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용한 것들
이루지 못한 꿈, 닿지 못한 말
시간이 많이 지났다. 비가 온다. 내가 그 친구 담당이었던 정말 많은 날 중 며칠쯤은 충분히 비가 왔을 것이다. 그 날은 아니었다. 비가 와서 그녀가 생각난 건 아니라는 뜻이다. 묻어 둔, 아니면 그냥 시간에 알아서 흐려졌다고 생각한 어떤 것들은 느닷없이 떠오른다. 정말 생뚱맞은 것들에서도 알아서 연상되어 이내 앞으로 튀어 올라있는 것이다.
몇 주 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 정말 행복했다. 티켓값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고, 무대 위에서 한껏 몰입한 그 사람을 보는 것도, 멋진 퍼포먼스도, 아름다운 외모도, 심지어는 공연이 끝나고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잔뜩 젖어 지하철역에 서 있던 기억까지 빛났다. 공연장에서 그는 '가사가 너무 아름다운 곡이니 꼭 뒤에 띄운 노랫말까지 즐겨주셔라'라고 했다. 나는 애절하게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며 '대체 누구를 어떻게 떠나보냈길래 저런 가사를 쓰고 이렇게나 마음을 가득 담아 노래를 하시나'라고 장난스럽게 생각했다. 이어, 응원봉을 든 채 무대 위의 별 같은 그를 멍하니 보다가, 전달되지 못한 말과 마음은 과연 어떤 효용성이 있는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얼마간 머릿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이렇게 그녀에 대한 기억과 함께 엉켜 나왔다. 어이없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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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난 날은 대충 날이 흐렸다. 아니, 그녀가 떠났음을 내가 확인한 날이라고 해야 하나.
사방이 초록색이었고 공기는 슬슬 더워지려 했다. 나는 나이트 근무가 끝나 꽤 피곤한 상태로 지하철을 탔다. 배가 너무 고파서 역 앞 주상복합상가 아래의 편의점에서 우유와 뭔가를 사 먹었다. 낯설고 잘 다져진 오르막길을 걸어 내가 알던 유니가 이름 석 자와 사진 한 장만으로 남아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 아래의 매점에서 음료수와 과자 몇 봉지를 샀다. 종종 그 친구의 병상 옆에 아빠가 사다 놓았던 것들. 내가 섭취배설량 기록지에서 가끔 '오징어집 3조각' 하는 식으로 접했던 것들. 매점을 나와 본관으로 연결된 자동문을 통과했다. 몸이 싸해졌다. 어떤 감정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없고, 에어컨이 빵빵히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위치를 물어 그녀는 없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익숙지 않은 장소에서 익숙한 사람을 보게 되면, 보통은 반갑다. 그래서 유니의 아버지도 나를 보고 잠시 '기쁜' 표정을 지었을까. 아마 나는 그 장소에서 매일매일 보던 그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울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까만 옷을 입고 나를 맞이하는 유니의 아빠와 엄마와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간 이후로는, 너무 많이 울어서 언제쯤 울기 시작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아니. 사실은 안 울었던가. 조문했던 그날에서 기억이 잘 나는 건 그 건물로 들어가기 전과 나왔을 때, 그렇게 완전히 나 혼자였을 때뿐이다. 하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때나, 지금이나, 진실은 이제 그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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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인어공주 좋아했어? 이번에 사람 나오는 걸로 재개봉한대. 이제는 방탄 좋아한다고? 누가 제일 좋은데? 난 누구 좋아했어. 무슨 노래가 제일 좋아? 학교에 좋아하는 친구 있어? (보호자로 늘 아빠가 있어서 이건 물을 엄두를 못 냈다) 산리오 중에 얘가 제일 좋아? 왜? 귀여워서? 왜 갤럭시 안 쓰고 아이폰 써? 친구들도 다 아이폰 써? 이건 누구랑 같이 했어? 하늘색 좋아한다면서 이건 왜 빨간색으로 샀어? 등등. 이 중 실제로 내가 물었던 것이 몇 개였는지, 정말로 내가 당시에 묻고 싶었던 것들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흐려진 기억이다. 다만 야속하게도 생각이 났다. 나는 그녀가 많이 궁금했다는 사실만이.
병원을 나가면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은지 묻고 싶었고, 학교에서는 무엇이 제일 좋은지, (실상은 병세가 악화된 이후로 어떤 식으로 등교를 하고 있는지도 상당히 늦어서야 알 수 있었다) 퇴원해도 동생이랑 집에서는 투닥투닥하면서 싸우는지 궁금했다. 닿지 못한 말들이 많았다. 죄다 쓸데없는 것들이었지만, 나는 궁금했다. 주제넘게도 많이 알고 싶었고 그런 하등 무용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왜일까, 이 병실이, 병원이 또 다른 집이나 다름없게 된 이 일상이 끝이 아니라는 오만한 생각을 전해 주고 싶어서?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슬펐다. 아버지가 내게 저 말을 했을 때. 이제야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게 된 건가 싶어서. 왜 그게 슬픈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질문. 그녀가 아프기는 했으나 그 정도로는 아프지 않았을 시기에, 나는 그녀의 최애 아이돌과 이다음에 하고 싶은 것과 되고픈 것과 잘하는 것 같은 걸 알 수 있었다. 반가웠고 마음이 그리 무겁지 않아 잘 대화할 수 있었다. 그때는 어색함을 메우기 위한 스몰토크였지만, 어느새 나는 정말로 그녀가 궁금해졌다. 대체 왜. 내가 뭐라고. 왜 나는 알고 싶었을까.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 친구가 조금이라도 밝은 표정을 지을까 봐? 뭐 그런 이유? 아니면, 더 환자들과 잘 어울리는 친절한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시답잖은 직업적 욕구 같은 걸 채우기 위해? 글쎄, 다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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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조차도, 어느 시점을 넘긴 후부터는 병원 안에서의 이야기 말고는 언급하기가 무서워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당장 병원 지하도 제 발로 못 내려가는 상황인데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들인가. 또한 그런 여유 넘치는 노가리를 칠 정도로 할 일이 없지도 않았다. 언젠가부터 그녀와 나는 함께 늘 바빴고, 나는 주치의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했다. 원래 좋아했던 거, 하고 싶어 했던 거 같은 걸 잊지 말라고 우습게도 상기시켜 주는 것들보다는 당장 절절 끓는 열을 잡고, 진통제를 어떻게든 빨리 놔주는 게 더 중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파편으로만 남았다. 선생님이 유일했어요. 아픈 거 외를 얘기하시는 분은, 아버지가 중간에 말했다. 나는 내내 울었을 거고, 아버지도, 그 옆의 어머니도 그랬다.
궁금했던 말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제야 잔뜩 쏟아지고 있었으나 그 문장들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질문도, 아버지가 해 준 이야기도 닿지 못했던 거나 다름없었다. 다만 깊이깊이 슬펐다. 예쁘게도 웃는 사진 앞에 놓인 에어팟 맥스와 시나모롤 인형과 작은 일기장과 편지, 미미인형, 비즈 팔찌 같은 것들만 기억난다. 체온 높아지니까 한 시간 동안은 그거 끼지 마,라고 언젠가 장난처럼 아버지가 그 친구에게 이야기했던 게 떠올랐다. 그걸 목격한 것만이 진짜 같았다. 여기 놓인 이 물건들은 그 기억의 모조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건들은 모조리 슬펐다. 불과 며칠 차이로 주인 없이 그 자리에 놓여있게 된 물건들의 사연은 궁금하지 않았다. 그건 단지 어떤 산물처럼 보일 뿐이었으니까. 아니, 내가 병실을 오가며 그녀 앞으로 뜬 처방을 수행하거나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 주었던 기억이 거짓이고, 그 장소에 내가 서서 운다는 사실만이 진실 같기도 했다.
다 가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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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열망이 강했고 재능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이보다 아주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는 여러 시도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외래 입원 기록 한 폴더에서, 스크롤을 끊임없이 내려야만 할 정도로 의무기록 리스트가 쌓여 갈 동안, 그녀는 회복이 된다고 해도 다시 이전처럼 그것을 쫓을 수는 없는 입장이 되어 갔다. 내가 그녀 병실의 문을 열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었던 건 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자고. 나는 단지 처방 수행만 하면 되는 역할이니 자꾸 까불지 말자고. 그렇게 병실 문이나 커튼을 열었을 때 유니가 아빠와 무슨 말을 하며 웃고라도 있으면 안심이 됐다.
에어팟 맥스를 보고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유니, 이거 되게 비싼 거 아니야? 이야, 좋겠다~ 했던 말. 아마 나는 그런 너스레 정도는 분명 떨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는 그날에서야 내게 이야기했다. 방사선 치료 맨날 안 가겠다고 떼쓰고 힘들어해서, 다섯 번만 더 받자고 설득해서 사 줬어요,라고. 나는 유품이 된 물건의 이야기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자꾸 사연을 부여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죽은 그녀가 너무 안타까워서 슬펐다. 이야기를 안 후나 전이나 내가 할 수 없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슬프고 또 안타까웠다.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을 그럴 때 쓰는 걸까. 모르겠다. 슬펐고, 울기만 했다.
나는 그 '이번에만'이 어느 시점이었을지 가늠하다가 멈췄을 것이다. 얼마 안 됐으니까. 그녀는 급속도로 시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잊겠는가. 방사선 치료가 예정된 시간에 맞춰 여타 검사며 검진을 다 미뤄 달라고 요청하고 늦지 않게 이송을 닦달하고 양해를 구하고 했던 게 그리 이른 기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진한 기억으로 남은 그 시간들이 아팠다. 흉관을 꽂은 오후에는 뻘건 핏물이 철철 급속히 차오르는 게 무서워서 울었다. 물을 빼려 관을 꽂은 거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펑펑 울며 지금 바틀을 바꿔야 하는데 앞으로는 얼마까지 차는 걸 볼지, 코 먹는 소리로 했을 노티를 의사는 당황한 목소리로 받았던 것 같다. 삽입 부위에서도 피가 새어 나오는 게 심해 피로 척척히 젖은 드레싱을 그 저녁에만 대여섯 번은 갈았다. 밝게 웃던 쪼끄만 얼굴과 숱 많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던 소녀가, 흉부의 커다란 마킹을 지우지도 못한 채 잔뜩 말라서 인상을 찌푸려 짜증 가득한 울음을 뱉으며 헉헉댔다. 나는 그 모든 게 무서웠다. 그러면서 울부짖는 그녀를 달래려 했다.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어떤 치료도, 시술도, 몸이 버텨낼 정도는 되어야 진행이 되는데,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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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나오면서 나는, 그녀의 남은 가족이 잘 지내기를 바랐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말기를 감히 생각했다. 말이 안 된다는 건 알았지만 내가 바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녀가 하늘에서는 행복하길, 같은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여긴 장례식장인데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해. 그런 문장들은 다 거짓말이었다. 신기했다. 어떻게 그런 말들이 나오는지, 궁금해했던 것 같다.
벤치에 앉아 아버지가 주신 음료수를 따 마시면서, 아까처럼 지하철을 탈지, 그냥 택시를 부를지 고민했다. 정오가 다 된 시간, 더웠고, 구름은 잔뜩 꼈으나 해가 밝았고, 이어 아무 노래나 틀어서 이어폰을 꽂았다. 나는 그녀를 보내 주려고 온 거였는데 실패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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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지났다. 정말로.
이루지 못한 꿈. 커다란 헤드셋. 나의 질문들. 그리고 그녀는 너무 일찍 떠나 버렸다. 늘 누운 자세로 휴대폰을 보고 가끔 낄낄거렸던 그녀가 그 안에서는 본인이 원하던 것을 보며 잠시라도 즐거워했던 거면 좋겠다고 이제야 생각한다. 안다. 아무 의미 없음을. 하지만,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그냥 그것을 원하고 바라던 시간에는 그것만으로 가능한 많은 것을 잊을 수 있었기를 바란다. 어차피 모두의 인생은 끝이 정해져 있으니까, 그런 거라면 순간순간 더 행복한 게 '이득'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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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닿지 못한 것. 효용성.. 이런저런 단어들을 씹어먹듯 없앤다. 어차피 세상에는 나쁜 놈들이 그득하고 그 나쁜 놈들을 둘러싼 일들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와, 거짓이라 해도 아무 상관없는 서사와 사연과 노래를 접하면서 우리는 살아가니까. 그러니까, 다 괜찮다고, 도달하지 못했어도, 그대로도 너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면 그것으로 된 거라고 그녀와 나 모두에게 말한다. 괜찮다고.
나는 이제 네가 다시 태어난다면, 강철만큼이나 튼튼한 몸을 가지고 태어나기를 바란다. 뭐 어떤가, 1부터 100이 있다고 해도 내가 실제로 본 건 3이나 5에서 그치기도 하고, 그러고도 나는 70이나 80을 느꼈다고 말하며 그것이 진실이라 믿고 살아가잖아.
이 말도 안 되는 일들과 시간 사이에서, 이 시점에서, 나는 네가 강철 나비가 되어 다시 나기를 바란다. 그렇게 믿을게. 고생 많았어, 기회가 된다면 꼭 단단한 몸으로 마구 뛰고 웃으면서 만나자.