엾고 한편으로는 소중해서. 또 그를 사랑하고 살게 하는 방식이 벌써부터 또다시 힘겹게 느껴져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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